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 LINE 상의 SNS, 블로그를 말하다
블친 한 분이 말해주셨다. “블로그 한다고 해서 쌀이 생기는 것도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맞는 말씀이다. 블로그란 어떤 것인지 정의해주길 바라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장황한 이야기가 될 것 같지만 되는대로 써보도록 하겠다.
작년 초에 블로그 대상이란 것을 받기 위해 서울에 간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블로그 협회라는 곳에서 메일이 와서 내가 대상 후보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네티즌들의 투표 결과 개인 블로그 중 최우수상 아래의 우수상 이라는 것을 받았다. 상금 30만원을 받았는데 세금을 떼니 27만원이었고 서울 가는 KTX 왕복 차비, 여관비, 식비를 빼니 남는 금액은 2만원이었다.
양재동의 시상식장에서 이른바 전문블로거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상식처럼 틈을 내어 글을 쓰는 개인블로그들은 소수였고 수상자 대부분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업블로그들의 담당자들이었다. 그러니까 회사에서 담당 업무로 블로그를 만지는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삼성, 현대, LG 등의 대기업 계열사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운영 공사들이 운영하는 조직의 블로그 담당자들은 인사상의 특전을 받겠다며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사전에 나오는 ‘블로그’의 정의대로 개인이 운영하는 ‘1인 매체’라고 알고 있었는데 어쨌든 그러한 나의 순진함이 한꺼번에 깨어지는 날이었다. 개인 블로그 수상자들은 전체 블로그 수상자의 1/5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시상식을 지원·협찬 해주는 곳이 대기업과 공기업 등 ‘돈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최 측이 마련해준 개인블로그 수상자 지정석에 앉았는데 옆에 앉은 개인 블로거들을 보고 좀 놀랐다. 가기 전에는 내가 최연장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좀 쭈끌스런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대의 젊은 층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30 ~40대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나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분들도 많아서 블로거 계층의 다양함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수상자들과 명함을 교환하는 등 인사를 했는데, 서로가 궁금해 하는 내용은 하나였다.
“누가 우리를 수상자로 추천했을까요?”
그러니까 수많은 블로그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서 우리가 본선까지 오고 상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나 역시 그에 대한 문외한이긴 마찬가지였기에 그냥 짐작한대로 답했다.
“제 경우에는 포탈 사이트 Daum에서 추천한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내 말을 듣던 젊은 총각은 내게 다시 물었다.
“아닐겁니다. 제 블로그는 유명하지 않은 작은 포털에 있고 게다가 그 포털에서도 제 블로그는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데요? 만약에 Daum이 선생님을 추천했다면 그 사실을 알려주었지 않았을까요?”
나는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모를 땐 가만히 있을게 땡이다.
개인 수상자 중 내 좌석 바로 옆에 앉은 분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블로그(http://blog.naver.com/hcr333)를 운영하는 분이었다. 나와 최우수상을 다투다가 결국에는 함께 우수상을 받은 50대 초반의 신사였는데 지금까지의 블로그 총 방문자가 5천만 명이 넘고 하루에 3만 명이 그의 블로그를 방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아래 그림 참조). 5천만 명이라니? 전 국민이 모두 한번씩은 방문했다는 말이 아닌가? 그의 콘텐츠는 대구에 연고지를 둔 프로야구팀의 경기와 선수들에 대해 전문적으로 논평하는 이른바 ‘야구 블로그’인데 시즌이 끝나는 10월 말부터 4월 초까지는 6~70년대 추억의 한국영화를 소개하면서 블로그 인기를 유지한다고 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화제로 판단되는 게 있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카피하여 무조건 포스팅을 한다고 첨언했다. 이른바 '직업 블로거'를 만난 날이었다.
그는 내게 블로그를 운영해서 제대로 돈이 되게 하려면 IT나 전자제품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하였다. 그는 기업체 등에 강의를 나가는데 그 수입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자신의 블로그는 어쩔 때는 하루에 백만 명이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날은 그가 응원하는 야구팀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한 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블로그에 방문자가 최고로 많을 때는 얼마였지? 생각해보니 3천명 정도였던 기억이 났다. 그것도 서평이 아니고 부산의 음식이나 신규 개봉한 영화 등을 어쩌다 소개한 날이었다. 내가 그런 포스팅을 만드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가볍고 친숙한 포스팅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나와 친한 블로거님이 ‘파워블로거’란 제목으로 쓰신 글(http://blog.daum.net/14935/7016755)을 읽은 적이 있다. 하루 방문객 1,000명 이상 넘어가는 블로거의 파워에 의한 부정적 기능이 심화되어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약하자면 블로거의 글만 믿고 해당회사의 제품을 사용했는데 제품이 사실과 다른 경우 불거지는 문제들이다. 해당회사는 블로거에게 억대의 돈을 건넨 사실도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이 파워블로거들은 전자제품이나 IT기기, 맛집 등에 대해 대단한 권력을 가진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이들 문제의 ‘맛집 블로거’들은 공짜 식사는 물론이고 포스팅의 대가를 금품까지 요구한다고 하니 통탄할 일이다(모든 맛집 블로거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마시라).
