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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그때가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by 언덕에서 2014. 7. 25.

 

 

그때가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그것이 지나간 기억일지라도, 아름다웠던 삶의 기억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쾌락이 자주 존재의 타락을 강요한다면 즐거움은 존재의 확장을 경험하게 한다. "정의가 없다면 인간은 수치다" 라고 프란츠 카프카는 말했지만,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의 기억이 없다면 인간존재는 수치일 것이다. 존 러스킨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보다 미와 추를 구분하는 능력이 우선되고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미와 추를 구분하는 능력을 갖추면 자연스레 선과 악이 구별되어지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선과 악', 그리고 '미와 추'는 동일선상의 개념이 아닐까 하고 지금도 나는 믿고 있다. 그 시절 '틀린 것은 틀렸다'고 이야기해주며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을 내게 안겨준 사람들 때문이다.

 

 

 신입사원 때를 벗지 못한 나는 노조 세력의 배후 실세가 부서 내 회식 참석을 못하도록 회유하는 바람에 순진하게 말려들어 나는 지방의 소도시(小都市)로 좌천되고야 말았다. 인구 20만의 K시에서의 일 년은 마치 고독과 좌절, 그리고 깊은 수렁 속에 허우적거리던 기억들뿐이다. 그때도 길동무들이 있어 그들은 고단하고 좌절한 내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순수한 않은 인간미가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고 이름만이 기억되는 그리운 이들인데 그들은 이 글을 읽을 수 없겠지만 이 기회에 마음 속 깊이 그간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스물 아홉 살, 낮선 도시에서의 일과는 힘들었다. 어디에 누구를 만나 영업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차치하고 그곳의 책임자인 소장은 왜 왔느냐 하는 표정으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소장 외에 1명의 여직원과 6명의 남자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들 말을 들어보니 소장은 지난 몇 년 동안의 실적 부진으로 회사로부터 몇 차례의 경고를 받은 상태이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精神科)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등 정상 상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 와중에 골칫덩이 사원까지 수하로 받게 되었으니 머리가 더 아플 이유가 또 생긴 셈이었다.

 소장의 스텝으로 일하는 사원 중에 'S씨'라는 입사 동기와 'L양'이라는 여사원이 있었다. S씨는 ROTC출신 임에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영업직을 맡지 않고 채권관리와 경리업무를 맡고 있는 사원이었다. 그의 귀뜸 말을 들어보니 소장은 내가 알아서 그만두겠지 하며 기다리는 눈치이고 그것이 소장의 상사인 부서장의 뜻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내가 부서장의 '앓는 이'가 되어 있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비참한 일이었지만 일단은 대안 없이 회사를 그만 둘 수 없는 노릇이었다.

 소장은 내게 간단한 심부름과 같은 수명 업무나 타 영업사원의 보조 업무를 명했다. 직급이 나보다 낮은 직원들의 수발을 드는 셈이었는데 자존심이 상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편 생각하니 자존심 상하게 만들어 내 스스로 사표를 쓰도록 유도하는 지도 몰랐다.

 

 

 그런 와중에 거래처 A사와 B사 두 회사 간의 자산 이관(移管)을 증명하기 위해 B사의 사장과 동행하여 A사를 방문한 날이 있었다. 두 회사가 합의를 하고 공증한 상태였지만 A사는 다소 불만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A사의 부사장은 사장의 친동생으로 30대 중반의 나이에 매우 깡마른 몸매에 눈매가 날카롭고 신경질적으로 생긴 사람이었다. 회사의 수입원이 줄어드는 관계로 매우 기분이 나쁜 표정이었다. 서류 이관이 끝나자 B사 사장은 내게 별다른 문제나 서류의 하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서류를 검토하던 나는 ‘별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해주었다. 그때 일어난 일이다.

 “야! 이 ○끼야! 네가 뭔데 그래? 이 개○끼야!”

 그 사무실에는 직원이 50명가량 근무하는 아주 큰 사무실이었는데 큰 고함 소리가 들리는 순간 모든 직원들이 기립하여 부사장과 B사 사장과 나, 세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시 그가 고함고함 소리쳤다.

