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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주영 장편소설 『홍어(洪魚)』

by 언덕에서 2015. 1. 22.

 

김주영 장편소설 『홍어(洪魚)


 

김주영(金周榮. 1939∼ )의 장편소설로 1997년 [작가세계]에 발표되었다. 『홍어』는 주로 선이 굵고 역사성이 짙은 작품을 통해 당대 민초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가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발표 당시 문단으로부터 본격소설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찬사를 받았다. 폭설로 고립된 산골 마을에서 가족을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는 열세 살의 소년을 화자로 내세운 이 작품은 시적 상징과 서정적 묘사를 통해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소설은 폭설로 고립된 산골마을이 시야를 가득 채우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적막한 마을에 밤새 내린 눈은 사람 키를 넘어버리기도 하고, 먹이를 찾아 내려왔던 산짐승을 고립시키기도 하며, 길들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바로 그 마을의 외딴집에 젊은 어머니와 열세 살 사내아이가 살고 있다. 사내아이의 아버지는 5년 전 집을 나가버리고 어머니가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삯바느질로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이 소설은 첫 시작부터 고향에 관한 아득하고 원초적인 체험들로 넘실거린다. 뒷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 대며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것 같은 동네에 대한 풍요롭고 아름다운 묘사, 쌓인 눈 때문에 방문이 수월하게 열리지 않지만 가까스로 눈을 털어 문을 열었을 때 숨 막히도록 하얀 바깥 풍경이 펼쳐지는 것에 대한 순간이 그렇다.
 홍어, 가오리연의 날개 등과 같이 비상하는 이미지들과 떠남과 머묾의 상징들이 정교하게 짜여 깊이와 무게를 더하는 이 소설에 대해 작가는 “아랫목에 앉아 인생을 반추하고 싶은, 아주 조용한 소설”이라 말한 바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오지 않는 이를 조용히 기다리는 모자(母子)의 삶이 고요히 하지만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세영은 열세 살 사춘기 소년으로 유부녀와 통정한 뒤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다. 삯바느질꾼인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홍어를 부엌 문설주에 매달아 두지만 아버지에게선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홍어는 먼지와 그을음을 뒤집어쓴 채 말라갈 뿐이다. 세영은 정초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오리연을 날리며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비상(飛上)하는 몽상에 빠져든다. 이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때문이다.

 어느 눈 쌓인 겨울날, 갈 곳 없는 열일곱 처녀 삼례가 세영의 집에 찾아든다.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로 두드려 맞아도 나가지 않고 꿋꿋이 버티다가 결국은 한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저 갈 곳 없고 먹을 것 없어 이 집에 온 것인 줄로만 알았던 삼례는 의외로 똑똑하고 약은 여자였다. 신발을 거꾸로 신어 들어온 발자국만 생기게 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이 집을 떠나게 되고, 이후 결혼 생활을 하다가 나중엔 남편에게서도 도망쳐서 선술집에 들어가게 된다. 

