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현대소설

윤흥길 장편소설 『완장』

by 언덕에서 2014. 9. 30.

 

 

 

윤흥길 장편소설 『완장』

 

 

윤흥길(尹興吉.1942 ~ )이 1983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그해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윤흥길은 1970∼8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갈등과 민족적 의식의 저변에 위치한 삶의 풍속도를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이 작품은 1986년 MBC - TV에서 8부작 드라마로도 방송되었다.

 단편소설 『완장』은 권력의 피폐한 모습을 풍자와 해학의 기법으로 표현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정치권력의 폭력성과 보통 사람들의 억울한 삶을 조명하며, 암울했던 역사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잘못된 힘의 실체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특히 작가는 한국인의 권력의식을 '완장'이라는 상징물에 담아내고, 그와 얽혀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상황을 고발함으로써 심각하고 묵직한 문제의식을 재치 있게 풀어낸다. 특히 남도 방언을 빌은 그의 걸쭉한 입담과 해학은 이 작품을 단연 돋보이게 만든다.

 땅투기로 돈푼깨나 만지게 된 졸부 최 사장은 널금저수지의 사용권을 얻어 양어장을 만들게 되고, 저수지 감시를 이곡리의 한량 임종술에게 맡긴다. 감시원 완장을 두른 종술은 완장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 부로 안하무인이 되어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발버둥친다. 작가는 완장을 두르면서 나타나는 임종술이라는 인물의 변모를 통해 인간을 억압하고 옥죄는 폭력으로부터의 구원은 스스로의 깨달음임을 이야기한다.

MBC드라마 <완장> 1989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임종술은 한때 동대문 시장에서 목판 장사를 했고 포장마차도 했다. 양키 물건을 팔기도 하다 다 접고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농사는 땅이 없어서 못 짓고 장사는 밑천이 없어서 못 하고 품팔이는 자존심이 딸꾹질하는 통에 못하는 '한량'이다. 그러다 최 사장이 차지한 동네 저수지의 감시원 자리를 제안받는다. 자존심이 상해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완장 채워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시장통 경비나 방범에 쫓기던 뼈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자비를 들여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감독’이라고 새긴 비닐 완장을 만들어 찬다. 그러곤 마치 때까치 종류에서 하루아침에 보라매 같은 당당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양 굳게 믿는다. 저수지에 몰래 낚시를 왔던 사람들은 그에게 호되게 당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과 그 아들까지 안면몰수하고 두들겨 팬다. 쥐꼬리만한 권력을 겁없이 휘둘러댄다.

 완장의 힘을 과신한 종술은 급기야 자신을 고용한 사장 일행의 낚시질까지 금지시키고, 결국 관리인 자리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해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술은 저수지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가 가뭄 해소책으로 ‘물을 빼야 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과도 부딪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열세에 몰리자 종술은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는 술집 작부 부월이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종술이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부월이와 함께 떠난 다음날 소용돌이치며 물이 빠지는 저수지 수면 위에 종술이 두르고 다니던 완장이 둥둥 떠다닌다. 그 완장을 종술의 어머니인 운암댁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MBC드라마 <완장> 1989제작

 

 

『완장』은 우리 근대사에서 반드시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암울했던 역사를 모티브로 씌어진 소설이다. 전통 패관문학이 담고 있었던 해학은 한국 문학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완장』은 그 요소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만도 충분히 평가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윤흥길은 철저한 리얼리즘적 기율에 의해 시대의 모순과 근대사에 대한 심원한 통찰력을 보여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상에 대한 작고 따뜻한 시선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이 소설 『완장』에서는 권력이 속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풍자와 해학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 종술은 작부(酌婦) 부월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함부로 다룬다. 이야기의 진행과는 상관없이 등장하는 선정적인 장면은 소설의 재미를 돋우는 것은 사실이나 한편으로는 여성비하의 비난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런 선정적인 부분은 1980년대 이전의 사회참여 소설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데, 이것은 야담 등 장르소설이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업 소설이 어느 정도 쾌락성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탓이다. 「완장」은 이렇듯 패미니스트들이 보았을 때 비판의 여지를 만드는 허점을 보이기도 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자신의 위세가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즉시 힘으로 억누르는 사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정치노선을 바꾸며 자리를 얻어 큰소리 치는 사람, 국가의 재난이 발생할 때 ‘관피아’ 사슬에 묶여 있는 공무원상 등은 이 소설에 나오는 동네 건달 임종술과 다름 없는 완장으로 보인다.

 임종술처럼 완장을 찬 이들은 원칙의 보편성이나 논리의 일관성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들은 보편성보다 이기성을 중시한다. 자기의 특수이익이 곧 사회의 보편이익이라 굳게 믿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논리적 일관성이 아니라 상황적 효율성이다. 뻔뻔스럽게 보이는 것은 임종술 류의 완장에게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어제 한 말을 오늘 바꿔버릴 수도 있다. 작부 부월이 애인 임종술에게 일침을 가한 다음과 같은 말은 해학적이지만 비극적이기도 하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자가는 지서장이나 면장 군수가 완장 차는 꼴 봤어? 완장 차고 댕기는 사장님이나 교수님 봤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없이 넘들이 흘린 뿌시레기나 주워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진수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