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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황석영 장편소설 『손님』

by 언덕에서 2015. 4. 28.

 

황석영 장편소설 『손님』

 

 

 

황석영(黃晳暎. 1943 ~ )의 장편소설로 2000년 10월부터 2001년 3월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소설을 단행으로 엮은 책이다. 한국전쟁 당시 일어났던 황해도 <신천군 학살사건1>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형제간에 얽힌 아픈 과거를 소재로 한국전쟁과 남북현대사로 이어져온 민족의 한과 상처를 작가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어루만지며 화해와 위로의 의미를 전한다.  

 해방 후 북한에서 사회주의와 기독교는 철천지원수의 이데올로기로 변하고 전쟁 전까지 형성된 지하교회는 일종의 지하조직으로 되었다. 백색테러로 유명한 서북청년단이나 한독당 또는 반공청년단의 정신적 근거가 사실은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와 깊게 관련되어 있었기도 했다는 것이 작가의 변이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신천군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대학살'이라는 그림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사건이다.

 장편소설 『손님』은 굿판에서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며 제각각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는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씨줄로, 등장인물 각자의 서로 다른 삶의 입장과 체험을 통하여 하나의 사건을 모자이크처럼 총체화하는 작업을 날줄로 삼았다. 이 두 개의 줄을 서로 엮어 한 폭의 베를 짜듯 촘촘히 구성하는 작업은 한 사건이 빚어진 상황을 풍부하게 해체하고 반영한다. 결과적으로 이 소설은 황석영만의 새로운 서사와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뷰하는 황석영 작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에 가게 되는데, 요섭의 방북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그의 형 류요한 장로가 숨을 거둔다. 그 며칠 사이 요섭은 알 수 없는 꿈과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요섭은 유품으로 남은 수첩에서 요한 형이 박명선이란 여인을 만나기로 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양로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박명선은 류요한 장로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풀지 않고 동생 요한에게도 냉대로 일관한다.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요한은 화장하고 남은 형의 뼛조각 하나를 챙겨 넣은 채 평양으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다. 홀연 죽은 형의 유령이 나타나 고향으로 가는 그와 동행하게 된다.

 요섭은 초현실화 속에 걸어 들어온 듯 멍한 기분으로 평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고향인 황해도 신천 찬샘골로 향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형의 헛것은 그와 하나가 되었다 둘이 되었다 하면서 50여 년 전 과거의 아득한 기억으로 그들을 불러들인다. 요섭은 형이 북에 남기고 온 아들 단열과 해후하는 한편, 고향땅에 세워진 '학살박물관'을 참관하며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듣는다.

 한국전쟁 당시 '미제'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그곳에서 요한은 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 1950년 인천상륙 이후의 끔찍했던 45일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서리치며 눈물짓는다. 북한의 관리들은 미군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우익기독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만행의 현장인 것이다. 서로를 죽이고 죽던 검은 유령들이 요섭에게 떠올라 저마다 그때를 이야기한다. 요한과 요한의 아내, 두더지 삼촌과 이찌로, 이렇게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원통한 하소연이 시작된다. 그곳에서  귀신이 된 형 요한과 고향에서 만난 당시 같이 살았던 동네 친구, 고향 마을에서 먼저 죽은 마을 사람들이 요섭에게 옛날에 있었던 자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방으로 인하여 세상이 바뀌고,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정권이 바뀌면서 그에 부응하여 무력을 가진 자는 무자비한 권력을 휘두른다. 그에 따른 보복으로 무차별한 살육이 가해진다. 요한도 기독교청년단으로 공산당 활동을 하던 많은 동네 사람들을 죽인다. 요한은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을 철사줄로 묶고, 몽둥이로, 또 총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같은 소속인 상호가 큰누나를 죽임으로써 요한도 그에 보복으로 상호의 애인가족을 죽인다. 류요한은 이데올로기를 떠나 자행되는 살육현장을 보고 이제는 편 가르기 싸움은 끝이라고 스스로 선언한다. 그리고 갓 해산한 아내를 두고 고향을 떠난다.

 류요섭 목사는 형의 뼛조각을 고향에 묻고, 북에 살아 있는 류요한의 아내 즉 형수가 건넨 형의 옷가지를 태우면서 북한에서의 시간을 정리한다. 결국 그 한이 맺힌 사람들이 이제 한자리에 모여 서로가 자신의 한을 이야기하고 선도 악도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피카소, '한국에서의 대학살', 1951년작)

 

 

 이 작품은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신천군 학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위의 그림,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대학살'이라는 그림의 배경이 된 바로 그 사건이다.

