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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세상은 돌고 돕니다

by 언덕에서 2014. 9. 5.

 

 

 

세상은 돌고 돕니다

 

 

 

 

 

 

 

 

마흔 이후의 사람들이 훨씬 중후해 보이는 것은 입지(立志)의 중량보다는 잃어버린 것들의 무게 때문은 아닐까? 그 무게와 함께 사람들은 어떤 기술을 터득하기 시작한다. 가슴이 어떻게 상실의 시간과 화해하는가라는 기술이 그것이다. 이 화해를 가리켜 ‘성장’이라고도 하고 ‘성숙’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십대에 들어설 전후 시기의 일이었다. 종합상사에서 해외로부터 수입한 기계를 국내 영업 부서에서 불특정 업체에 영업하여 판매하던 시기였다. 인문계 출신이 기계의 성능이나 구조를 이해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어차피 기업체에 몸을 담은 이상 넘어야 할 벽이었다. 밤을 새워가며 그 부분 관련 지식을 찾아서 공부하여 업무에 임했는데,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던 시대가 아니어서 저녁에 업무가 끝나면 도서관에 달려가서 해당 자료를 찾는 게 일이었다.

 그러나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건을 사야 할 업체에서 나에게 "제발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하는 것이 아니어서 일일이 물건을 살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찾아다니며 판촉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은 영업 기획하는 부서에서 시장을 선제 공격한다는 의미로 수요를 주먹구구 식으로 예측하여 기계를 왕창 사들여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재고를 소진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영업 부서의 능력 부족으로 귀결되고 마는 회사 분위기는 사람을 마른 명태처럼 바짝 마르게 만들고 있었다. 우선 규모가 있는 건설회사에 가서 담당자를 알아내어 제품의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이런 제품이 필요하면 ’연락 주십사‘를 부탁하는 일이었는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해당 회사 정문을 통과해서 담당자를 어찌어찌 찾아서 말을 건네려고 하면 대부분 ’서류를 두고 가라‘며 앉을 기회도 주지 않고 냉정하게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그래도 양반 격으로 문 앞에서 출입을 저지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잡상인으로 분류되어 모욕을 받으며 쫓겨나는 일상은 무안과 창피의 연속이었다.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기업 입사문을 뚫고 들어가 업무에 임하는데 현장에서는 잡상인 취급을 받으니 어린 나이에 그 낭패감과 좌절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내가 존경하던 과장은 회사 내에서 '영업의 왕'으로 불렸는데 자신이 불특정 회사의 사무실 문을 노크하며 쫓겨남에 대해 느꼈던 공포는 3년이나 기나긴 시간이었다고 했다. 노크를 할까 말까 문 앞에서 망설이다가 돌아온 날도 1년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낯을 가리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 거래처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의 ’묻지 마 영업‘이다.

 

 

 

 얌전하고 온순하기 그지없던 과장은 하루 종일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서 낭패해하는 내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 모습을 발견했는지 어느 날부터는 자신과 함께 영업을 나가자고 명했다. 물론 기존에 고정적으로 거래하던 업체에서 우리 직원들은 그런대로의 대우를 받았지만 거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던 업체에서는 별 볼 일없는 ‘잡상인’에 불과했다. 과장은 사자 새끼를 강하게 키우는 사자 어미처럼 나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어 왔던 것이었는데 어느 시기부터 내가 흔들리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과장의 주 거래처인 ○○기업은 건설회사와 하역회사를 겸하고 있는 상당한 규모의 중견기업이었다. 과장은 그 회사에 해당 담당자 없이 전무이사와 영업 채널을 직접 유지하고 있었다. 그 전무는 월급쟁이 CEO로 S대 상대 출신의 권위적인 중년 신사였다. 처음 그 회사를 방문하던 날, 과장은 그 전무에게 나를 소개시키며 ‘대졸 공채 출신 신입사원이니 저를 대신한다고 생각하시며 대해 달라’며 인사를 시켰다. 당연히 나는 그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명함을 건넸는데 그는 고개만 끄덕이며 명함을 받지 않았다. 이후 세 사람의 영업 상담이 시작되었는데 대화 중 틈이 나서 다시 명함을 건네자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다음번부터는 과장 대신 방문해야 할 터인데 이름조차 알리지 못한다면 낭패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무 자리에 내 명함을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때 그는 내가 올려놓은 명함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돌려서 이리저리 명함을 훑어보더니 곧장 책상 옆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그날 내가 느낀 모멸감은 대단했다. 과장은 자리를 나오자 내게 ‘저 양반, 왜 저러지?’하며 의아해했다. 과장은 낭패스런 내 표정을 보더니 ‘이 기회를 계기로 더 친해지라’며 앞으로는 별일 없어도 그 회사를 매일 방문해서 전무에게 '묻지마' 인사를 하라고 명했다. 그래서 이후 핑계를 만들어 한 달에 한두 번 그 업체를 방문하여 그에게 깍듯히 인사를 하곤 했는데 냉랭하게 대하는 건 여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전무는 자신과 같은 VIP 고객을 과장이 직접 응대해야지 어디 감히 신입사원을 보내는 결례를 ……. 하는 생각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어느 날에는 그 회사 사무실 문 앞에서 직원에게 제지를 받고야 말았다.

