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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김훈 단편소설 『화장』

by 언덕에서 2014. 10. 7.

김훈 단편소설 『화장

 

 

 

김훈(金薰, 1948~)의 단편소설로 2004년 제28회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당시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선정한 이어령, 서영은, 김윤식, 윤후명, 권택영 등의 심사위원들은 “병들어 소멸해가는 인간의 몸과 젊고 아름다운 인간의 몸에 대한 적나라하고 세밀한 묘사는 새로운 소설 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죽은 아내, 그리고 화자가 마음속에 품었던 여인에 대한 세밀한 묘사는 탁월하다. 

 이 소설을 간행한 출판사는 이렇게 이 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화장은 주인공이 아내의 화장(火葬)과 은근한 애정을 보내고 있는 젊은 여인의 화장(化粧)을 절묘한 기법으로 오버랩 시키면서, 모든 소멸해가는 것과 소생하는 것들 사이에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동시에 느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존재 의미를 냉혹하고 정밀하게 추구한 소설이다. <문학사상사>

 2014년 임권택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출품되었고, 제7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갈라 상영작]으로도 초청됐다. 

 

영화 <화장> , 2014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나(오상무)는 제약회사의 임원이다. 아내는 2년 동안 3번 수술을 받았다. 뇌종양이었다. 독한 약물을 먹었고, 수시로 시퍼런 위액을 게워냈다. 정신이 혼미해져 대소변을 못 가렸다. 남자는 메마른 아내의 몸을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았다. 상태가 조금 나아질 땐 함께 별장에 갔다. 비아그라를 먹고, 침대에서도 삭발한 머리에 쓴 모자를 벗지 않는 아내를 안았다. 그런데 아내를 안을 때조차, 나의 머릿속엔 젊은 추은주의 환상이 맴돈다. 나의 고단한 삶과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젊고 아름다운 신입사원이다.

 아내는 오랜 투병으로 심신이 지쳐있지만 남편에게 여전히 여자이길 원한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남편에게 끝내 감추고 싶은 장면들이 있는, 온전치 않은 기운에도 다른 부부들처럼 다정히 사랑을 나누길 바라는 여인이다.

 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향해 욕망을 품는 중년 남성인 동시에 아내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과 연민을 간직한 인물이기도 하다. 추은주를 향한 나의 마음은 아내의 대소변을 익숙하게 받아내고 다시 수술을 받게 된 아내의 머리를 손수 깎아주는 사려 깊은 행위들과는 별개의 것이다.

 다 자란 딸은 “아빠는 엄마를 사랑한 적 없었다”며 몰아붙인다. 처제는 “언니를 화장(火葬)시키는 건 두 번 죽이는 일”이라며 야멸차게 대한다. 하지만 나는 대답이 없이,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 마음을 뺏긴 젊은 여자가 불쑥불쑥 머릿속에 밀고 들어오지만, 나는 흔들리더라도 쓰러지지 않으려 더 굳게 입을 다문다. 병마에 시달리던 아내는 죽는다. 납골당에 유골 함을 맡기고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추은주가 회사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듣는다. 아내는 현실에서, 추은주는 마음속에서 각각 나로부터 멀어진다. 

 

영화 <화장> , 2014 제작

 

 

 

 이 이야기에는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아내, 젊은 신입사원 추은주가 있다. 이 두 사람의 육체를 대위법적으로 성찰하면서 구축해가는 이 한 편의 소설은, 인간의 실존 의식이 가장 치열하게 드러나는 곳으로서 몸의 철학을 전개한다. 

 매력적인 외모에 패기와 꿈도 지닌 추은주는 뭇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불륜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의도치 않게 오상무의 마음을 빼앗게 된 인물이지만 그를 향한 감정은 사랑보다 존경과 동경의 정서에 가깝다. 몸은 생명의 물질적 현존이며 자기 인식의 출발이다. 그래서 몸은 영광이며 동시에 수치다.

 이 몸의 붕괴와 소멸, 생성과 순환을 냉정하게 묘사하는 이 소설 『화장』은, 심리적인 통찰이라는 면에서 보기 드물게 비장하고 잔혹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의 비장함은 인간의 삶의 영광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요, 잔혹하다 함은 그 최후의 아픈 순간까지도 작가가 눈을 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지나칠 정도로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사건과 내면을 건조하게 묘사했는데, 그 집요한 관찰과 철저한 묘사는 논술문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문학적이고 정서와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화장’이란 단어는 두 가지가 있다. 죽은 뒤 불을 태워 한줌의 재로 만드는 화장(火葬),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얼굴을 단장하는 화장(化粧)이 그것이다. 하나는 사라지고 잊혀지는 과정이라면 다른 하나는 주목 받고 기억되는 과정이다. 죽음과 삶을 가르는 단어이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 육체의 비루함과 피어나서 눈부신 젊음의 아름다움은 항상 공존한다. 그것은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그 무거움과 가벼움은 화장(火葬)과 화장(化粧)으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이 육체의 힘겨운 존재 놀이는 우주 속에서 끝없이 순환하며 자비의 윤리를 추구한다. 주인공인 ‘나’는 장례가 끝난 후 일상의 업무로 돌아와 광고 콘셉트로 ‘가벼워진다’를 정했다. 화장(化粧)을 하는데 무겁고 복잡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