 3만 5천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고 하는 이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는 남북한의 주장이 엇갈린다. 북한에서는 미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남한에서는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피카소는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북한 측의 주장을 따른 듯하다. 그림에서 피카소는 위 그림 오른쪽의 군인들이 미군이라고 그린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이 죽음은 보통의 죽음이 아니라 해당 도시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3만 5천여 명의 민간인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고 그것은 이데올로기와의 충돌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을 맞고, 해방 후 옛 지주였던 사람들이 또다시 그 지방의 유지를 자처하고,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들어오면서 그 기득권세력을 허물어 가는 과정에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충돌이 생긴다. 그것은 결국 상대편에 대한 무참한 폭력과 학살로 나타난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29943 )

 

 

 

 

 어느 놈이 손에 철사 끄틀얼 쥐구서난 달래들두만. 철사를 낀타불겉이 내 코에다 꿰이넌데 아무 정신이 없다고 해두 코빼럴 뚫어선 나르 잡아끄닝개 눈과 얼굴이 당꺼번에 트더져나가는 거 같아서. 철사를 쥐구 톡톡 잡아댕길 적마다 얼굴이 아조 찢어지는 것 같두만. 요한이가 말했다.

 이거이 다 우리 하나님이 내리넌 천벌이다.  - 214쪽

 이 사건은 <북한의 기독교인과 공산주의자 간의 충돌로 인해 벌어졌다는 설2>에 기반을 두고 있다. 주인공인 류요섭 목사는 작가의 지인인 유태영 목사가 실제 모델이라고 하며,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유태영3 목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제로 유태영 목사는 미군의 학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미군의 학살이 아닌 기독교인의 공산주의자 학살로 서술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의 진위 증명을 배제하고서도 이 소설은 전쟁의 참혹함이나, 인간의 사악하고 편협한 측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은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서 지니게 된 모더니티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대의 계급적 유산에 남도에 비해 희박했던 북선지방은 이 두 가지 관념을 '개화'로 열렬하게 받아들였던 셈이다.

 

 

 

고야<1808년 5월 3일>

 

 

 작가도 밝히듯이 이 소설에서 '손님'이란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킨다. 작가는 1950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배경으로 이 땅에 들어와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이 두 가지 이데올로기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인간 군상들의 원한과 해원을 그려냈다. 그럼으로써 한반도에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가 열려나가기를 희망한다.

 『손님』은 황석영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방북취재, 선 굵은 서사구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실험정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은 형식적인 면에서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얼개를 차용하여 작가가 새로이 구성한, 리얼리즘의 틀을 깨고 나온 리얼리즘이라 할 만하다. 지노귀굿은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형식의 '넋굿'으로 지방에 따라 진오귀, 오구, 지노귀 등으로 불린다.

 이 장편소설은 지노귀굿 형식의 ' 1. 부정풀이 →2. 신을 받음 → 3. 저승사자 → 4. 대내림 → 5. 맑은 혼 → 6. 베 가르기 → 7. 생명 돋움 → 8. 시왕 → 9. 길 가르기 → 10. 옷 태우기 → 11. 넋반 → 12. 뒤풀이'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1. 1950년 10월, 인천상륙 작전 이후 한국전쟁의 판도는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의 반격과 3.8선을 넘어 북진이 시작되었고 조선인민군은 패퇴를 거듭했었다. 국군과 UN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향해 질풍같이 진격하고 있었고, 불법남침했던 조선인민군은 물론 조선로동당은 황급한 후퇴와 패퇴를 거듭했었다. 이러한 가운데,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간 황해도 신천군에서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 무려 약 3만 5천여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그 학살의 주체가 어느세력인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본문으로]
  2. 실제로는 미군과 대한민국 국군이 입성 소식을 미리듣고 봉기한 지역 우익청년단들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시 미군과 국군은 평양시 점령에 집중해 있었으며, 황해도 신천군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학살주동자가 '해리슨'이라는 미군 중위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실제로 신천군에 머물던 미군 명단에 보면 '해리슨'이라는 이름이 없다.황해도 신천군 지역은 평야지대로 광복 직후부터 지주와 소작인 간의 갈등과 좌우익간에 갈등이 적지않았던 곳이었다. 그런 갈등은 1946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급진적인 토지개혁을 둘러싸고 좌우대립 갈등이 더욱 첨예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토지개혁과정에서 상당수 우익청년들은 대한민국쪽으로 내려가거나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1950년 10월, 그들이 국군과 유엔군의 진격을 앞두고 선발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어 그들은 신천군에 남아있던 좌익활동가들에게 보복을 가했는데, 특별한 잘못없이 남아있던 민간인들도 부역혐의를 받아 처벌대상이 되었다. 민간인의 희생은 우익들의 후퇴 과정에서 미군의 폭격과 함께 다시 한번 재개되어 버려 희생자 수는 더욱 급격히 늘게 되었다. 때문에 이 사건은 좌-우 대립과 갈등등 복합적인 원인등으로 터진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다. [본문으로]
  3. 유 목사는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미주본부 공동의장을 역임했고 현재 6.15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공동대표로 있다. 또 재미동포 전국연합회 상임고문을 맡고 있으며 미국 교계의 원로인 좌파 인사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