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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하족괘치(何足掛齒)

by 언덕에서 2014. 11. 26.

 

 

 

 

 

하족괘치(何足掛齒)

 

 

 

 

 

 

 

 

 

 

하족괘치(何足掛齒)라는 말은 어찌 何, 발 足,걸 掛, 이 齒로 이루어진 고사성어이다. ‘어찌 족히 말을 하겠는가’, 즉 말을 꺼낼 가치가 없는 사소한 일, 말을 꺼낼 가치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秦) 나라 말기, 산동 출신인 숙손통(叔孫通)은 문학에 뛰어났다 해서 조정에 불려가 박사(博士) 후보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진승1이 산동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진시황의 아들 2세 황제 호해2(胡亥)는 박사들과 여러 유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박사들과 유생 30여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신하된 자가 모반을 하려는 것은 아니 됩니다. 반역의 마음을 갖는 것 자체도 반역이니 이는 죽을죄입니다. 폐하께서는 급히 군대를 보내어 그들을 토벌해야 합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숙손통이 2세 황제의 얼굴을 보니, 그는 크게 노하여 얼굴빛이 변해 있었다. 숙손통은 곧 2세 황제가 유생들에게 못마땅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판단하고, 앞으로 나아가 공손하게 말했다.

 “폐하, 저들의 말은 모두 옳지 않습니다. 지금 천하는 통일되어 한 집과 같이 되었습니다. 명철하신 군주가 계시고 법령이 잘 시행되고 있어 천하가 태평한데, 어찌 감히 모반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이는 다만 도적 떼나 좀도둑일 뿐이니, 그것을 가지고 입에 담아 논의할 것이 못됩니다(何足置之齒牙間). 군수(郡守)들이 그들을 잡아들여 죄를 논할 것이니, 조금도 걱정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세 황제는 이 말을 듣고 박사와 유생들 개개인에게 의견을 물었다. 반역자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어사(御使)에게 넘겨 조사하게 했고, 도적이라고 말한 사람들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숙손통에게는 옷과 비단을 하사하고 박사의 벼슬에 임명하였다.

 얼마 뒤, 유생들이 숙손통에게 물었다.

 "어찌 그리 아첨의 말을 잘하시오?"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들은 모르는 일이오. 하마터면 범의 이빨에 물려 죽을 뻔했소."

 

- 출전 : 사마천3 : <사기4(史記)> 권 99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

 

 

 

  1. 진승의 자는 섭(涉)이고, 양성(陽城, 지금의 하남성 등봉현) 사람이다. 태어난 해는 분명치 않으며 죽은 해는 기원전 209년이다. 그는 오광(吳廣)과 함께 중국 최초의 농민 대봉기의 서막을 열었다. 그는 걸출한 농민 봉기군의 수령이자 원대한 포부와 총명한 기지를 갖춘 정치모략가이기도 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진승 [陳勝] - 물고기 뱃속에 예언서를 숨기고, 죽창을 높이 치켜들다 (5000년 중국을 이끌어온 50인의 모략가, 2005.10.20, 도서출판 들녘) [본문으로]
  2. 중국 진(秦)의 제2대 황제로서 이세황제(二世皇帝)라고 한다.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이고 환관(宦官) 조고(趙高)의 전횡을 방임하여 민심(民心)을 잃었으며 진(秦)을 멸망의 길로 몰아 넣었다. (재위 BC 210~BC 207)[네이버 지식백과] 호해 [胡亥] (두산백과) [본문으로]
  3. 전한시대의 역사가이며《사기(史記)》의 저자이다. 무제의 태사령이 되어 사기를 집필하였고 기원전 91년《사기》를 완성하였다. 중국 최고의 역사가로 칭송된다.[네이버 지식백과] 사마천 [司馬遷] (두산백과) [본문으로]
  4. 중국 전한(前漢)의 사마 천(司馬遷)이 상고시대의 오제(五帝)~한나라 무제 태초년간(BC 104~101년)의 중국과 그 주변 민족의 역사를 포괄하여 저술한 통사[네이버 지식백과] 사기 [史記] (두산백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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