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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인간 중독> 비극적이지만 부질 없는...

by 언덕에서 2015. 5. 13.

 

 

 

<인간 중독> 비극적이지만 부질없는...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1년 전에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어보려 한다. 당시 극장을 나오면서 내용을 리뷰해 보니 뭔가 심상찮은 영화라는 생각과 남자의 목숨 건 순정에 가슴이 쓰렸다. 유추하여 쓰고 싶은 내용 역시 많았지만 잘 적어지지 않았는데 늦었지만 기억을 되살려 그때의 감회를 살려보고자 한다.

 2014년 5월에 개봉된 영화로 로맨스물을 잘 만드는 김대우가 감독하고 송승헌, 임지연이 주연한 영화다.  1960년대 후반 군부대 장교 관사촌(官舍村)이 영화의 무대다. 주인공은 장군 진급을 앞둔 육군 대령과 부하인 육군 대위의 아내다. ‘부하의 아내와의 불륜’은 폭탄 터지듯 격렬하고 요란하다. 금지된 사랑은 일말의 짜릿함이나 달콤함과는 거리가 있고 대령이라는 계급에서 기대되는 특권마저 작동하지 않는 듯 보인다. 주인공은 여자 앞에서 자신의 ‘무공’을 부끄러워한다. 베트남에서의 무공은, 사람이 아니었던 순간을 떠올리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만 여자의 태도는 모호하다. 다른 세상, 철망 속이 아닌 세상으로는 한 발짝도 나설 자신이 없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트라우마. 인간은 상처를 안고 사는 존재다. 그러기에 사랑보다 더한 무엇으로도 그 묶인 발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그러한 비극을 이야기하며 사랑의 부질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의 배경은 1969년. 아직 월남전은 진행 중이고,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있었던 해이다.

 남자 주인공 김진평은 잘 나가는 엘리트 고위 장교다. 월남전에 참전한 그는 부하들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군인인지라 젊은 나이에 빠른 진급을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영화의 주요 스토리가 진행되는 1969년 당시엔 김진평은 대한민국의 사령부급 부대에서 대령 계급에 교육 대장을 맡고 있다. 김진평은 월남전 참전의 여파로, 심하지는 않지만 환각 증상의 일종인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친구인 군의관은 그의 경력 관리를 위해 그 사실을 숨겨주고 있지만, 매우 걱정하고 있는 중이다. 3성 장군의 딸이기도 한 아내 이숙진은 남편을 장군으로 만들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 둘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이 문제일 뿐 부부 관계는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김진평의 부하로 경우진 대위가 부임한다. 그 또한 월남전에 참전했으나, 그는 장군들 전속 부관 출신으로 야전형 군인과는 거리가 있고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김진평은 경대위의 아내인 종가흔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여주인공 종가흔은 굴곡 많은 삶을 살아온 미모의 여성이다. 1950년 한국전쟁 때 화교 아버지는 '빨갱이 중공군'에 부역했다는 오해를 피해 산으로 숨었고 이질에 걸려 절명한다. 바람기 있던 엄마는 딴 남자 찾아 도망쳤는데, 딸은 아버지의 시체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지내다 고아 아닌 고아로 발견된다. 그때 경대위의 엄마에게 거두어져서 딸처럼 키워졌으나 14살 때 경우진에게 강간당하고 결국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된 사이다. 뺀질뺀질한 군인 남편과 '착한 척하는' 시어머니는 종가흔을 애완견처럼 이용한다.

 김진평 대령은 장교 관사의 부인회가 운영하는 병원봉사모임에서 종가흔을 처음 만나면서 떨림을 느낀다. 이후 정신착란 환자가 봉사 중인 종가흔에게 칼을 들이대는 것을 목격한 그가 부하 부인인 그녀를 구하면서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밟고야 만다. 그러다가 김진평의 장군 진급이 발표되어 자신의 저택에서 부하들 부부를 집합시켜 파티를 열게 된다.

