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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나는 당나귀가 좋아

by 언덕에서 2014. 9. 11.

 

 

 나는 당나귀가 좋아

 

 

                                            프란시스 잠(Francis Jammes : 1868 ~ 1938)

 

 

물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

 

당나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가 할 일을 모두 다했다.

 

그런데, 내 소녀냐, 너는 뭘 했지?

그렇군, 너는 참 바느질을 했지……

 

 

 

 

하지만 당나귀는 다쳤단다.

파라란 놈한테 찔렸단다.

 

측은한 생각이 들 만큼

당나귀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한다.

 

내 소녀야, 너는 무얼 먹었지?

―너는 앵두를 먹었지?

 

 

 

 

당나귀는 호밀조차 먹지 못했다.

주인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고삐를 빨아 먹다가

그늘에 가 누워 잠이 들었다.

 

네 마음의 고삐에는

그만한 보드라움이 없단다.

 

 

 

 

 

그는 물푸레나무 울타리를 끼고 가는

아주 순한 당나귀란다.

 

내 마음은 괴롭다.

이런 말을 너는 좋아할 테지.

 

그러니 말해 다오, 사랑하는 소녀야

나는 울고 있는 걸까, 웃고 있는 걸까?

 

 

 

 

 

가서 늙은 당나귀보고

이렇게 전해 다오, 나의 마음을.

 

내 마음도 당나귀와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신작로를 걸어간다고.

 

당나귀한테 물어라, 나의 소녀야.

내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당나귀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당나귀는 어두운 그늘 속을

 

착한 마음 한 아름 가득 안고서

꽃 핀 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 시집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 1898> 민음사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연휴 때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 등장하는 프란시스 잠의 시집을 무턱대고 읽었다. 젊은 윤동주에게 프란시스 잠의 시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렴풋이 그 느낌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식없는 진실된 자세의 중요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프란시스 잠이 다룬 단순하고 소박한 주제는 세기말 프랑스 문학의 퇴폐적 요소와 참신한 대조를 이룬다. 내성적인 시골 사무원이었던 그는 상징파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 및 소설가 앙드레 지드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상징주의에 반발하고 '자연주의'(Naturisme)라는 새로운 시적 경향을 추구했다. 그는 시를 통해 자연으로, 사소한 일상생활의 사건으로, 어린아이 같은 단순함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그는 <새벽의 삼종기도에서 저녁의 삼종기도까지>(1898)를 발표하여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다. 1905년 시인 폴 클로델이 그를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시켰는데, 개종한 뒤에 그는 점점 더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그리스도교 농경시>(3권.1911∼12)는 믿음이 깊은 농부 가문의 내력을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한 작품이다.

 그는 명성을 얻은 뒤에도 시골에 남아 마을 사람들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만족했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및 회고록(1923)도 역시 소박하고 친근한 어조로 그의 문학적 성과를 완전하게 해준다. 70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세대의 젊은 시인들에게 존경받는 원로가 되어 있었다.

 잠의 초기 작품에는 태어난 고향의 흙냄새와 먼 타양에 대한 꿈이 기묘하게 혼합되어 감미로운 우수를 자아내게 만든다. 잠은 자신의 시작 태도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에게 있어 진실이란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이며, 시가 깨끗하기 위해서는 시 속에서 진실을 노래해야만 한다. 그리고 글자를 메우려는 어린아이와 같이 아름다운 새나 꽃이나 매력 지닌 소녀 등을 의식적으로 묘사하는 일이다.”

 

 위의 시는 잠의 시를 이해하는 데 좋은 시사가 된다.

 윤동주의 시정신은 서정에 기저를 두고 있다. 다만 민족적 아픔과 조국 공박의 염원에 의한 강박관념과 자학 등을 수반하였으나, 프랑스 시 잼ㆍ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영향을 받아 낭만적 서정시의 세계를 그려 내었다.

 이육사에게서는 주지주의적 엄숙주의가 지배적이었지만, 윤동주에게는 그러한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는 그가 식민지 치하에서 옥사를 하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식민지 치하의 가난과 슬픔을 극복하여 식민지 후기의 무질서한 정서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므로 아름답다. 그의 이러한 아름다움은 자신과 생활에 대한 애정 있는 관찰,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활 이념에 대한 순결한 신앙과 시의 형식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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