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그 시절 백일주화(百日晝話)

by 언덕에서 2015. 2. 6.

 

 

 

 

 

그 시절 백일주화(百日晝話)

 

 

 

 

 

 

 

'IMF가 온 해'라고 표현되던 그 해에는 이탈리아의 작가 보카치오가 중세에 완성한 단편 소설집 ‘데카메론’에서처럼 몇 명이 모여서 한 가지 주제를 갖고 무위도식하며 떠들던 날이 있었다. 1998년 당시 다니던 회사는 새 정권의 구조 조정 방침에 의하여 와해 직전의 상태로 몰리고 있었다.  데카메론은 열흘 정도 계속되었다지만 그때 실없이 나누던 이야기는 백 일이 넘었다는 기억이다. 그것도 저녁에는 퇴근을 했으니 낮에만 이루어진 이야기고 그래서 백일주화(百日晝話)로 명명해보겠다.

 30만평 이상 되는 넓은 땅에 지은 공장의 생산 라인은 올 스톱 상태였다. 직장이라고 출근은 했으나 경영진부터 간부, 사원 할 것 없이 모두 손에 일을 놓은 상태였다.

 생산 라인에는 선공정과 후공정이 있다. 나는 자재 담당 간부로 현장에서 입고를 담하는 부서와의 호흡이 중요했다. 회의를 자주 하다보니 후공정인 그 부서원들과 유독 더욱 친해졌는지 모르겠다.

 그 부서의 책임자인 권 과장과 원 대리는 형제간처럼 사이가 좋아보였다. 부하인 원 대리는 과장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았지만 깍듯이 정중했고 과장 또한 경어를 쓰며 그를 존중했다. 나는 세 살 아래의 박 대리를 수하에 두고 있었는데 그는 입사 후 교육 업무만 맡았던지라 원만한 성격은 물론이고 항상 유머가 넘쳤으며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사내 최고라고 부를만했다.

 우리 네 명은 거의 매일을 공장 한구석 회의실에 모여 하루에 두 시간 씩 잡담하는 것으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월급은 나왔으나 회사의 존망은 비관적이었고 이렇게 망한다면 이제 삼십대 중반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걱정이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걱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었고 매일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보니 살아온 경험담이나 잡담으로 시간이 흐르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네 명은 느끼게 되었다. 음담패설을 누군가가 흘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매우 유쾌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원 대리가 우연찮게 고백한 그날 아침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1. 

 

그날 원 대리의 얼굴은 더욱 검게 보였다. 그는 간이 안 좋은 건지 술 마신 익일에는 얼굴이 검게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물었다.

 “원 대리, 어제 한 잔 했어요?”

 “표시납니까?”

 “그럼, 딱 보니 그러네.”

 잠시 망설이던 원 대리는 집 앞 아파트 단지 상가에서 친구들과 꽤 마셨다고 했다.

 “다 마신 후에 노래방에 갔었죠. 그때까지는 좋았는데…….”

 원 대리가 사는 곳은 내 조부께서 몇 만 평 논을 갖고 계시던 평야 지역으로 부산시의 팽창으로 인해 아파트 단지로 변신한 김해시의 중심 지역인데 멀리 떨어진 녹산공단과 창원공단의 베드타운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대규모 아파트가 급속도로 지어진 탓에 식당, 술집, 노래방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가정주부들이 아이들 학원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노래방 도우미로 동원된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터였다.

 "무슨 사건이 있었구만?"

 "원래 내외동 지역 노래방은 아줌마 부대가 유명하잖아요."

 "아줌마 부대라니?"

 "평범한 가정 주부가 저녁이 되면 아르바이트 겸 해서 노래방 도우미로 오는 거죠."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신문에 많이 나와있는 걸 보았지요. 그래서?"

 "내 파트너로 온 그 아줌마와 부루수도 추고 어깨동무도 하고 그랬지요. 히히"

 내가 말했다.

 "백고일부라는 말이 생각나는구만."

 "무슨 말입니까?"

 "백 번 고고 추는 것보다 한 번 부루스 추는 게 낫다는 말." 