 “전무님이 앞으로는 B과장님을 보내라 하십니다.”

 

 

 나를 이유 없이 벌레를 대하듯 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들이 누적되자 나는 업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기기 시작했다. 선배들은 나의 스트레스를 짐작하고 있는지 시간이 약이니 느긋하게 대응하라며 위로하기 시작했는데 얼굴에 철판을 깔고 사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무척 힘든 시기였다.

 이후 종합상사의 수출입 부진을 이유로 회사의 구조 조정이 시작되어 내가 속한 부서는 해체되었다. 신입사원인 나는 각 부서의 먹잇감이 되었다. 부서마다 인원이 부족하던 차에 싱싱한 초급사원이 매물(賣物)로 나왔기 때문이다. 영업이 아닌 내근 업무를 희망한다고 이야기하니 곧바로 구매 부서에 낙찰되었다. 그러니까 뭘 팔러 다니던 업무에서 뭘 사주는 정반대의 업무를 맡게 된 셈이었다. 지금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당시에도 전형적인 ‘갑질’에 익숙한 구매 부서의 직원들은 독선적이고 거만한 느낌을 주어서 업체들로부터 원성을 사기 일쑤였다. ‘을질’만 하다 전입한 내가 외주 업체 직원들에게 영업사원처럼 친절한 자세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부서장은 ‘복덩이’가 들어왔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서장이 내게 검토하라고 지시한 외부 공문 한 장이 눈길을 끌었다. 부서에 도착한 공문을 서무 여직원이 내용에 따라 분류하다가 부장의 의견에 따라 담당인 내 자리에 놓아둔 것인데 발신자는 ○○기업의 책임자인 바로 그 李 전무였던 것이다. 그는 같은 그 회사의 총괄 임원으로 지위가 높아진 상태였다. 공문의 내용은 자신들이 작업한 하역비의 정산이 비정상으로 이루어진 결과, 손실이 많으니 이미 지급한 비용에서 50%를 더 지급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관련 협회에서 결정한 '작업 비용 요율표'와 회사가 기 지급한 비용들을 꼼꼼하게 살펴보니 문제점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그 회사에서는 오히려 받지 않아야 할 항목들을 일부러 만들어 억지로 청구하여 수령해 간 근거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전임자가 이미 과다 지급한 비용을 돌려달라기에는 무리여서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 추가 지급이 불가함을 설명하는 공문을 FAX로 보냈다.

 

 

 며칠 후 해당 회사의 담당자가 내게 찾아와서 면담을 청했다. 사실은 자신들의 회사가 새로 작업하는 우리 부서의 수출입 벌크(Bulk) 하역 작업을 맡고 싶다는 것이었다. 문제되었던 하역료 추가 부분을 받지 않을 테니 물량을 자신의 회사에 밀어달라는 청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삼국지의 한 장면처럼, 강하게 겁주기도 하고 봐 주는 척 발을 빼기도 하면서, 얻을 것은 다 가져가겠다는 그런 의도가 읽혀졌다. 나는 이미 참여를 요청한 타 회사와 함께 견적에 참여할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하며 기회가 되면 책임자이신 李 전무님을 직접 찾아뵙고 설명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기뻐하며 내가 어려운 걸음 할 것 없이 직접 모시고 오겠다며 이틀 후 회사를 다시 찾아왔다.

 

 

 

 손님 접견실에서 나를 만난 李 전무는 깜짝 놀라며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이 년 동안이나 알고 지내던, 자신이 늘 무시했던 애송이가 어느날 갑자기 '갑'이 되어 바로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공손히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한 마디 던졌다.

 “이번에는 제 명함을 받으시는군요.”

 “아……. 저번 그 분이시네! 부서가 바뀐 모양이로군.”

 “그때 제가 여러 번 명함을 드렸었는데 안 받으시더군요. 여러 번 쫓겨나기도 했었구요.”

 “하하, 그랬나요. 그래, 당시에 내가 당신을 서운하게 한 것 같소. 잊어버리시고 이번엔 어떻게 좀 도와주소. 식사도 한 번 합시다.”

 그랬다. 세상은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는 예외없이 약하다는 것을 다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함무라비 법전을 응용한 코미디처럼 개에게 엉덩이를 물리면 "너도 엉덩이를 물어라." 고양이가 자네 생선을 훔쳐가면? "너도 가서 고양이의 생선을 훔쳐라." 처럼 "내가 당한 것만큼 갚아준다"는 생각,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인격이 성숙되지 않은 어렸을 시기였다. 나도 모르게 그가 나를 대했던 식으로 당한 만큼 갚아주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다섯 회사에 통보하여 공개 입찰을 실시했는데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것은 李 전무의 ○○기업과 또 다른 회사 해서 두 군데였다. 나는 李 전무의 ○○기업이 평소에 사전 계약과 협의를 무시하고 과다한 비용을 청구해온 근거를 제시하며 탈락시키고 말았다. 이후 그분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내게 연하장을 보내왔다. 그런데 나는 일부러 무시하듯 보내지 않았다. '어른스런 정신적인 성장’과 ‘인격의 성숙’과는 거리가 멀었던 철없는 애송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당한 것만큼 갚아준다'는 철부지와 같은 당시의 행동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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