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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영하 단편소설『 이사(移徙)』

by 언덕에서 2015. 3. 18.

 

김영하 단편소설 이사(移徙) 

 


김영하(金英夏, 1969 ~ )의 단편소설로 2002년 [문예중앙]지에 발표되었다. 2003년 간행된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에 게재되었다. 김영하는 1995년, 문단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첫 장편으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였고 새로운 감수성과 열린 시각, 분방한 상상력, 그리고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김영하의 소설들은 1990년대의 도시적 감수성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영하는 기성세대 작가들이 성장하던 사회적 및 자연적 환경과 신세대의 성장환경은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신세대 작가들은 그 새로운 환경을 드러내 줄 수 있는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현실을 묘사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신세대에게는 생생한 현실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편소설 『이사』는 17평에서 34평대 아파트로 이사 가는 평범한 젊은 부부의 이사에 관한 이야기다. 부부의 보물은 인사동에서 헐값으로 구입한 가야 토기다. 이삿짐 업체의 인부인 노란 조끼가 부린 행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우리의 가엾은 주인공들을 골탕 먹이고 분노케 하고 무력감을 느끼기 위해 작가가 고안해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의 평범한 사건 속에 숨겨진 헤아릴 수 없는 긴장을 예리한 감성으로 포착한 작품「이사」는 사소한 용역 업무에도 권력이 숨어있고 소시민 보다 더 열악한 삶을 사는 소시민이 자신의 일을 ‘완장삼아’ 타인을 얼마든지 핍박하고 조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진수)는 17평 아파트에서 5년을 살다가 오랜 소망인 30평짜리 집을 장만했고, 소파 위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바겐세일 하는 백화점에서 소파, 식탁, 티테이블, 침대, 거울달린 화장대를 샀고, 문짝이 덜렁거리는 싱크대와 신발장을 새것으로 갈고, 먼지가 더덕더덕 붙은 등은 버리고, 도배를 새로 하고 장판도 깔았다.

 이사하기 일주일전 이사업체를 선정했다. 힘들이지 않고 우편물에 묻어오는 광고지를 보고 전화로 했더니 직원이 집으로 직접 찾아와 견적을 뽑았고, 가격이 예상보다 저렴하고 친절했다. 직원은  <이사는 저희에게 맡기고 여행이나 다녀오세요>라는 전단 문구처럼 청소도, 살림살이도 정리해 준다고 자랑했다.

 내가 무척 아끼고 이사할 때 신경 쓰이는 물건이 하나 있다. 천오백년의 세월을 건너온 가야토기로 특유의 아취를 발하는 토기다. 귀가 두 개 붙어 있고 <양이> 목이 짧다하여 <단경호>, 그래서 그런 토기를 <양이단경호>라고 불리는데 거무죽죽하며 작고 앙증스런 귀가 있는 그 토기를 예전 양복 한 벌 값으로 인사동에서 구입했다.

 드디어 이삿날이 왔다. 포장이사업체의 사내가 신발을 신고 장판위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들어와 냉장고 문을 열더니 맥주 캔을 꺼내 손에 쥐고, 씩 나를 보고 웃더니 허락도 받지 않고 마셨다. 동의를 구하는 폼이 아니라 전리품을 획득한 군인의 자세에 가까웠고, 말마다 비딱하고 하는 꼴이 속상하고 기분이 나빴다. 계속되는 그의 무례한 행동에 아내와 나는 인부를 바꿔 달라고 하기 위해 포장이사업체에 전화했으나 신호만 가고 전화는 받지 않았다.

 사내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손 없는 날이라 인부 구하기가 힘들 것이라며 이죽거리며 웃었고 뒤이어 사십대 중반 아주머니와 삼십을 갓 넘긴 귀가 들리지 않는 조선족 남자도 와서 허락도 없이 냉장고의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으며 "어차피 녹을 건데, 냉장고 청소도 생전 안하나봐" 라며 아내의 속을 끓게 만들었다.