 “이 ○끼야! 네가 뭔데 까불어! 이 개○끼야!”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B사 사장에 대한 원망이 만만하게 보이는 내게 비상식적인 분노로 표출되는 장면이었다. B사 사장은 안절부절 못하며 빨리 나가자는 시늉을 하며 내 손을 잡더니 밖으로 이끌면서 계속 미안해했다.

 “세상에 저런 몰상식한 불한당이 어디 있어요? 단지 내 곁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이렇게 모욕적으로 무안을 주다니……. 아, 윤 형……. 내 육십 인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요…….”

 B사 사장은 조카뻘 되는 나를 길가에 벤치에다 앉히더니 손수 담배를 권하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B사 사장과 헤어져서 귀사 하는 도중에 양복 윗주머니에 있는 봉투를 다시 만지게 되었다. K시로 올 때부터 써두었던 사직서였다. 이젠 마지막 남은 인내심마저 바닥이 확인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사표를 낼 때 내더라도 저런 무례한 인간에게 이유 없이 모욕을 당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 젊은 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중전화 박스를 발견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방문했던 셋별 직원입니다.”

 “그런데……. 왜 전화했소?”

 “왜 이유 없이 저에게 고함을 치고 욕설을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당신! 지금 나에게 시비 거는 거야?  이 개○끼!”

 또다시 욕설을 들으니 마지막 한 방울 남아있던 나의 인내심은 드디어 한계가 오고 말았다. 그에게 받은 만큼의 심하고 거친 욕설을 뱉으며 더 이상 참고 넘어가지 않을 테니 단단히 각오하라는 경고를 한 후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에 도착했다. 윗주머니에 있는 사직서를 또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예의 입사동기인 내근 사원과 여사원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남자 사원 S씨는 누군가와 격한 음성으로 통화 중이었다. 조용한 사무실이어서 그 내용이 모두 내 귀에 들렸다.

 “우리 직원에게 그냥 욕 좀 했다고 하시는데 이유 없이 욕 들어서 좋은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인격도 없습니까? 그리고 우리 직원이 그래도 되느냐고요? 그 입장이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때문에 쓸데없는 인간에게 전화받는 동료를 생각해서 못 들은 채 하고 책상 옆을 서성거리자니 세상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때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꼭 껴안고 있었다.

 "○○○씨, 힘내세요!“

 이제 갓 스무 두 살이 된 서무 여직원이 막막해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요즘 말로 백 허그(back - hug)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시간 후에 나에게 이유 없이 쌍욕을 퍼부었던 그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말자 또 고함을 질렀다.

 “당신! 왜 나에게 욕하는 거야?”

 나는 대답했다.

 “누가 먼저 욕을 한거요? 댁이 먼저 이유 없이 그랬잖소?”

 냉정하지만 분노에 찬, 임전무퇴의 내 표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제야 그는 내 손을 잡으며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과거 헌병대 출신이어서 원래 성질이 많이 더럽소. 헤헤, 서로 없던 일로 합시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것이 속물들의 특성이다. 내가 강하게 나오니 뭔가 그도 위험을 느낀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직장 생활에서의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내가 그 자리를 떠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응원해주었던 S씨와 L양, 두 사람의 맑은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언어들 사이에는 번역하기 어려운 말들이 많다. 우리말의 '복(福)'에 해당하는 영어 어휘를 찾기 힘들 듯이 영어의 '컴패션(Compassion)'은 우리말 상응어를 얼른 내놓기 어려운 단어이다. '사랑'이라 해도 성에 차지 않고 '연민(憐憫)'이라 옮겨도 개운치 않다. 맹자의 심성론에 나오는 ‘측은지심’이 의미상으로는 매우 가까운 느낌이지만 ‘측은’의 지나친 속화가 눈에 그슬린다. 사전을 찾아보면 컴패션이란 말에는 사랑, 연민, 동정의 뜻 말고도 ‘고통의 이해’라는 의미가 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데서 솟아나는 사랑, 연민, 동정 - 이런 뉘앙스이다. 그 컴패션으로 나를 믿어주고 용기를 주었던 길동무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들 사시는지. 그대들이 나를 잊을 지라도 나는 그대들과 함께 했던 그때가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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