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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삶의 통증을 생각하게 한 영화 <통증>

by 언덕에서 2014. 5. 28.

 

 

 

 

삶의 통증을 생각하게 한 영화 <통증>

 

 

 

 

내가 이 란에서 소개하는 영화는 개봉 영화를 직접 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케이블 티비에서 방영하던 것을 리뷰하는 경우이다. 나는 가끔씩 새벽 네 시나 다섯 시 경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있는데 다시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아 티비를 켜보면 영화가 방영 중인 때가 많다. 이 영화도 그렇게 해서 접하게 되었고 이후 IPTV를 통해서 처음부터 다시 보게 되었음을 알린다.

 

 

 

 

 

 

 

 통증은 느낌이고 느낌은 곧 추억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정 반대의 상처를 안고 있는 두 남녀의 강렬한 사랑이 주제인 영화이다. 2011년 개봉된 영화로 만화가(漫畵家) 강풀의 원작에 <친구>, <똥개>를 만든 곽경택이 감독한 작품으로 권상우와 정려원이 남녀 주연으로 나온다. 외부로부터의 통증을 못 느끼는 남자와 통증에 민감한 여자.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아주 작은 상처도 치명적인 여자가 주인공이다.

 곽경택 감독의 멜로 영화 <통증>은 통증의 '제로''무한대'에 있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서로 상처를 안고 연민을 나누는 이야기다. 무뚝뚝하게 밀어붙이는 곽경택식 연출과 작가 강풀의 감수성이 결합된 영화 <통증>은 이 극적 만남의 조합이다. 이 조합이 불협화음일 거란 예상과 달리 <통증>이 주는 아픔의 강도는 꽤 세다. 군더더기 없이 '멜로'에 집중한 결과일 것이다. <똥파리>의 양익준을 대중화 시킨 권상우의 연기가 담백하고 힘있게 이 사랑을 전달한다. <친구2>를 포함해서 여태까지 보아온 곽경택의 영화 중에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두 인물의 감정에 관객이 서서히 동화되는 과정이 큰 무리 없다는 점이다. 여기엔 톤을 낮추면서 진일보한 연기를 보여준 권상우의 연기력이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극적 전개에서 도시 빈민들 같은 첨예한 이슈가 현실적 맥락을 벗어나, 지나치게 극적 전개를 위한 배경으로만 기능한다는 점은 이 영화가 지닌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하고 싶다. 두 연인들뿐만 아니라, 가지지 못한 자들의 통증도 같이 보듬어 줄 수 있었다면 좀 더 균형있고 따스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릴 적 자신의 실수 때문에 가족을 잃은 죄책감으로 온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 남자‘남순’(권상우)과  한번 피가 나면 멈추지 않아 작은 통증조차 치명적이어서 본인을 흡혈귀라 부르는 여자‘동현’(정려원)이 주인공이다.

 몸에 아픈 감각을 못 느끼는 남순은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고 아는 형과 공갈과 자해로 사채 회수 일을 하는 총각이고, 혈우병을 가진 동현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병원 빚을 짊어지고 길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처녀이다. 남순은 육체적 통증을 못 느끼는 탓에 마음의 상처도, 타인의 고통도 알아채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악덕 사채 회수업자의 똘마니이다. 어느 날, 사채 회수를 하면서 돈을 갚지 못하는 이상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채무자 동현은 혈우병 환자로 혈액응고제를 따로 투여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는 몸이다. 남순은 처음엔 단순히 돈을 받기 위해 동현을 괴롭히며 따라 다닌다.

 그 결과 남순은 동현의 전 재산인 전세 보증금 500만원을 빼앗게 되고, 이로 인해 집이 없어진 동현은 머물 곳이 없어진다. 채무 채권자 간의 만남이 이루어진 후, 남순은 자신의 누나와 비슷한 동현에게 끌리고, 동현은 비정한 도시 서울에서 자신을 생각해주는 남순에게 끌린다. 남순은 이런 동현을 자신의 집에서 살라고 권유한다. 남순의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동현은 그의 집을 청소하고, 새롭게 꾸미고 남순과 아주 천천히,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그러면서 악랄함으로 포장되었던 남순의 심성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그렇듯 잠시 뿐이다. 남순은 동현을 위해서 사채 회수를 하며  '얻어 맞는' 일을 그만두고 영화 엑스트라 일을 하면서 돈을 조금씩 모아간다. 그러나 동현은 불치병에 걸린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게 되고 남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이별을 고하고 그를 떠난다.

 남순의 사랑에서는 그녀와의 이별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아픈 동현의 약을 구하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했고 ‘얻어 맞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해서 그는 투쟁, 승리, 그리고 '죽음' 이 기다리고 있는 재개발 철거 지역 농성 현장으로 가게 된다. 그의 역할은 '이슈메이커'로 농성 현장인 옥상에서 떨어짐으로서 언론과 세상에 농성을 알리는 일을 하는 역할이다. 남순의 동업자 형인 범노(마동석)는 남순을 죽음으로 내몰 생각은 없었으나, 배후 세력은 그와 남순을 배신하여 남순을 '죽음' 으로 내몬다.

 남순과 헤어진 후, 시장에서 액세서리 장사를 하며 힘겹게 살아가던 동현은 남순이 위험한 농성 지역 옥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직감으로 위험을 느끼고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몸에 상처가 나면 멈추지 않는 피 때문에 죽게 되는 것이 혈우병이다. 동현은 남순이 농성장 옥상에 있는 공사장으로 급히 가다 각목에 박힌 쇠못을 밟으며 피를 흘린다. 그런 동현 앞에 농성 주최 세력의 폭력에 남순은 옥상에서 추락한다. 이제 두 사람 앞에 남은 것은 죽음 뿐이다.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남순을 부여안고 통곡하는 동현의 모습에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은 죄책감과 그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후유증으로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된 남자, 남순. 고통을 느낄 수 없는 탓에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이상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여자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운 삶을 사는데 깡이 보통이 아니다. 난생 처음 가슴에 뻐근한 통증을 느낀 남순은 그녀가 더 이상 지치지 않도록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를 쓴다.

 이 영화를 보며 그저 얼굴 잘 생기고 근육 좋은 배우 정도로만 알았던 권상우의 연기력에 매우 놀랐다. 이 영화는 눈물을 짜내는 신파조의 분위기도 아니고 요즘 말로 쿨하게 보이는 관계의 두 사람이지만 진행해가는 사랑의 결과는 매우 가슴 저린 영화이다. 영화 초반부의 흐름대로 혈우병을 앓고 있는 동현의 육체적인 고통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였다면 다소 평범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통증>은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보는 내내 따끔하기도 하고 시리기도 한 영화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삶들마다 사정과 내용은 모두 다르겠지만 뜨겁게 사랑하고 뜨겁게 눈물지었던 날, 또 때론 무너지고 싶었던 날, 놓아버리고 싶지만 놓을 수 없던 날, 힘을 내어 다시 세우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다시 세워야 할지가 막막했던 기억들이 누구나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 장면 속의 복잡한 도시 서울은 별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언젠가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걸었던 거리, 모임을 빠져나와 누군가와 통화를 하던 골목, 처음으로 술을 배웠던 동네, 혼자서 좌절했던 뒷골목의 풍경들이 잔잔하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사랑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면 영화 통증의 배경이 되었던 곳을 걸어가 보시기를 권한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만약 멀쩡하던 가슴에 찌릿하게 통증이 온다면 아직 살아가고 사랑할 힘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