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단편소설 『삼포 가는 길』
황석영(黃晳暎.1943∼ )의 단편소설로 1973년 9월 [신동아]지에 발표되었다. 1974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펴낸 소설집 <객지>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국의 공사판을 찾아다니는 부랑 노동자 정씨와 영달이 술집 작부 백화를 눈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하는 이야기를 그린 단편 소설이다. 1970년대 우리 사회 서민들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소설은 산업화로 치닫고 있던 그 시대의 뒷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으로 황석영씨는 그 전에 내놓은 <객지>, <한씨 연대기> 등에 이어 당대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 주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 작품은 '삼포'라는 가공의 지명을 설정해 산업화가 초래한 고향 상실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1970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뿌리를 잃고 도시의 밑바닥 생활을 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상황의 황폐함과 궁핍함이 영달과 정씨 같은 떠돌이 일용 노동자, 백화와 같은 술집 작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면서 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다.
삼포는 정씨에게 있어 오랜 부랑 생활을 끝내고 안주할 수 있는 곳, 즉 정신의 안식처이다. 그러나 옛날의 아름다운 삼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삼포가 산업화의 물결에 휩쓸려 그가 떠나고자 했던 도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을 알게 된 순간 정씨는 영달과 같은 입장이 되고 만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눈 내리는 겨울날, 두 명의 떠돌이가 길을 간다. 공사판에서 일하는 떠돌이 노동자 노영달, 서른대여섯 살의 사내로 감옥에도 다녀온 적이 있는 정씨, 그의 고향은 삼포라는 섬이다. 그가 삼포를 떠난 것은 십 년 전. 그때의 삼포는 아름다운 섬이었다. 비옥한 땅은 남아돌고 고기도 풍부하게 잡을 수 있는 곳. 그는 고향에 가 보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눈길을 걸어 역으로 가는 도중 술집에서 도망쳐 나온 백화를 만난다. 백화는 18세에 가출해 4년이 넘는 작부(酌婦) 생활로 앙칼지게 다져진 아가씨다. 그녀도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서로의 처지를 알게 된 영달과 정씨, 백화는 동행이 되어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길에서 백화는 눈구덩이에 발을 삐어 주저앉는다. 영달은 싫다는 백화를 업고, 백화는 영달의 어깨가 든든하다고 느낀다. 영달은 백화가 어린애처럼 가벼워 애처롭다.
마침내 그들은 역에 도착한다. 백화는 전라선, 정씨는 호남선을 기다린다. 정이 든 백화는 영달에게 자기 고향으로 함께 가자고 말한다. 함께 가라고 정씨도 권유하지만, 영달은 백화의 차표를 끊어 건네주고 돌아선다. 백화는 돌아서서 눈시울을 붉히며 떠나고, 남아서 삼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대합실에서 만난 노인한테서 삼포 소식을 듣는다.
삼포는 관광지로 개발되느라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고,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는 것이다. 막막해진 두 사람은 기차가 왔으나 돌아서서 또 다른 공사판을 찾아 쓸쓸히 걸음을 옮긴다.
이 소설은 삶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지친 삶을 기대고 있는 곳은 삼포이다. 그들의 고향이자 안식처인 그곳을 향하여 추운 겨울날 길을 떠나 걷고 있다. 공사판 노동자인 영달과 정씨, 그리고 술집 작부로 잇다가 새벽에 도망쳐 나온 백화, 세 사람은 모두 ‘막 가는 인생들’이다.
이 소설은 경제개발 바람이 휘몰아치던 1970년대 산업화 시대의 한 뒷면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풍경화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민은 뿌리를 잃고 도시로 흘러들어 일용 노동자로 떠돌아야 했다. 이러한 시대의 황폐함과 궁핍함이 영달, 정씨, 백화를 통해 소설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정씨가 돌아가고자 하는 고향, 그곳에 적당히 따라가 빌붙고 싶어 하는 영달의 욕망은 삼포에 밀어닥친 공업화로 좌절되고 만다. 이들이 삼포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정신적 지주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이들이 밑바닥을 헤매다가 쉴 곳은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다. 그저 공사판의 떠돌이로 이곳저곳 정처 없이 떠돌아야 하는 운명만이 그들에게 남아 있다. 작가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 민중들의 서글픈 삶이다. 어쩔 수 없이 부닥친 현실에 널려 있는 우리 이웃들이 바로 이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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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산업화의 과정에서 농민은 뿌리를 잃고 도시의 밑바닥 생활을 하며 일용 노동자로 떠돈다. 이러한 상황의 황폐함과 궁핍함이 '영달'과 '정氏' 같은 부랑 노무자, '백화' 같은 작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면서 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다. '정氏'에게는 이제 그 옛날의 아름다운 삼포(森浦)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육지로 연결된 삼포는, 그가 떠나고자 했던 도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산업화 된 공간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삼포는 그에게 있어 오랜 부랑 생활을 끝내고 안주할 수 있는 곳, 곧 정신의 안주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정氏'에게 있어서 삼포(森浦)의 상실은 곧 정신적 고향의 상실을 의미하며, 그 순간 '정氏'는 '영달'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부랑자가 되고 만다. 이런 의미에서 <삼포(森浦) 가는 길>은 1970년대 산업화가 초래한 고향 상실의 아픔을 형상화해 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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