 모두들 크게 웃었다. 그러다 내가 물었다. 

 "그런데 무슨 문제가 생겼나보죠?"

 "오늘 아침에 출근하다 어젯밤의 그 아줌마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게 되었죠. 제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의 아래층에서 살고 있는 거예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순간 서로 사색이 되었어요. 하,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녀야 할지 캄캄합니다."

 나는 그 장면이 상상이 가서 계속 '푸하하'하며 끊임없이 웃고 말았다.

 

2.

 

 권 과장 역시 박장대소하며 '이번에 우리편이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에는' 하면서 이야기를 주문했다.

 나는 고2 여름방학 때 친구랑 진하 해수욕장에 2박3일의 일정으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민박집을 얻었는데 베니어판으로 벽을 만들어 큰방 하나를 두 개로 나뉜 방을 얻게 되었다. 그집은 넓은 마당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집이었고 저녁 무렵에 젊은 여인 하나가 우물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몸을 씻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날 밤이었다. 울산에서 영업택시 운전을 하는 총각과 애인인 아까 그 여인이 투숙한 옆방에서 라디오로 연출된 '라이브 쇼'가 진행되었던 것이다. 밤새도록 핥고 빨고 신음하는 소리에 나랑 친구 녀석이 잠을 이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더니 심더렁한 반응이 의외였다.

 "윤 과장, 재미없어요. 이럴거요?"

 끙! 하고 곤혹스러워 하자 눈치 빠른 박 대리가 끼어들었다. 이번에는 박 대리 친구 녀석의 경험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공무원인 그 녀석은 동창 중 최고의 호색가로 불렸다 한다. 웃기는 것은 30대 초반부터 카바레에 다니며 술을 마셨던 것인데 그렇다고 춤을 출 줄 안다던지 하는 것도 아니었다. 녀석은 카바레가 내어뿜는 음침한 분위기가 술맛을 돋군다고 했다.

 그 녀석은 이웃 도시에 있는 카바레에서 놀다가 돌아오는 길에 늙은 여자 하나를 승용차에 태웠다는 사연이었다. 자정이 지난 산중의 국도에 차를 세우고 손을 뻗어 만지려 하자 여자가 말을 듣지 않더라는 것이다. 완강히 버티는 여자에게 승용차 문을 열면서 '못 만지게 하려면 여기서 내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자는 한참 동안 망설이더니 그럼 마음대로 하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만져! 어쩔 수 없잖아."

 이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들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이윽고 권 과장이 박 대리에게 물었다.

 "그 친구 자주 만나요? 하하,멋지네."

 "멋지긴요, 아주 미친 놈이지."

 

3.

 

 이야기를 듣던 권 과장이 끼어들었다. 타인보다 심각한 성욕구 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괴로웠다고 했다. 중학교 이학년 때, 보충수업을 하던 여름방학의 어느날 영어시간이었는데 맨 뒷자리에 앉은 그는 무언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상 때문에 눈을 감고 자위행위를 했고, 그걸 눈치챈 총각 영어 선생님은 교실 뒤로 걸어와 그가 바지 단추를 다 잠글 때까지 기다렸다가 웃으면서 손바닥을 열 대 때리고 돌아갔다고 했다.

 고향이 마산인 권 과장은 살짝 대머리로 접어들고 있었는데 이른바 소갈머리가 없기보다는 주변머리가 없는 측에 속했다. 유머 감각이 대단한 그는 마산에서 인천에 위치한 항공기 재벌이 만든 모 대학교의 공대에 유학했는데 학교에서 하숙집을 오가는 중간 지점에 창녀촌이 있었다고 했다. 이른바 그의 표현을 빌리면 무식한 공돌이가 여자를 사귈 방법이 없어서 택한 것이 그곳을 드나드는 것이었는데, 단골 아가씨가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좋아했기에 단골까지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말했다.

 “부모님이 고향 마산에서 매월 빠듯한 하숙비와 용돈을 보내주시는데 어쩌다 한 번 그곳에 가서 그 아가씨를 만나려면 일주일 용돈이 날아가지요. 돈은 없고…….그러다 보니 하숙집 생활에서 저렴한 자취방 생활로 바꾸어야 했고 급기야는 매일 세끼 밥 먹던 것을 두 끼 라면으로 때워야만 했지.”