 이삿짐이 새집에 도착하고 장롱을 들여놓다가 새로 깐 장판을 세 군데나 찢었고, 조선족 남자도 두 군데의 벽지에 흠집을 냈으며, 아줌마는 냉장고에서 나온 것을 엉망으로 다시 들여 놓고 싱크대부엌 살림을 비닐포장이 된 채 수납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그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분개한 아내가 뭐라고 해야 되지 않느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나도 참을 수 없어  " 이런 식으로 할 겁니까!"라며 사내의 멱살을 잡았다가 오히려 뿌리치는 그의 힘에 나가떨어져 허리를 만지며 일어나게 되었다.내가 그에게 이사비 잔금은 못준다고 했더니 사내는 코웃음을 치며 짐을 두고 철수한다고 협박했다. 그래서 오히려 아내가 붙잡으며 미안하다, 죄송하다, 용서해달라고 빌어가면서 이사비를 선금으로 주고 마쳤다. 나는 그들을 피해 17츨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만 피웠다.

 이삿짐이 정리되어 가고 가야토기를 찾았으나 없었다. 먼저 살던 집으로 가니 새로운 사람이 짐을 들이고 있었으며 토기는 찾을 수 없어 아래층에 내려와 보니 바닥에 산산이 부서져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토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사다리에서 내리다 떨어져 가야유물이 쉽게 쓰레기가 되었고 토기조각을 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고 새집에 와 신문에 싸 서랍에 쑤셔 넣었다. 이렇게 전날과 다른 곳에서 잠들게 되는 것을 사람들은 이사라 부른다.

 

 

 

「이사」가 게재된 단편집 <오빠가 돌아왔다>에는 모두 8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런데 읽다보면 모든 단편에 면면히 흐르는 공통점을 깨닫게 된다. 바로 불청객의 존재이다. 8개의 단편 모두 불청객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삶에 느닷없이 출몰해서는 삶을 이전과 다르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도 똑같다.

 '오빠가 돌아왔다'에서 5년 만에 갑자기 돌아온 오빠와 그가 데리고 온 여자가 집안에 일으키는 변화나 '이사'에서 믿고 맡겼던 포장 이사업자들의 주인공의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의 파괴. '보물선'에서 가장 이기적인 자본주의적인 삶을 살던 이에게 가장 이타적인 삶을 살던 이가 문득 찾아와 선사한 불행이라든가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갑자기 찾아온 과거의 인연들이 가져온 혼돈, 모두가 그렇다.

 이렇게 8개의 단편 모두 누군가가 꼭 찾아와서는 나이테처럼 지울 수 없는 파문을 남기는 동일한 패턴을 반복한다. 그러니 하나의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김영하는 왜 이렇게 자꾸 불청객을 등장시키는 것일까? 그것도 늘 혼란과 불안을 가져다주는 불청객을 말이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사람을 괴롭히고 상처를 준다. 따지고 밝히려고 하니, 더 피곤하고 일이 커지기에 참는다는 명목으로 피한다. 잠시 속이 타고 끓지만 참고 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기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이 완장을 차고 무식함을 드러내며 나를 괴롭히고, 몰아붙이며 치더라도 웃으며 살아야 오래토록 건강하게 살 수 있다.

 포장이사로 인해 사람을 분노케 하고, 적적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무력감으로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당한다. 이렇듯 김영하의 소설은 가치파괴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폭넓은 스팩트럼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가치의 상실 앞에서 절망하고 체념하는 사람, 실망을 감추고 냉소의 포즈를 취하는 사람, 타협하는 사람, 철저히 적응하는 사람, 광기에 빠지는 사람, 그의 광기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냉소주의자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가치와 의미가 없이 살아가는 공허한 현실 속의 기계부품 같은 존재들이다. 냉소적 인간도 열정적 인간도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김영하의 소설에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허무적 의식이 깔려있다. 어떤 희망도 그러한 암울한 전망 속에 묻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