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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廣場)』

by 언덕에서 2015. 1. 27.

 

 

 

최인훈 장편소설 『광장(廣場)』

  

 

최인훈(崔仁勳. 1936∼2018)의 장편소설로 1960년 10월 [새벽]지에 발표되었다. 분단의 문제를 남북 모두 비판적으로 다룬 최초의 소설로서 당시 4ㆍ19와 맞물려 이데올로기나 체제 비판을 기저로 새로운 정신의 차원을 개척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전쟁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삶을 사회적ㆍ역사적 흐름에서 파악했다는 점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의의가 있다. 첫째, 작자는 주인공 이명준이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않고 제3의 중립국을 선택한다는 것이 사실은 현실에서의 패배이며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조국의 현실을 벗어난 제3의 길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인의 망명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은 민족의 현실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없이 남북한을 단순히 양자택일적인 것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둘째, 이 작품이 남북한의 문제를 밀실과 광장이라는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문제와 연결시켜 놓았다는 점이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기 고유의 밀실이 필요하면서, 동시에 타인과 교섭하면서 공동체적 삶을 살 광장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주인공은 진정한 시민적 광장에 대한 진실한 추구를 보여 주지 못했다.

 이 소설은 대립적인 두 이념 사이에서 참된 삶의 의미를 모색하다가 결국 실패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다분히 관념적, 철학적으로 묘파해 나간 장편소설이다.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작가에 의해서 5번 정도의 개작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 시인, 소설가, 평론가와 교수 등을 대상으로 한 한국문학 100년 최고의 소설이 무엇이냐는 설문에서 『광장』은 이상의 <날개>와 함께 공동 1위로 꼽힐 정도로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소설 작품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바다는 숨 쉬고 있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 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단장한 3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지나해의 공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주인공 이명준은 해방 후 만주에서 귀국하였다. 서울에서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 이형도가 당신의 이념에 따라 월북하자 그는 아버지의 친구인 변 선생의 후의로 더부살이를 한다. 대학의 철학과에 다니면서 그는 변 선생의 아들인 태식과 가까이 지내면서 현실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지내지만 현실에 대하여 깊은 환멸을 느낀다. 자기만의 밀실에 들어앉아 현실을 관념적으로만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월북한 남로당원 아버지로 인해 명준은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당하게 되고,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비로소 현실에 눈을 뜬 그에게 비친 남한의 현실은 타락하고, 부조리하며, 보람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윤애라는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이 관념과 현실의 간격을 없애려 노력하나 실패하고 번민과 환멸 속에 인천에서 배를 얻어 타고 월북하고 만다.

 그러나 그가 찾아 월북한 북한도 만족한 곳은 아니었다. 이상적인 혁명가로 생각했던 아버지는 젊은 여자와 재혼하여 부르주아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북한은 혁명은 간데없고 혁명의 자취만 있는 곳이었다. 즉, 이데올로기와 허위에 가득 찬 곳이었다. 공개적인 광장만 있을 뿐, 개성적인 삶은 없는 곳이었다. 북한에서 그는 아버지의 힘으로 노동신문의 기자가 되지만 그가 작성한 기사가 당 간부들에게 핀잔을 듣자, 기자 생활을 버리고 노동판에 뛰어들어 작업한다. 그러던 중 실족으로 다리를 다치게 되고, 위문 온 무용수 은혜와 만나 새로운 사랑을 누리게 된다. 북한 사회에서 못 느끼는 삶에 대한 애착을 은혜를 통해 느끼려는 듯 명준은 은혜에게 매우 집착한다. 은혜의 모스크바 유학으로 명준은 은혜와 떨어지게 된다.

 한국 전쟁이 발생하고 인민군 정치보위부 장교가 되어 서울로 남하한 명준은 그곳에서 친구인 태식과 그의 아내가 된 옛 여인 윤애를 만나게 된다. 점령군 장교로서 그는 간첩 혐의로 잡혀온 태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윤애를 겁탈하려고 하나, 하지 못하고 둘을 탈출시킨다. 그리고는 치열한 낙동강 전투에 배치받아 가게 된다. 거기서 명준은 뜻밖에 간호병으로 자원 참전한 은혜를 다시 만나 동굴 속에서 재회의 기쁨을 누린다. 재회 속에 명준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명준에게 말하고 헤어져 가던 중 그녀는 전사하고 만다.

 결국 밀리는 전투 속에서 포로가 된 명준은 포로교환이 있을 때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그가 본 두 사회는 모두 환멸만이 있으며, 보람 있는 삶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인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갈매기를 은혜와 딸의 환영으로 보고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만다.

 타고르 호는 흰 페인트를 말쑥하게 단장한 3천 톤의 선체를 진동시키면서 한 사람의 선객을 잃어버린 채 물체처럼 빼곡히 들어찬 남지나해의 대기를 헤치며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흰 바닷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스트에도, 그 주변 바다에도. 아마 마카오에서 다른 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소설가 최인훈(崔仁勳. 1936&sim;2018)

 

 작가는 이명준의 선택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보여 준다. 물론 모든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에 이러한 선의의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주인공 '명준'은 6ㆍ25의 체험을 통해서 이를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은 장편 소설로는 등장인물의 숫자가 적은 편이다. 또한 사건이나 배경도 그리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지 않다. 작자는 현실의 구체성보다는 이념과 관념을 제재로 하여 이 작품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은혜나 윤애와의 사랑, 타고르 호 선장과의 만남 등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관심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은 해방 이후의 정치적 혼란, 6ㆍ25가 빚은 이념적 갈등을 제재로 삼고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비판적인 지식인의 시각에서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작품 전체가 비교적 어렵고 관념적인 문체로 쓰진 이유는, 이 작품의 주제 자체가 이념과 인생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비평서가 출간될 정도로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는 작품인데, 이러한 소설의 열린 구조는 이 작품을 비롯하여 최인훈 소설의 ‘현재성’을 담보해 주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기능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처음 발표된 이래로 무려 여섯 번의 개작과정을 거쳐 다듬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언어에 대한 작가의 자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개작과정에 대한 관찰을 통해 작가의 수정 및 첨삭 작업이 작품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작품 감상의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광장』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남북 분단의 문제를 처음으로 다룬 본격적인 장편 소설이다. 『광장』은 기존의 국내 문학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한계를 뛰어넘어 상반된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남한과 북한의 실상을 비교하면서, 결국 자유를 상징하는 중립국을 선택하는 인물을 형상화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이유는 1960년의 4ㆍ19 혁명이다. 작품을 발표하면서 작가가 "저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는 진술로 끝나는 머리말을 달 정도로 4ㆍ19 혁명의 감격과 그 여파인 사상 출판의 자유가 『광장』을 있게 한 조건이었다.

 그 무엇보다 문학사적으로 『광장』의 뛰어난 점은 이념에 대한 소설이면서도, 이념을 벗어난 인간의 삶과 그 조건을 중시함으로 해서 냉전적 사고를 벗어났다는 데 있다. 남한과 북한의 대결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반성의 지점을 설정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하게 한 것은 과도한 색깔 논쟁이나 자기편 만들기가 일쑤인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반성할 지점을 제공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명준의 자살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로 기인한 것으로, 작품을 읽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안타까움을 안겨주며 역사적 안목을 높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됐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명준이 『광장』에서 자기 인식에 도달하려 제3의 선택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은 주인공 이명준이 남과 북의 두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택하여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것보다,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광장과 밀실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랑으로 자기 인식에 도달하고자 한 여정일 것이다.

 

 

 

  1. '소설가, 평론가, 대학교수 등 문학전문가들은 최인훈의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