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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by 언덕에서 2014. 9. 25.

 

최인호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최인호(崔仁浩.1945 ∼ 2013)의 장편소설로 1972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다. 소설가는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고 '소설의 상업화'에 성공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등단 후 순수문학에 입각한 단편을 써왔던 최인호의 두 번째 계열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간결한 문장, 감각적인 문체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이 작품 이후 타 작가들에 의해 그 아류들이 많이 나타났다.  

 이 소설에서 최인호는 여성에게 '그녀'라는 영어식의 삼인칭(She)을 사용하여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여성을 지칭하는 삼인칭이 '그'에서 '그녀'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된 소설이다. 최인호의 이 소설 이후로 그가 여성을 지칭했던 '그녀' 이외에도 '그미(박영한)', '그니(조해일)', 그네(전상국) 등의 유사한 표현이 생겨났다.

 또한 영화로도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술집. 다방. 경양식집 등 상점의 가게명이 '별들의 고향'이 되었고, 1970년대 후반 우리사회에서는 별들의 고향을 읽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이분법이 생길 정도로 우리사회를 강타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른바 소비 사회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여성의 개방적인 성(性)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 부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나'는 대학 미술과 강사이며 독신이다. 간밤에 심하게 술을 마신 탓에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날카로운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경찰서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경찰서에서 '나'는 3년 전 1년간 동거했던 오경아가 죽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시체 인수를 위해 병원에 들렀으나 차마 시체를 볼 수가 없어서 그냥 나와 버렸다.

 오경아는 간이역의 역부인 아버지와 양조장집 셋째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맏딸로서, 남동생과 더불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작고 예쁜 여자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녀는 학업을 포기한 채 취직을 했다. 알뜰한 직장 생활을 해 오던 그녀는 강영석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소파 수술에 뒤이은 강영석의 변심과 어머니의 반대로 인하여 그녀는 버림을 받게 되었다. 이후 새로이 만중이라는 사내를 만나 그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유달리 결벽증이 심한 만준에게 경아의 과거가 발각되고 둘은 헤어지게 된다.

 '나'가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술집에서였다. 늘 술독에 파묻혀 지내던 '나'는 그날도 혼자 마시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당번 아가씨를 불렀고, 그때 나온 아가씨가 바로 경아였다. 그 후, 경아가 술집을 옮기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다가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밤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동거를 시작했다. 그녀와 살면서 '나'는 그녀를 모델로 창작 의욕을 불태웠고 그녀는 신접살림처럼 집안을 꾸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을 쫓아다니는 남자를 피해 술집을 그만두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되자, 그녀는 점점 게을러지고 미워져 갔다. 동거한 지 1년이 지난 후 어느 봄날, 대학 친구인 혜정이와 만났을 때 '나'는 평소에 생각해 왔던 경아와의 헤어짐을 결심할 수 있었다.

 그녀와 헤어진 지 1년 후, 어느 술집에서 외모가 많이 변해 버린 경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경아의 방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날, 그녀는 한때 그녀를 스쳐간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럽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별나라의 별난 일이라면서, 어릴 때 자신을 보고 땅을 밟고 살지 않을 거라던 점쟁이의 말도 들려주었다.

 또다시 그로부터 1년 후 겨울, 경아는 술에 취한 채 심한 기침을 하며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아까 먹은 수면제 약기운이 몸에 퍼지자 잠을 이기지 못하여 흰 눈 속에 파묻히고 만 것이다.

 경아의 장례식은 정말 쓸쓸하였다. 그녀의 모든 것은 불길 속에서 타올라 한 줌의 재로 남았다. 그녀의 뼛가루를 한강에 뿌리면서 '나'는 그녀의 넋이 자유롭게 날아가기를 기원했다. 그녀의 고향은 어디에 있는지, 그녀는 늘 돌아갈 고향이 있는 것을 부러워하였다.

 

영화 <별들의 고향>, 1974

 

 작가는 이 작품에서 운명처럼 여러 남자를 거치게 되는 경아라는 여자를 통해 1970년대의 여성상과 성 풍속도를 그려낸다. 또한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팽배해진 물신주의와 군사독재로 대변되는 경직된 사회의 폭력성, 주변부로 밀려난 소외된 인간군상의 헐벗은 삶과 허무의식이 고스란히 한 시대의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경아는 70년대 한국사회의 모순과 상처를 제 몸으로 받아 안아 참혹하게 상처 입고 파멸해 가는 순수의 상징이며, 70년대라는 컴컴한 밤하늘에 외로이 떨며 빛나는 별이었다고 작가는 표현한다. 사람들은 서서히 파멸해 가는 경아의 삶을 안타까이 좇으면서 그로부터 저마다의 상처와 슬픔을, 또한 욕망과 폭력의 현실 너머 순수가 살아 숨 쉬는 별들의 고향을 꿈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원래 작가가 작명한 소설의 제목은 '별들의 무덤'이었는데 연재된 조선일보가 조간신문이어서 아침에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어두운 느낌을 주지 않으려 '별들의 고향'으로 개명했다는 작가의 변이 있다. 이 작품은 감각적인 문체, 지적인 재치와 언어 구사로 인하여 대중적인 호흡을 지니고 있다. 그 후, 이 작품은 '대중 사회'와 '대중 문학'이라는 문제로 여러 방향에서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검열 하에서 자유로운 사상표현이 불가한 시대에서 작가 나름대로의 궁여지책일 수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가 그의 소설 세계의 문학사적 의미를 제대로 평가했다고 볼 수는 없다. 삶의 상징적인 표현 수단으로서의 성의 개방은 그것 자체만이 목적인 성의 소비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사회의 수용 양상을 통해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이러한 시각에서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검토가 진행되지 않고, 거기에 대한 성급한 도덕적 비난만이 난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성의 개방을 삶의 한 상징적 의식으로 삼고 있는 대중 소설이다. 젊은 독자층의 취향에 맞는 작품이며, 소설의 대중화에 성공하여 독자들을 서점으로 모으게 하는데 크게 성공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