 그는 파티장에서 여자에게 남편을 부하로 데려갈 것임을 남몰래 이야기하며 관계 지속을 요구하지만 거부당한다. 절망한 김진평은 부하 장교 부부들과 자신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종가흔의 손을 잡고 둘의 관계를 폭로한다.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리에 모인 모두는 패닉에 빠진다. 이후 삼성 장군인 장인은 그를 불러 훈계를 하면서 1년간 월남 파병 다녀오면 이 사건이 묻힐 것이라고 명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그는 종가흔을 찾아가 군인을 그만두고 월남의 한적한 마을에서 함께 살기를 청하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선 당신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는 답을 듣는다. 그 자리에서 그는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마음대로 죽어지진 않는다. 이혼당한 그는 불명예 제대한다.

 2년이 지난 1971년. 소령이 된 경우진의 부인인 종가흔이 사는 군부대 관사에 누군가가 찾아온다. 베트남에서 군인들의 길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있었는데 사망했다는 것이다. 죽은 이가 군인 신분도 민간인 신분도 아닌 데다 가족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상의주머니에 지녔던 유일한 유품은 김진평과 종가흔이 음악실에서 찍었던 사진이다. 사진 뒷면에는 '내 사랑'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있다. 종가흔은 사진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린다. 여기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에서 베트남전과 군대 관사(官舍)라는 소재는 역사적 배경이라기보다 금기와 오래된 풍경으로서 ‘과거’를 재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그 시절 관사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장면들이다. 세계 최빈국답지 않게 화려하고 깨끗한 관사촌은 군대 통치시대여서 그랬냐 하는 추측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과 신분에 1960~70년대라는 시대가 결합하면서 주인공 진평과 가흔의 욕망과 그 실현은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하다. 게다가 그 시기 유행을 활용한 복고풍의 인테리어와 의상 그리고 소품 등은 시각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 시절 장교 관사에 가본 적이 있는데 영화에서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인간중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아주 솔직한 사랑 이야기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경, 지식, 계급, 위치를 다 버릴 수 있는 굉장히 본질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파격적인 멜로영화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했던 1969년의 고전적인 풍경에 클래식의 품격까지 더해 보는 이의 오감을 흔들고 있다.

 

 

 

 

 이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트라우마가 있는 한 남자가 부하의 아내에게 점차 빠져들며 그 여자의 사랑을 갈구하는 병적 집착을 그려냈고, 마침내 비참한 결말을 맞는다는 내용으로 인간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인간중독이라는 말은 관계중독이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다.

 이 영화처럼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있을 때 사람은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뭔가 빠져들 것을 찾게 된다. 그때 술을 가까이하면 알코올중독이 되기 쉽고, 도박을 시작하면 도박중독이 될 것이다. 이성에게 빠질 경우 심각한 관계중독 혹은 '인간중독'의 증상을 겪게 되어 상대방이 이미 결혼한 사람이어도 문제 삼지 않게 된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송승헌이 연기한 김진평의 모습에서는 <화양연화>와 <색, 계>의 주인공이었던 양조위의 그림자가 오버랩된다고 했다. 종가흔의 마음을 잡지 못해 머뭇거리는 그에게선 초모완을,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부관들과 아내들에게 둘러싸여 외로운 그에게선 정보부 대장 ‘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가흔에게는 수리첸(장만옥)이나 막부인(탕웨이)의 분열된 내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중독이란 대체로 당사자에게는 숨 막힐 만큼 절박하지만 지켜보는 이들에겐 맹목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만 보인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에게  목숨을 건 한 남자의 사랑이 순정스럽다기보다 당혹스럽다. 그녀의 때늦은 눈물이 쓸쓸하기보다는 이기적으로 보였던 이유다.

 

 

 명줄을 끊고 마침내 참 자유인이 된 한 남자의 말로는 비참하다. 주인공은 구차하고 부서진 채로라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나간다. 그는 사랑으로 인해 자유를 목숨 걸고 희구하게 되었고 마침내 그것을 누렸다. 사랑에 임하는 맹목성은 그의 진정성이지만 일방적이기에 부질없고 씁쓸하다. 그래서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