 나는 이야기를 듣다 ‘푸핫!’하고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이런 내게 눈을 동그라니 뜨고 크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 아가씨를 만나기 위해 몇 달 동안 매일 라면을 끓여 먹어야 했다니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푸하하~~’눈물이 날 뻔하며 웃었다.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해 취직을 하고 인천에 출장갈 일이 있어 그곳을 다시 찾았었는데 그 집 주인은 그대로인데 그 아가씨는 딴 데로 가고 없었다고 했었소. 당연하지, 찾아간 내가 미련한 거지.”

 내가 말했다.

 "제길, 당신 부모님은 그것도 모르고 하숙비 마련한다고 등골이 빠졌겠구만."

  

 

4.

 

 내 차례가 왔지만 밑천이 없는 내가 제대로 된 이야기를 시작 못하니 이번에도 썰렁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권 과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한 마디 했다.

 "하하, 웃기지 않는 이야기라도 좋으니 그냥 아무 이바구라도 하쇼."

 출장 차 서울 가는 열차에서 옆에 앉았던 남자가 대구에서 내리며 두고갔던 썰렁한 유머집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저녁.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채팅을 하기로 했다. 급한 성격 탓인지 나는 평소에 오타가 심하게 많은 편이다.

 어떤 방에 들어갔더니 남녀가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들어가서인지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저녁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저녁 인사를 하자마자 엄청나게 욕을 먹고 강제 퇴실 당해야 했다.

 내가 한 인사말…….

 “저년 먹었어요?”

 

 

 ♣

 

 인류학 보고서에서는 단순한 문화일수록 현대적인 척도로 따져볼 때 아주 무자비한 유머1가 나타난다고 밝히고 있다. 인류학 문헌에는 부족민들이 서로 악의적인 장난을 했을 뿐 아니라 상처 입은 동물의 고통을 보면서 즐거워했다는 기록이 많이 나와 있다. 이런 식의 놀이는 규모가 크거나 유대감이 약한 사회집단에서는 극심한 마찰이나 분열을 일으키기 쉬우며, 또 인류가 도시화함에 따라 신체적인 유머는 사라지고 말로 하는 유머가 더 많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미적 개념으로서 유머는 골계2(滑稽)의 복잡화한 형태이다. 보통 골계의 경우와 같이 단순히 대상 그 자체에 존재하는 모순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 자신의 주관적 의식 태도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보통의 보는 태도에 따라서는 골계는 모순으로 나타나는 것이나, 보다 높은 입장에서의 관조에 의해서 가일층의 가치와 의의가 인정되어 특수한 대조감정(對照感情)을 일으키는 것이다. 

 립스에 의하면, 유머는 인간적 의의를 갖는 것, 그리고 숭고한 것이 골계에 의해서 부정되고 참해되는 결과 더 일층 그의 인상을 높이는 것을 의미하지만, 진실로 숭고한 것이 골계의 과정에서 떠오를 때, 그것은 외경(畏敬)보다도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믿어왔던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회사가 무너짐을 목격한 좌절, 가장으로서의 부담, 무엇보다도 삼십 대 후반의 언덕을 오름에 있어 예기치 못하게 맞부닥친 장벽이 이러한 일탈을 만든게 아닌지 - 꿈은 물론이고 희망 없이 한숨만 가득했던 날의 일기장이 아니었을는지. 아아, 지금은 연락조차 되지 않는 그리운 그때 그 길동무들.

 

  1.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 ‘우스개’, ‘익살’ [본문으로]
  2. 익살을 부리는 가운데 어떤 교훈을 주는 일. [본문으로]

'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  (0) 2015.02.17
여행에서 만난 60대 부부 이야기  (0) 2015.02.13
안녕, 안녕  (0) 2015.01.23
어떤 투사(鬪士)   (0) 2015.01.16
햇복숭아  (0) 2015.0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