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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열 단편소설『아우와의 만남』

by 언덕에서 2015. 1. 29.

 

이문열 단편소설아우와의 만남

 

 

 

 

 

 

이문열(李文烈, 1948~)의 중편소설로 1994년 발표되었다. 요즘은 통일대박론까지 등장하는 현실이지만 당시는 미국의 영변핵시설 폭격 시나리오로 인해 나라가 뒤숭숭하던 시기였다. 이 작품은 통일 문제를 다룬 가상소설로서,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정교한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만든 소설이다.

 이 소설이 발표된 시기가 1994년 여름이니까, 당시에 불거져 나왔던 '통일문제'를 재빨리 수용하여 형상화한 셈인데 그런 순발력에 비해 그가 목격한 통일론의 여러 모습들은 대체로 극단적이거나 무모한 데가 있다. 그것은 마치 정계와 학계가 서로 왈가왈부식 논쟁을 거치던 분기점으로부터 자유로이 경계를 넘나들며 객관적인 눈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봐야 통일의 문제는 현실적 이론이나 핏줄이 섞인 감정의 어느쪽이든 결국은 닥쳐봐야 안다'는 식의 표현을 하는 냉소에 가깝다. 

 그것은 혹시 작가의 장편소설 <영웅시대>나 대하소설 <변경>에서 누누이 억울함이 깃든 목소리로 호소하던 주변인으로서의 입장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그 시절에는 결국 주류가 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 소외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인물형의 재창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이문열(李文烈, 1948~)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강의하는 주인공 이 교수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초등학교 시절 아내와 어린 삼남매를 두고 월북하였다. 젊은 시절 그에게 아버지는 그리움과 원망, 사랑과 증오가 교차하는 대상이었다. 교수가 된 그는 북한의 아버지를 만나고자 중국 연길의 김한조라는 교포에게 주선을 의뢰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미 별세하여, 대신 이복동생을 연길에서 만난다. 그는 동생을 통하여 아버지가 북한에서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으며, 원산대학교 농경제학 교수에서 의주의 관개사업소 기사장으로 밀려나 온 가족이 힘겨운 생활을 해왔던 사실을 알게 된다.

 남한에 가족을 둔 월북자로서 그는 북한에서 경계의 대상이었으며, 주인공의 가족이 그러했듯이 북한의 가족에게도 남한의 가족은 보이지 않는 저주였던 것이다. 형제는 혜산의 두만강가에서 망제를 드리며 40년 가까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던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애틋한 혈육의 정을 느낀다. 그는 또한 북경에 여동생이 살고 있음을 알고 만나고자 하였으나, 여동생은 끝내 회피하고 말아 쓸쓸히 귀국길에 오른다.

 

 

 

 

 이 소설의 제목을 사회과학이라는 학문의 이름으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소설 이문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문열' 자신이고 스토리는 '이문열' 자신의 스토리이다. 나머지는 대충 적당히 수식하여 꾸며대었을 뿐이다. 주인공 이 교수가 연길에서 만난 동생과의 대화, 같은 여행객으로서 그곳을 방문한 아마추어 국학자인 통일꾼과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업가와의 의견교환을 통해서 통일이 가져다주는 장단점이 나열되어 등장한다.

 주인공 이 교수는 호텔 로비에서 시끄러운 한국 관광단을 대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엘리베이터로 가던 중 음식물을 뒤집어 섰던 흔적이 역력한 통일꾼을 만난다. 이 교수의 신분을 알고 있는 통일꾼은 술자리를 제안한다. 호텔 라운지로 이 교수를 이끌고 간 통일꾼은 처음에 동행했던 사업가가 문화재 밀반출 꾼이라는 것을 말한다. 통일꾼의 말에 의하면 사업가는 북한에 있는 조선백자나 고서화를 느슨한 북경의 세관 검색을 피해 남한으로 밀반출시킨다는 것이다. 그 사업가는 교포 처녀를 현지처로 거느리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무엇이든 상품화하고 마는 자본주의의 집요한 상혼에 놀란다. 그러나 화제를 바꿀 양으로 통일 사업을 묻는다. 통일꾼은 국내외를 망라한 통일 단체를 하나 만들고 연길의 교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러 왔으나 여의치 않다고 한다. 이 교수가 넌지시 정치적 방향에서의 접근만이 아니냐는 질문에 예상외로 발끈하며 통일 논의에 통일 비용 같은 경제적 논리를 앞세우는 것은 흡수 통일 이상의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몰아세운다. 이 교수는 통일 논의 자체를 항상 피곤하게 여겨 온 터라 더는 반론을 펴지 않고 슬그머니 이야기를 맺는다. 전날 만난 사업가가 통일꾼을 비웃던 일이 생각나서다.

