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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by 언덕에서 2014. 12. 17.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은 연기를 피우는 향로를 들고 한 바퀴 관을 돌고 축성된 성수를 뿌림으로써 누나의 시신과 영혼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나는 온갖 화려한 꽃다발 속에 놓인 누나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누나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제 다시는 살아있는 누나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푸른 연기 속에 떠오르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물기에 젖어 뿌옇게 흐려져 가고 있는 것을 나는 느꼈다.

 “항상 자비로우시고 너그러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이 세상을 떠난 최 데레사(경욱) 자매를 위해서 겸손되이 강구하나이다.”

 마침내 제단 위에 올라간 신부는 제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믿었사오니 이제는 본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마침내 여덟시 정각이 되자 신부님의 본 기도로 영결미사가 시작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제는 본 고향으로 돌아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란 기도 말이 떠올라 줄곧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란 성녀 데레사 수녀의 말처럼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인 것이다. 인생이란 낯선 타향에서의 짧은 귀양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낡은 허물을 벗고 천지창조 전부터 있어왔던 본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할례(割禮)의식을 통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당 측에서 나누어준 영결미사 팸플릿에는 큰 누나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새색시처럼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새빨간 한복을 입고 있는 큰누나의 사진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 데레사(경욱) 자매(1930년 9월 9일 ~ 2000년 2월 16일)

 

 

 

 

 

 

 

-- 최인호 저 <가족 7(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p 98 ~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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