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과 엘리엇의 우정
<토마스 엘리엇 부부>
영국 웨일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일생 덕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러셀은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집필한 『수학원리』를 펴내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20세기 영미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분석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업적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거부해 케임브리지 강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반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레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르웨이로 가는 수상비행기가 사고 났을 당시 흡연 칸에 탄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로버트 에그너가 지은 「철학의 오솔길」(책세상, 1987)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때는 1914년 10월,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고, 영국의 경제가 절박한 상황에 빠져 있을 무렵, 런던의 뉴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는 고결하게 생긴 두 청년이 손을 마주잡고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버트런드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토마스 엘리엇(Eliot Thomas Stearns)이었다.
원래 미국 태생이었던 엘리엇은 독일에서 살다가 그 무렵에 런던으로 건너와 살고 있었다. 엘리엇이 비록 그 후 노벨문학상을 받은 대가(大家)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무렵의 그 생활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엘리엇의 생활이 어려움을 알게 되자, 러셀은 곧 그 부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살았다. 전란의 어려움 속에서 엘리엇 부부는 러셀의 침실을 빌어서 겨우 생활할 수 있었다. 잠자리는 그럭저럭 해결되었지만, 벌이가 신통치 않았던 엘리엇은 막상 먹고 살 일이 아득했다. 마침 그 당시에 러셀은 3천 파운드에 해당하는 어느 회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던 러셀은 생활이 궁핍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회사가 무기를 생산하는 것을 알게 되자 해당 주식이 꺼림칙하여 그것을 쓸 수가 없었다.
러셀은 생각다 못해 그 주식 3천 파운드를 엘리엇에게 건네며 생활에 보태라고 주었다. 비록 자신은 그것을 쓰기가 마음 내키지 않았지만, 자신과 달리 융통성 있는 엘리엇의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란 극단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러셀은 거리낌 없이 그것을 줄 수가 있었고, 엘리엇도 그것을 감사하게 받았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영국의 경제도 호전된 어느 날, 엘리엇은 러셀에게 봉투 하나를 내어놓았다. 러셀이 그것을 열어보니, 봉투에는 전에 준 3천 파운드의 주식이 사용하지 않은 그대로 들어있었다.
러셀의 자서전에서 엘리엇이 왜 그것을 쓰지 않고 가져왔는지 물었다는 말도 없고, 엘리엇이 돌려주면서 뭐라고 말했는지에 관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래서 엘리엇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왜 그 주식을 쓰지 않고 도로 가져왔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어 버렸다. 엘리엇은 자신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러셀의 성의를 면전에서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후대의 독자들이 그 대목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역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知性)들이 돈에 얼마나 초연했던가 하는 점과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고결했던가 하는 점이다.
☞토마스 엘리엇(1888 ~ 1965) : 영국 시인 겸 평론가, 극작가. 주요 저서 가운데 시집 <황무지(荒蕪地)>는 일부 보수적인 시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20세기 시단의 가장 중요한 작품의 하나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복잡한 테크닉과 병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각 국어를 섞어서, 환멸과 증오와 불안에 빠진 전후 유럽 문명의 정신적 풍토를 묘사한 이 작품으로, 그는 시에 있어서 선구적인 지위를 확립하고 영국 시문학계에 명확한 금자탑을 세웠다. 1927년 영국에 귀화하고 1928년 평론집 《라안슬러트 앤드루즈를 위하여》의 서문에 서 문학상 고전주의자ㆍ종교상 영국 성공회ㆍ정치상 왕당파임을 밝혔다.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버트런드 러셀(1872 ~ 1970) : 영국의 논리학자·철학자·수학자·사회사상가. 논리학자로서 19세기 전반에 비롯된 기호논리학의 전사(前史)를 집대성했으며, 철학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고 유연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기호논리학의 수법으로 철학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그의 시도와 성과는 20세기 철학에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러셀은 수리철학(數理哲學)ㆍ신실제론(新實際論)으로 알려졌으며, 사회주의적 내지 자유주의적 문명 비평가로 유명하다. 만년에는 베트남 반전운동과 원자․수소폭탄 사용금지운동에 힘썼다. 195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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