 생활이 어려운 아우를 위해 얼마간의 돈을 준비했으나 자존심 강한 아우는 거절하고 떠난다. 다시 오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에 실망하던 중, 취기가 있는 아우가 못다 한 이야기가 있다며 찾아온다. 아우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과 비교당하면서 살아온 넋두리를 한꺼번에 쏟아놓는다. 아우는 처음 이 교수를 만나러 오던 것은 오랜 원수에 대한 경쟁 심리에서였으나 이 교수를 대하고 나서는 그저 형님으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과 자신이 떠벌린 현재 북한 가족들의 생활은 거짓이었고 능력보다 항상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털어놓는다.

 이후 이 교수는 공항 출입구에서 골동품상이라는 사업가가 다가와 그림으로 보이는 종이를 둘둘 말아 서울까지 가져가달라고 부탁하자 마지못해 받아든다. 그러나 공항 구석에서 추레하게 앉아 있는 통일꾼을 본다. 그러나 그 통일꾼보다 통일꾼이 연길에서 당한 낭패를 비웃는 사업가에게 더 반감을 느끼며 북경을 떠난다.

 

 

 이 소설은 대학교수인 주인공이 북에 남은 이복동생을 만난다는 단순한 줄거리를 택하고 있는데 그사이에는 통일과 관련된 여러 사람의 주장을 객관적 관점에서 토로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사에 얽힌 애증의 곡선을 추적하기도 한다. 그 곡선의 시작은 분명 기발표되어 화제를 불렀던 <영웅시대>나, <변경>에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 『아우와의 만남』은 영어권으로도 번역된 우리나라 대표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주 잘 꾸며진 한 편의 이야기다. 조금 긴 단편으로 끝냈어야 했을 것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꾸려 넣기 위해 억지로 중편으로 만들다 보니 조금은 절정의 흐름이 끊어지기도 하는 단점을 보인다. 그러나 그만의 독특한 문체는 유교적 회고주의에 휩싸인 아나크로니스트의 불우한 회고적 형식, 혹은 서둘러 감격스러운 화해 등의 스토리적 단점을 보완하고 있어 독자의 지레짐작이 만든 쓴웃음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아우야, 그런 소리는 더 듣고 싶지 않구나. 아직은 한동안 그 체제 안에서 살아야 할 너를 위해 구두가 발에 맞지 않으면 발을 구두에 맞추는 수는 있단다. 구두를 발에 맞추는 게 가장 좋지만, 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못 되니, 역사의 구둣방은 언제나 엉터리 화공(靴工)들이 차고앉아 있으니, 남쪽의 진보주의자들은 형의 이런 역사적 허무주의를 비난하지만 그래도 나는 네게 권하련다. 현재의 완전성을 믿어서도 안 되지만 미래에도 너무 성급하지 마라. 어떤 방향으로든 산술(算術) 없는 혁명에는 유혹되지 마라. 때가 오리니, 때가 오리니. ―115쪽

 이 소설은 우리 민족에게 통일이 무엇을 의미하며,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섬세하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이 오랜 세월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에서 살아왔던 아우를 난생처음 만난 것처럼, 낯설고 어색하나 애틋함이 있듯이, 이러한 만남이 축적되어갈 때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피력하는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