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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신경숙 단편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

by 언덕에서 2015. 4. 9.

신경숙 단편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

 

 

신경숙(申京淑, 1963 ~)의 단편소설로 1996년 [창작과비평]지 여름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에는 삶이 고달프고 마음이 슬픈 이들의 사연이 이어진다. 고흐의 그림에는 희미한 램프 불빛이 비치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묵묵히 식사를 이어가는 이들, 투박한 손과 허름한 옷차림, 식사의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이들의 표정이 시선을 붙잡는다. 소설 속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희미한 등불 아래서 허름한 옷차림으로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감자를 까먹고 있었죠. …낡은 의복과 울뚝불뚝한 얼굴은 어두웠지만 선량해 보였습니다. 감자를 향해 내밀고 있는 손은 노동에 바싹 야위어 있었지요.”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은 하루의 고된 노동을 끝내고 돌아온 사람들이 희미한 조명 아래서 몇 알의 감자로 초라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풍겨지는 삶의 모습은 ‘고단함과 슬픔’으로, 이는 인간이 지닌 숙명적인 것이다. 이 그림이 가난한 이들의 삶에 배인 고통과 슬픔을 보여 주고 있는 것처럼 신경숙의 소설 ‘감자 먹는 사람들’도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그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그림으로써 인간이 살아가면서 접하게 되는 숙명적인 슬픔과 고통을 잔잔하게 보여 주고 있다.

 

 

 

감자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가수인 '나'는 뇌질환으로 입원 중인 아버지의 병간호를 하면서 윤희 언니에게 편지를 쓴다.

 소설 속 화자 ‘나’는 1집 앨범만 겨우 내놓은 28살의 무명 가수다. 그의 아버지는 7년 전 한 해에 4번이나 혼절을 한 적이 있었고, 지금 그것이 재발해 의식이 오락가락한다. 그는 입원 중인 아버지를 간호하며 방송사 PD인 윤희 언니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윤희 언니는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위암을 얻은 남편을 5년 동안 간호했다.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병실에서 쓰는 편지에는 스러져가는 사람들의 사연으로 가득하다. 공사장에서 목재에 머리를 맞고 어린아이 같은 상태가 된 어느 건축 노동자, ‘달님’이라고 딸의 이름을 지었더니 달처럼 강물에 빠져버렸다며 급류에 휩쓸려간 딸을 추억하는 중년의 남자, 가혹한 유년기를 보내고 삶이 좀 펴지려나 했는데 이제는 3살짜리 딸의 소아당뇨로 다시 서글픈 일상을 되풀이하게 된 고향 친구 유순. 그러나 화자는 상실을 맞닥뜨리면서도 한결같이 담담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슬픔에 의해 위로받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픈 남편에게) “손을 잡히고 나면 하루분의 영양분을 공급받은 것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루를 버틸 수가 있었다”고 말했던 윤희 언니의 말을 비로소 이해한다.

 그래서일까. 화자의 시선은 슬픔의 중첩으로만 그림을 보았던 타인의 시선과는 많이 다르다.

 “하루분의 노동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일까? 저녁 식사가 저 몇 알의 감자일까? 그래도 그들의 표정은 무척 풍부했습니다. 태양 아래의 감자밭이 그들 얼굴 위로 펼쳐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비참에 억눌릴 만도 한데, 오히려 그들의 표정은 인간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눈빛과 손짓과 낡은 의복으로요.”

 이러한 가운데에서 ‘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느끼게 될 상실감과 그 이후의 삶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삶의 숙명적인 슬픔과 고뇌를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복권 판매소 The State Lottery Office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근친의 죽음 또는 의학적인 불치와 관련되어 극한의 비극성을 띠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술자의 목소리는 감정적으로 격앙되지 않고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나타난다. 이런 서술자의 목소리는 화해할 수 없는 비극적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와 엄청난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절제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감정의 절제는 현실의 주체할 수 없는 비극성과 대비되어 오히려 더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작자 자신의 내면을 옮겨 놓은 듯한 1인칭 서술자의 독백을 통해, '윤희 언니'라는 대상에게 삶에서 겪은 사건과 그에 대한 정서와 인식을 털어놓는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다.

 

 

 편지글의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소설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비록 '윤희 언니'를 청자로 하였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당사자가 자신이 겪는 삶의 주변과 체험을 스스로 드러낸다는 점이고, 둘째는 글의 내용상 아버지의 병환, 어머니의 고통 등 가족 구성원의 삶의 경과라는 서사적 내용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작자는 '윤희 언니'라는 상대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자신에게 뼈아프고 고통스러운 체험적 사실들과 슬픔의 감정을 담담하고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편지의 형식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연들은 모두 가슴 아픈 사연들이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간직하고 살아가게 마련인 이 숙명적인 상처와 아픔을 고요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엮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