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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영하 장편소설 『아랑은 왜』

by 언덕에서 2015. 2. 23.

 

김영하 장편소설 『아랑은 왜』

 

 

김영하(金英夏, 1969 ~ )의 장편소설로 2001년에 발표되었다. 16세기를 명종조 시절을 배경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나비가 되어 원한을 풀게 되는 아랑의 이야기를 그린 <아랑 전설>을 소재로 여러 판본들을 살피면서 서로 다른 시점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빈틈들을 추리해 나가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작가는 무수한 판본이 존재하는 아랑 전설을 소재로 16세기와 20세기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경쾌하고 분방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이야기 밖의 이야기를 탐험하는 유쾌한 서사 전개이며 실험으로도 보인다.

 기존의 소설쓰기 방식을 파괴하면서 이야기의 기능에 대해 실험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한마디로 소설쓰기에 대한 소설이고, 독자들과 함께 집필해가는 '창작교실' 같은 작품이다. 새로운 감수성과 열린 시각, 분방한 상상력, 그리고 특유의 속도감 있는 문체로  실험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그의 도전 정신이 이 작품에 그대로 묻어 있다.

 

 

 

 

 아랑설화의 원천적 문헌으로서 송나라 홍매(洪邁)의 <이견지(夷堅志)> 소재의 <해삼랑전설(解三娘傳說)>의 전문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역관(驛館)이나 역정(驛亭)에서도 항상 귀신이 머무르고 있어 그곳에 묵는 자들이 변사하는 내용의 이야기가 많은 것으로 유추하여 우리나라의 이 아랑설화는 중국 설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아랑설화는 밀양이 본고장으로 그 지리적 배경이 고정되어 있고 실제로 밀양에는 아랑각이 있어 더욱 설화의 진실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계열의 설화가 원령설화의 성격으로 굳어져 이루어진 〈장화홍련전〉과 같이 소설로서 작품화된 것도 있다.

 이와 비슷한 설화는 매우 많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동일 인물 명을 사용한 박종화의 <아랑의 정조>라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 설화를 원용하여 변형시킨 소설로는 정한숙의 <해랑사의 경사>라는 소설이 있다. <밀양 아리랑>도 이 영남루 비화(悲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자, 그러면 김영하 소설 <아랑은 왜> 줄거리를 살피며 작가의 집필 의도를 엿보도록 하자. 

 

<이당 김은호(1882 ~ 1979)가 그린 아랑도(밀양 아랑사 소재)>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통인 혹은 관노가 밀양 부사의 딸을 살해하여 대밭에 버렸다, 시체를 북 속에 숨겼다, 나비가 되어 범인의 상투 끝에 앉아서 혹은 붉은 깃발을 흔들어 범인이 누구인지 알렸다. 아랑 전설은 말하는 이와 청중, 혹은 때와 장소에 따라 조금씩 내용을 달리하며 무수히 많은 판본이 전해진다.

 아랑 전설을 재구성하는 ‘나’는 말한다. "세상 모든 이야기에는 어떤 틈(모순, 불일치, 석연치 않은 대목 같은 허점들)이 있다, 그 틈이야말로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그 틈을 결코 지나쳐서는 곤란하다"고.

 그러면서 나는 아랑 전설을 소재로 소설을 쓰려고 하는 한 소설가와 가상의 책 「정옥낭자전」을 등장시켜 아랑 전설의 다른 여러 판본들과 비교하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틈을 발견하며, 이로부터 새로운 소설의 구상을 이끌어낸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밀양을 대표하는 국가재산인 수산제의 제방이 무너진다. 밀양 부사인 윤관과 아전들은 이 사실을 감영이나 한양으로 알리지 않고 복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일이 진행되던 중에 윤관은 아랑과 통인 안국이의 관계를 알게되었다. 아랑은 다들 밀양 부사의 딸로 알고 있으나 실은 밀양 아전 호방의 딸로 부사 윤관의 숨겨둔 첩실이었다. 분격한 부사는 아랑을 죽였고 통인 안국이는 입을 막기 위해 옥에 가두었다. 안국은 아랑의 살인범으로 탈바꿈해서 죽임을 당한다. 이후 당황한 밀양 부사 윤관은 제방 축조 따위의 일은 다 내버려둔 채로 황급히 밀양 땅을 떠났고, 남은 호장과 아전들이 그 뒤치다꺼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시간이 없었다. 후임 수령이 오면 당장에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그러면 호장을 비롯한 아전붙이들은 자리를 잃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그것은 호장 개인의 문제뿐 아니라 그 가문 전체의 몰락을 의미했다. 그러니 이들은 내려오는 수령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해야만 했다.' 

