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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박목월 유고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

by 언덕에서 2015. 3. 4.

 

 

박목월 유고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

 

 

 

 

박목월1(1916 ~ 1978) 시인은 말년에 쓴, 그래서 유고 시집이 되고 만, 이 시집에서 생명의 가치에 대해 묻고 있다. 그는  어디서부터 인간은 생명을 부여받아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인가에 대하여 적고 있다. 그리고 이 물음은 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혈연의 인연을 타고 흐르는 사랑이라든가 애틋한 인정이라는 것이 넝쿨장미처럼 한 가지에 수많은 꽃으로 피어나는 신비하고 뜨거운 삶의 실체를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이 시집의 목월 시에는 인간이기에 겪게 되는 삶의 구비진 어려움을 그 구비 구비마다 절망을 호소하고 절망을 벗어나는 밧줄을 움켜잡고자하는 기원의 호소들이 담겨져 있어 끝없는 감동과 여운을 안겨준다.

 

 

 

 

 

 

3월로 건너가는 길목에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결에는

싱그러운 미나리 냄새가 풍긴다.

해외로 나간 친구의

체온이 느껴진다.

 

참으로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골목길에는

손만 대면 모든 사업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다.

 

동·서·남·북으로

틔어 있는 골목마다

수국색(水菊色) 공기가 술렁거리고

뜻하지 않게 반가운 친구를

다음 골목에서

만날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약간

걸음걸이가 빨라지는 어제 오늘.

어디서나

분홍빛 발을 아장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만나게 된다.

 

ㅡ무슨 일을 하고 싶다.

ㅡ엄청나고도 착한 일을 하고 싶다.

ㅡ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2월에서

3월로 건너가는 바람 속에는

끊임없이 종소리가 울려오고

나의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난다.

희고도 큼직한 날개가 양 겨드랑이에 한 개씩 돋아난다.

 

 


 

 

 

 

 

효자동

 

숨어서 한철을 효자동에서

살았다. 종점 근처의 쓸쓸한

하숙집

 

이른 아침에 일어나

꾀꼬리 울음을 듣기도 하고

간혹 성경을 읽기도 했다.

마태복음을, 고린도전서 13장을.

 

인왕산은 해질 무렵이 좋았다.

보라빛 산어둠에 갈앉고

램프에 불을 켜면

등피에 흐릿한 무리가 잡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아아 그 말씀. 그 위로

그런 밤일수록 눈물은 베게를 적시고,

한밤중에 줄기찬 비가 왔다.

 

이제 두 번 생각하지 않으리라.

효자동을 밤비를 그 기도를

아아 강물같은 그 많은 눈물이 마른 하상(河床)에

달빛이 어리고

서글픈 평안이 끝없다.

 

 

 

 

 

 


 

 

 

내리막길의 기도

 

오르막길이 숨 차듯

내리막길도 힘에 겹다.

오르막길의 기도를 들어주시듯

내리막길의 기도도 들어 주옵소서.

 

열매를 따낸

비탈진 사과밭을 내려오며

되돌아 보는 하늘의 푸르름을

뉘우치지 말게 하옵소서.

 

마음의 심지에 물린 불빛이

그것으로

초밤길을 밝히게 하옵시고

 

오늘은 오늘로써

충만한 하루가되게 하옵소서.

어질게 하옵소서.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수록

안으로 환하게

눈 뜨게 하옵소서.

 

성신이 제 마음 속에

역사하게 하옵소서.

 

하순(下旬)의 겨울도 기우는 날씨가

아무리 설레이어도

항상 평온하게 하옵소서.

 

내리막길이 힘에 겨울수록

한 자욱마다

전력을 다하는 그것이

되게 하옵소서.

빌수록 차게 하옵소서.

 

 

 

 

 


 

 

 

크고 부드러운 손

 

1.

내 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 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 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오

 

2.

어린 것을 내가 키우나.

하느님께서 키워 주시지.

가난한 자에게 베푸시는

당신의 뜻을

내야 알지만.

상위에 찬은 순식물성.

숟갈은 한 죽에 다타는데

많이 먹는 애가 젤 예뼈

언제부터 측은한 정으로

인간은 얽매어 살아왔던가.

이만큼 낼은 선물을 사오께.

이만큼 벌린 팔을 들고

신이여 당신 앞에

육신을 벗는 날

내가 서리다.

 

3.

크고 부드러운 손이

내게로 뻗쳐온다.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그득한 바다가

내게로 밀려온다.

인간의 종말이

이처럼 충만한 것임을

나는 미처 몰랐다.

허무의 저 편에서

살아나는 팔.

치렁치렁한

성좌가 빛난다.

목 언저리쯤

가슴 언저리쯤

손가락 마디 마디마다

그것은 보석

그것은

눈짓의 신호

그것은 부활의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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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朴木月, 본명 : 박영종(朴泳鍾) 1940년을 전후한 시대로부터 탁월한 모국어로 한국인의 느낌과 생각을 노래해 우리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 대표적 민족시인 박목월.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잔잔하게 울려주는 그의 본명은 박영종으로 1916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33년 대구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었으며,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문장》에 〈길처럼〉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1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에 의해 《문장》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심상》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예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두진, 조지훈과의 3인 합동 시집 《청록집》과 개인 시집 《산도화》, 《난·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연작시 〈어머니〉, 〈구름에 달 가듯이〉, 〈무순〉,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 《친구여 시와 사랑을 이야... 1940년을 전후한 시대로부터 탁월한 모국어로 한국인의 느낌과 생각을 노래해 우리 민족의 감수성과 상상력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 대표적 민족시인 박목월.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여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잔잔하게 울려주는 그의 본명은 박영종으로 1916년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1933년 대구계성중학교 재학 중 동시 「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지에, 「제비맞이」가 〈신가정〉지에 당선되었으며, 1935년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문장》에 〈길처럼〉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191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에 의해 《문장》지를 통해 등단했으며,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양대 문리대학장, 《심상》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 문예상, 예술원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박두진, 조지훈과의 3인 합동 시집 《청록집》과 개인 시집 《산도화》, 《난·기타》, 《청담》, 《경상도의 가랑잎》, 연작시 〈어머니〉, 〈구름에 달 가듯이〉, 〈무순〉, 수필집 《밤에 쓴 인생론》, 《친구여 시와 사랑을 이야기하자》, 《그대와 차 한 잔을 나누며》, 《달빛에 목선 가듯》, 동시집 《산새알 물새알》 등이 있다. 1978년에 작고하였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