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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옛날의 금잔디

첫사랑의 남편

by 언덕에서 2014. 9. 12.

 

 

 

 

첫사랑의 남편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니던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과 초등학교를 지나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토요일마다 성당 교리실에서 함께 보냈다. 그러나 다들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대학에 가고, 또는 회사에 취업하고 몇 년 있다가 군대에 입대하고 해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나는 군대 가기 전, 휴학 기간 동안에 새로 생긴 성당에서 고등부 교사를 6개월 정도 맡았었는데 주일학교를 관장하던 중년의 수녀(修女)님에게 소신(?) 발언을 했다가 즉각 해고되었다. 당시 성당의 주임 신부(神父)는  노무현 대통령의 사부(師父)로 알려진 송기인 신부였는데, 신부님은 정치판에 관심이 많아 고등부는 물론이요 성당 일반 사목 업무에도 별반 관심을 주지 않았다. '신부님이 성당 일에 무관심하니 아이들이 성당을 탈선의 장소로 여기고 수녀님께 반항을 하며 그 결과로 개판 오분 전의 상태에 이른 것'이라는 식으로 따졌던 것이다. 강하면 부러진다고, 자신만의 논리와 열정이 너무 강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세월이 흘렀다.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을 하고……. 불같은 열정을 품고 살던 20대가 저물어 갔다. 그리하여……. 그 시기를 기념할 수 있는 증표(證票)라는 것은 군대 제대 후 복학해서 만난 같은 학과 대학 후배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20대가 끝났다는 정도의 사소한 시간의 흐름일 것이다.

 내가 입사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무역회사는 나를 그냥 적당히 근무하게끔 내버려두지 않았다. 차갑고 냉정하며 최고와 합리주의를 표방하는 ‘세 개의 별’ 이라는 명칭의 그룹사는 지급하는 월급의 수십 배를 우려내는 느낌이었다. 잦은 근무지 이동은 말할 것 없고 부서 이동, 보직 변경, 해외 근무 등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하하, 그래도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새벽에 별을 보고 집을 나가고 늦은 밤, 별을 보면서 퇴근했지만 뭔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몸 바쳐 일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삼십 대가 쭈~욱 지나고 3.6.9로 따지면 30대 후반이 되었다. 퇴근길 시내에서 고등학교 때 성당 절친 녀석과 그야말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한때 우리는 사제(신부)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진지하게 함께 고민하던 그야말로 친구 중의 친구사이였다. 그는 독문학 박사가 되어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뛰고 있었다. 그날 그와 함께 한 포장마차에서 2시간 만에 20년 전에 헤어진 친구들의 각자 다른 삶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와 편지를 주고받던 동갑내기 여학생의 안부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고등학생 때 나에게 상당한 연모의 정을 주게 만든 ‘A’라는 매우 지적인 여학생인데 그날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A가 성당 고등부 동기와 결혼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머지 성당 친구들과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만나서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다가 2차로 홀(Hall)식으로 된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때 조용필의 노래 ‘창밖의 여자’를 열창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고 했는가~~'

 모두들 한 곡씩 노래를 부르고 잠시 소강 상태였는데 누군가가 나의 첫사랑이었던 A 이야기를 화제로 꺼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리한 모든 이의 시선들이 내게 쏠렸다.  내가 당황해 하니 다른 녀석이 웃으면서 휴대 전화를 꺼내더니 A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A의 남편은 20년 전에 나와 얼굴 정도만 겨우 아는 관계였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너 지금 올 수 있니?"

  전화를 하고 나서 30분 정도 지났을까?

 A의 남편이 노래방에 도착하여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때 5명이 노래 부르며 마시던 노래방 테이블에는 안 마신 맥주가 30병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다들 거나하게 취해들 있었다. 게다가 나는 첫사랑의 남편이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하여 몇 잔 더 마시는 바람에 그야말로 '인사불성' 일보 직전 상태에 있었다. A의 남편은 기계류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는 중소기업 ‘사장’이었는데 마른 몸매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중한 매너에 상당한 젠틀맨 느낌의 달변가였다. 그런데 그도 어디서 마시다가 왔는지 떡실신 일보직전이었다. 그와 나는 90도로 서로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다정하게 ‘원샷’을 하기 시작했다.

“윤형은 대기업의 중견간부님이시군요.”

“박형은 부럽게도 사장님이시군요.”

 곧 이어

“집사람에게서 윤형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하, 그래요? 어릴 적 친구였지요. 하하…….”

 그때까지는 좋았다.

 A의 남편이 집에 가서 오늘 만난 윤 아무개라는 인간이 그런대로 멋진 넘이라는 이야기가 A의 귀에 들어가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주기를 바랬으니까. 그런데 이야기를 자꾸 하다 보니 서로 긴장이 풀어지고 말이 많아졌다.

 술 탓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되었고 그때 발견한 것은…….

 

 

 

 

 그의 머리가 뒷부분을 제외하고는 완전 대머리라는 사실이었다. 불행한 사건은 그와 ‘원샷’을 하며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드디어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왜냐하면 과도한 음주로 인해 떡실신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박형, 딸꾹……. 딸꾹…….”

“무슨 이야기라도 하시죠. 왜 망설이십니까? 하하~~”

 이후 취중에 한 나의 행동은 아무리 취했다고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박형, 나의 인생은 왜 이 모양입니까?"

 "왜요?"

 "하필이면 왜 첫사랑의 남편이 빤짝빤짝 빛나는 대머리이어야 한단 말입니까?"

 이 녀석들이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지 귀를 쫑긋해하며 듣고 있던 일행들은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푸핫…….” 여러 사람의 박장대소가 너무 커서 나 자신이 놀라는 순간이었다.

 

 

 


 그 다음날 출근하면서 전날 밤을 복기(復碁)해보니 밤 열 두 시가 다 된 시간에 A의 남편이 우리가 있었던 술집에 온 일이며 내가 그에게 대머리 타령을 계속해 그를 수차례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양복 주머니를 만져 보니 어제 그로부터 받았던 명함이 발견되었다. 회사의 급한 일들을 정리하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제 본의 아니게 실수를 많이 한 것 같군요……. 죄송하고…….”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웃으며 말했다.

“윤형이 대머리로 실수했다면 나도 그에 못지않게 실수 많이 한 것 같소.”

 전화를 끊고 생각을 해보니 그가 나에게 실수를 했다는 이야기가 도무지 무슨 말인지 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민망함을 무릅쓰고 동석했던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허붓허붓 웃으면서 그 전말을 이야기했는데 A의 남편이 나의 대머리 타령에 대응을 하며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대머리의 정력이 얼마나 센지 당신이 알기나 하느냐……. 대머리의 위력을 모르고 산 당신의 인생은 개떡 같은 거다 ……. 시저, 히포크라테스, 셰익스피어, 레닌, 처칠, 모택동, 아이젠하워, 이승만, 전두환, 이주일 ……. 인류의 역사는 대머리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가? 그러니 앞으로는 무식하게 살지 말고 공부 좀 하면서 대머리를 존경하며 살아가시라…….

 

 오늘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나이가 드는지 요즘 들어 유달리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저지른 실수의 대가를 드디어 받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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