 화자가 이렇게 결론을 내려갈 때 번역 작가인 박이라는 인물과 동거하던 ‘영주’라는 미용실 아가씨가 자살을 한다. 화자인 나는 아랑의 이야기와 영주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과정에 관해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발생하는 또 다른 틈들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고 현대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마무리 한다. 

 

밀양 영남루

 

 '아랑 전설'은 경남 밀양 영남루에 얽힌 전설이다.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이 되어 자신의 원한을 푼 뒤 변고가 없어졌다는 설화로 신이담 중 초인담에 속하며, 원령설화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경상남도 밀양에 전승된다. 아랑설화라고 제목이 붙여진 것은 손진태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인데, 그 유래는 정인섭의 <온돌야화(溫突夜話)>에서 연유한다.

 손진태는 그의 <조선민족설화의 연구>에서 이러한 계열의 설화를 ‘아랑형전설’이라 이름을 짓고 다각도로 살핀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이런 화형(話型)은 중국 설화에 널리 있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아랑(阿娘)’이 ‘해랑(解娘)’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아랑 전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랑의 성은 윤(尹), 이름은 정옥(貞玉)이었으며, 그는 부친이 영남 밀양태수로 부임하였을 때에 수행하여 밀양에 갔다. 그 고을 통인(通引- 관리명)과 그의 유모 음모에 빠져서 아랑은 어떤 날 밤 영남루의 밤경치를 보러 갔다가 통인 백가(白哥)에게 욕을 당하였다. 그것은 아랑이 달구경을 하고 영남루 위에 있을 때, 별안간 유모는 없어지고 기둥 뒤에 숨어있던 백가가 뛰어 나와서 아랑에게 연모의 정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백가는 아랑을 죽여 강가 대숲 속에 던져 버렸다.

 다음 날 태수는 여러 조사를 하여 보았으나 아랑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는 자기 딸이 야간도주한 것이라 믿고 양반 가문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이상 근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하직하고 한양 본가로 갔다. 그 뒤로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그 날 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신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 때문에 밀양태수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 지원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이상사(上舍- 지난날, 생원이나 진사를 가리키던 말)라는 사람이 지원하여 그 날 밤에 촛불을 키고 독서를 하고 있을 때 별안간 머리를 풀어헤치고 목에 칼을 꽂은 여귀가 나타났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여귀는 그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통인 백가를 잡아 족쳐 자백을 받아내고 아랑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 그 때부터 사또의 객사에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밀양에는 아랑의 혼백을 모신 ‘아랑사(阿娘祠)’가 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이며,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 조작되고 변형되어 왔는가를 살피는 작가의 발언법은 그가 동시대 작가들로부터 훌쩍 뛰어나와 다른 시대에 진입해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실 ‘아랑전설’이라는 많은 판본이 존재하는 이야기를 재구성하여 또 다른 가정 하에 ‘아랑전설’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창작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그런 재구성을 과제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야기의 큰 줄기는 ‘아랑전설’의 기본 구조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우리는 새로운 시선으로,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랑은 왜』안에서 김영하는 이런 일반적인 재구성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그것을 행하고 있다. 『아랑은 왜』안에서 김영하는 우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응용하여 하나하나 그것들을 해체시킨다. 마치 마룻바닥에서 레고를 만지작거리는 아이의 손놀림처럼 김영하는 ‘아랑전설’(들)을 해체 시킨다. 그리고 정교하게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분류해 놓는다. 시점에 관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는 적잖은 인물들 가운데 누구를 구심점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억균이라는 서얼이지만, 직책이 있는 인물을 설정하고 그에게 사건해결을 명한다. 그렇게 시작된 ‘新아랑전설’은 소설가 김영하의 손을 거쳐 현대적인 이야기로 거듭나는 것이다. 또 김영하는 자신이 원래는 이런 얘기를 쓰고자 했노라 하며, 슬그머니 박의 성을 가진 남자와 영주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소설 중간에 끼워 넣는다. 아랑전설의 반전과 더불어 그 둘의 행적에 대한 호기심이 소설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을 땔 수 없게 만든 요인이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