미식가로 자부하는 나는 지인들과 저녁 약속이 있으면 오늘은 뭘 먹지? 하면서 유명 맛집 블로그를 찾아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발견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그 집이 ‘맛집’인 것이 아니라 블로거 자신이 가본 집을 그냥 포스팅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맛집’이 아니라 ‘내가 가본 음식점’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어디 가야하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이들에게 정보를 자주 제공하다보니 내가 가본 곳이 ‘맛집’이 되고 자신도 모르게 ‘권력’을 가지게 된 경우가 아닌가 한다. 권력은 자긍심과 동시에 자만심 낳는다.
마슬로우(Maslow)에 의하면 인간의 욕구는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생물학적 (Physiological) 욕구, 안전(Safety)에 대한 욕구, 사회적 (Social) 욕구, 자긍심(Esteem)에 대한 욕구, 자기실현(Self-Actualisation)에 대한 욕구 등이다. 아마 유명블로거가 되고 싶은 욕구는 4단계와 5단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욕구이다. 유명해지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일탈한 대표적인 케이스가 영리에 치중해 사회적인 불협화음을 내는 경우가 아닌가 한다.
블로그를 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들을 생각나는 대로 몇 자 적어볼겠다.
● 친구라고? 그 알 수 없는 개념
라고 써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되자고 신청하는 분들이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많다.
NAVER 블로그에는 이웃, Daum 블로그에는 친구, 이렇게 약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상대를 설정하게 하고 이들끼리는 다른 블로그에서는 공개되지 않는 포스팅을 공유할 수 있는 개념을 말하는 듯하다. 온라인 상에서 상대방을 온전하게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친구 맺기’보다는 ‘즐겨찾기’가 무난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자신의 블로그를 비공개로 설정한 채 친구를 신청하는 경우, 블로그 포스팅이 전혀 없으면서 친구를 신청하는 경우, 상업용 블로그이면서도 친구를 신청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렇게 '친구'가 되어서 나랑 뭘 어쩌자는 건데? 그런 '친구 신청'을 바라볼 때마다 복잡한 시선이 생김은 물론이다.
● 날마다 난무하는 복사 댓글
생판 처음 보는 아이디 인데 “평소에 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로 시작하는 댓글을 보내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뭐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분들 잊을 만하면 나타나 부지런하게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수십 수백 곳의 블로그에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 같은 말을 도배해 놓는다. 그리고 명절이면 다음과 같은 방명록도 줄기차게 남긴다. 도대체 왜 이럴까?
福新年 구정에 즈음 세배하러 새아침에 왔어요
가정의 화평하심과 평화하시길 축원합니다/
저에겐 떡국이나 아니면 세뱃돈 아니면 福 미소를 한방 주시어요
답은 뻔하다.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블로그를 알리고 싶고 방문자 숫자를 늘리고 싶은 거다. 방문자 수가 늘면 뭐가 바뀌나요? 유명해지고 싶은 심경은 이해하지만 꼭 저런 식이어야 할까 안쓰럽다.
●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배려와 예의를
진영 논리를 쌓아놓고 그에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포스팅을 발견한 경우, 입에 올리기 곤란한 욕설로 공격하는 경우다.
"당신은 한나라당이 장악한 경상도 사람, 보수 골통 우익이 아니냐?"
또는
"당신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을 보니 좌빨이 틀림없다."
나는 내가 특정 진영에도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좌˙우 어느 한 쪽 날개만으로 세상이 움직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댁의 블친이 나에게 공격적인 댓글을 달았다. 무슨 이유로 당신은 그렇게 유도했느냐?”
나는 나의 블친이 누구인지도 모르거니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의견을 전했다. 답이 왔다. 착오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사라졌다. 이런 경우를 자주 접한다. 내가 그들의 눈앞에 존재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저열한 인품과 인격을 확인해야만 했다. ON - LINE일수록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중요하다. 직접 대면할 때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는 곳이 블로그 공간이기도 하다.
● 블로그라는 개인 웹미디어가 가진 소통의 양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개인 웹미디어에서 의사소통은 자기표현적(self-representative), 관계지향적(network-oriented), 참여지향적(participatory)이기 때문에 블로그 공간 내 의사소통은 사적, 공적 속성을 동시에 보인다. 사적 공간에서 불특정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글을 게시하는 공표행위(publishing)는 개인 웹미디어 공간을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혼재된 상태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혼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은 이상적, 규범적 상황과 달리 참여자들이 감정적, 비이성적 속성을 보이며, 이는 개인 웹미디어 공간에 대한 비판의 원인이 되곤 했다. 블로그 공간의 소통에서 준수되어야 할 윤리사항으로 타인에 대한 존중, 위해 요소의 최소화 등이 지적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편 네티즌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바로 옆에 앉아있다는 생각을 하면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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