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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박영한 단편소설 『지옥에서 보낸 한철』

by 언덕에서 2016. 5. 24.

 

 

박영한 단편소설 『지옥에서 보낸 한철』

 

 

 

박영한(朴榮漢.1947∼2006)의 단편소설로 1987년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시인 폴 랭보의 산문시집☜ 제목을 소설의 제목으로 삼았다. 이 소설은 영화화하기도 하고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제작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끈 박영한의 <연작소설 우묵배미☜>의 여섯 소설 가운데 하나이다. 1980년대 갑자기 늘어난 서울 인구 때문에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변화하는 모습을 주정뱅이 홍씨와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작가와 가족이 직접 생활한 현장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특성이 뚜렷이 살아 있고 박영한 특유의 걸쭉한 입담과 이야기 솜씨가 읽는 재미를 한껏 북돋아 준다.  

 이 작품은 서울 근교의 우묵배미라는 농촌을 삶의 무대로 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작 소설의 세 번째 소설이다. 이 연작들은 각각 자체의 형식적인 완결성을 갖춘 중, 단편들이지만, 전체가 한 편의 장편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 소설집 <왕룽 일가>는 <왕룽 일가>, <오란의 딸>, <지옥에서 보낸 한철> 등 세 편의 중, 단편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빈부에 관계없이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 대상을 멀리서 관찰해서 바라본 모습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술 마시고 떠들고 싸움을 중재하고 나서는 작가의 위치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박영한은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농촌에서 소를 키우며 글을 썼다고 한다. 모든 인간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이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감이 넘치고 있다. 1988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서울 인근의 시골에 내려와서 소를 키우며 글을 쓰는 작가인‘나’는 전원생활이 주는 신선한 새벽의 평화를 마음껏 음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새벽의 평화는 침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무참히 깨져버렸다. 폭발음이 들리고, 짱구 아빠의 경운기가 뒤집어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새벽 잠자리에서 맛보았던 감미로운 전원의 평화는 꿈의 연장일 따름이고,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우묵배미의 삶은 활극이 벌어지는 지옥임이 확인되는 것이다. 조용하고 평화스러울 것 같은 마을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 

 필용씨의 6촌 친척이 되는 여주댁네는 다섯 식구가 세 들어 산다. 여주댁과 홍씨가 싸움의 주선율을 연주하고, 주리네, 배 서방네, 뚱자네 등이 싸움의 반주를 한다. 한마디로 이 모든 분란의 촉발은 금전 문제에서 기인한다. 수십억을 가진 광용씨가 그의 눈곱만한 월급을 떼어먹는다든가, 혹은 그의 적빈을 약점 삼아 여주댁이 그를 마음껏 부려먹는다든가 하는 세상에서, 그는 어울리지 않는 영악한 계산과 적개심의 칼날을 지녀야만 했던 것이다. 평화롭고 푸근한 인정이 있을 것 같은 우묵배미가 법 없이도 살고, 하루 세끼면 무슨 일이라도 열심히 할 홍씨를 짓밟고 착취하는 마을이 된 셈이다.

 그런데 홍씨 같은 사람마저 주정뱅이로 만들고, 또 영악하게 만드는 이와 같은 환경의 변화는 주로 외부의 힘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서울의 알부자인 광용씨가 홍씨의 월급을 떼어먹음으로써 최초의 홍씨 일탈을 촉발하고, 장씨는 홍씨에게 좋지 못한 충동질을 하여 마을을 떠나게 만듦으로써 홍씨의 삶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홍씨의 결정적 파탄이 외부의 영악한 인물들에 의해 초래된다는 사실과, 외부 세상의 타락이 우묵배미의 삶을 변질시킨다는 점은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절묘하게 암시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여주댁 뒤란에 있는 밤나무에서 밤 서리를 했다는 일로 여주댁과 배 서방네가 일대 격전을 벌여 온 집안이 난리통이 되었을 때, 고물장수 병삼이가 슬그머니 나타나 마당에 나뒹구는 세숫대야를 우그러뜨려 부대에 주워 담고, 또 뒤란에 가서 홍씨가 키우는 닭을 훔쳐가 버린다. 고작 밤 몇 줌 때문에 우묵배미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싸울 때, 외부 사람이 나타나 실속을 차리고, 우묵배미 사람은 결국 더 큰 손해를 보게 되는 셈이다.

 월급 2만원 인상이나 술값 따위의 자잘한 이유로 촉발되는 우묵배미의 활극은 피라미 제 살 뜯기 식의 싸움이다. 외적 조건 때문에 불합리한 경제 공간이 되어 버린 우묵배미에서는 사람들이 점점 더 영악하고 치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런 울화통 터지는 사정 아래서 여주댁이나 홍씨가 영악스러워진다.  

 

 

 

 주인공 홍씨는 선량하고 솜씨 있는 일꾼이지만 병든 아내와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때마침 불어 닥친 쇠고기값 폭등으로 소를 키우는 목부로 여주댁의 행랑채에 들게 된 홍씨는 평소에는 말없이 일만 하지만 술만 마시면 사고뭉치로 주변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다. 그의 일솜씨를 싼값에 붙잡아 두려는 주인 여주댁과 술김에 모든 것을 낭패시키는 홍씨. 결국 견디다 못해 서로가 갈라지지만 몇 년 뒤 홍씨는 다시 여주댁의 머슴격인 돼지치기로 들어오고 만다.

 이 소설의 중심인물은 홍씨이다. 홍씨의 주벽이 빚어낸 사건들로 ‘지옥’ 같은 한 철을 보낸 작가가 그 후일담을 쓴 것이다. 그래서 홍씨의 인생유전담이면서도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풍속 소설이 되고 있다. 우묵배미는 몇몇 토박이 지주들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밀려난 지지리도 못나고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소외된 자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라면 일면 어둡고 부담스러운 방향으로 가기도 쉽지만 이 소설은 전혀 그렇지 않고 굉장히 유쾌하게 읽힌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순박하고 부지런한 인물 홍씨가 점차 술주정과 일탈 행위를 일삼는 문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우묵배미 마을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평화롭고 정겹던 주민들의 관계가 금전 문제 등으로 인해 반목과 갈등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점차 영악하고 추레해지는 모습들을 그림으로써 인간적 삶을 변질시키고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려 놓는 세상의 힘과 영향을 보여준다.

  80년대 후반, 소설의 무대가 되는 서울 근교의 우묵배미 마을은 반농반도시(半農半都市)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서민들의 순박하고 정직한 숨결이 배어 있는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해 변화하고 변질되어갈 수밖에 없는 공간을 표상하고 있다. 연작소설 『왕룽일가』는 이 공간을 무대로 소시민들의 질박한 삶의 모습과 변화하는 풍속의 묘사를 통해 1960년대 이후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의 세태 풍경을 여실하면서도 흥미롭게 그려내고 있다.  

 



 열여덟 살의 조숙한 천재 시인 부랑아 <랭보>의 생애와 문학을 조명한 저서. 17세 이전부터 써온 40여편의 시중에서 초기와 후기에 속하는 것들을 분류해서 수록했다.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시인의 필사적 노력들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담고있다.


1988년 간행된 소설집 <왕룽일가>는 '왕룽일가', '오란의 딸', '지옥에서 보낸 한철' 3편으로 구성되었고,1989년 간행된 소설집 <우묵배미의 사랑>은 '우묵배미의 사랑', '후투티 목장의 여름', '은실네 바람났네' 등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우묵배미'를 소재로 한 6편의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