 세영의 어머니는 아주 강인하면서 모든 것을 초월한 듯도 하면서도 연약하기 그지없고 어딘가 꽉꽉 막힌 듯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남편을 찾는다며 모아둔 돈을 삼례더러 그곳 주점을 떠나라 할 때 모두 줘 버린다. 이로써 남편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린 듯했다.
 옆집 남자는 세영의 어머니를 남몰래 사모하지만 어머니는 콧방귀는커녕 사소한 도움조차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혼자서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좋아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나 세영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죄다 알고 있으며 찾아가는 세영에게 훌륭한 해결책도 찾아준다.
 세영은 자기 집에 찾아온 삼례를 좋아하게 되지만 자신은 그 감정의 이유를 모른다. 어머니 몰래 읍내의 선술집을 찾아가서 삼례를 만나다가 삼례가 그곳을 떠난 이후에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중엔 그 선술집을 다시 찾아가 삼례가 갔다는 곳의 주소를 받아와서 집에 돌아와 어딘가에 숨겨두었다.
 어느 날 한 여자가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아이를 등에 업고 나타나고 어머니는 이를 아버지가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으로 받아들이며 말없이 아이를 거둔다. 호영이라는 배다른 동생이 들어오면서 세영은 어머니에게 증오심을 느낀다. 어머니의 자식도 아니고, 아버지에 대한 미련도 버린 듯한 어머니가 호영에게만은 끔찍했기 때문이다. 호영에게 빈 젖까지 물리고 닭을 사서 달걀노른자를 떠먹여 주는 어머니를 보며 세영은 일종의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집을 떠났던 세영의 아버지가 돌아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찾은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자기 발로 온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집을 단장하고 옷을 짓는다. 어머니를 사모하던 옆집 남자는 이제 어머니에게 더 이상의 호의를 베풀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온 이튿날 어머니는 아침 눈밭에 발자국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 지난날 삼례가 그 집을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들어온 발자국만 남겨놓고는 어머니는 그 집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세영은 당황하지 않는다. 자신이 삼례의 주소를 숨겨둔 곳에 그 쪽지는 없었다. 어머니는 그것마저도 알고 있었던 것인가? 세영은 어머니가 도망갔다는 슬픔과 낯선 아버지와 배다른 동생 호영이 셋만 남겨졌다는 사실에 담담하기만 하다. 이미 세영은 어머니로 인해 찾아갈 수 없었던 삼례에게 갈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소는 벌써부터 세영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세영의 어머니도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것인가. 그렇게 비밀스럽고 조용조용했던 그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모자가 살고 있는 마을에 폭설이 내리고, 마을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던 이들의 집은 고립된다. 여기서 이들 모자는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린다. 이처럼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은 많다. 그러나 「홍어」는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물음과 응답을 보여준다. 어머니는 결코 기다림의 화신은 아니다. 이 소설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부재하는 아버지들은 뒤에 남은 가족들에게 신산한 가난을 물려준다. 삼례가 오면서 ‘나’는 어머니에게서 모성만이 아니라 여성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겨울이 끝날 무렵 떠돌이 삼례는 홍어가 매달렸던 문설주에 씀바귀를 매달아 놓고 떠난다. 문설주의 홍어는 씀바귀로 대체된다. 이 씀바귀는 어머니의 욕망이 아버지가 아니라 삼례임을 알려주는 신호가 아니던가.
 아버지가 돌아오던 날, 어머니는 눈 속에서 씀바귀를 캔다. 씀바귀는 삼례의 환유적 표현이다. 씀바귀를 뜯으면서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나 삼례가 되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홍어는 전통적인 모성을 추억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어머니를 삼례의 분신으로 반전시킴으로써 독자의 허를 찌른다.

 이런 반전에 의해 「홍어」는 아버지를 단죄한다. 모든 면에서 부패한 아버지의 타락한 역사를 재생산하지 않는 장면은 안타깝지만 소설 이상의 힘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어머니와 소녀의 갈등과, 이를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통해 남성에 의해 여성이 억압되는 사회를 비판한다.

 그리고 생명이 지닌 본래적인 고귀함이 존중되는 삶을 지향한다. 「홍어」는 모든 존재가 평화롭게 어울리는 세계, 원시적이며 야성적인 생명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세계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주영의 소설 『홍어』에 홍어는 없다. 소설의 시작과 더불어 홍어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없어진 홍어도 본래 살아 있는 홍어가 아니라 “언제나 부엌 문설주에 너부죽하게 꿰어 매달려 연기와 그을음을 뒤집어쓰고 있던” 말린 홍어, 즉 부재하는 아버지의 ‘별명’에 불과하다. 그것은 메마른 상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마른 홍어를 살아나게 하는 가슴속의 생명력이다. 거기에는 한겨울의 씀바귀가 파릇파릇하게 살아나고, 지느러미를 파상으로 움직이며 유유히 소택지를 헤엄치고 싶은 홍어의 꿈, 하늘 높이 날고 싶은 가오리연의 꿈이 요동친다.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사는 큰 새”인 홍어, 가오리연의 날개 등과 같이 비상하는 이미지들과 떠남과 머묾의 상징들이 정교하게 짜여 깊이와 무게를 더하는 이 소설에 대해 작가는 “아랫목에 앉아 인생을 반추하고 싶은, 아주 조용한 소설”이라 말한 바 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오지 않는 이를 조용히 기다리는 모자(母子)의 삶이 고요히 하지만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