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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예방주사

by 언덕에서 2014. 5. 30.

 

 

 

예방주사 

 

 

 

 

 

 

 

금년 1월부터 견비통을 앓고 있다. 팔에 마비가 오는 듯한 현상을 느껴서 동네 의원에 갔다. 혹시 중풍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로 인해 갑자기 식은땀이 흐르면서 걱정이 오기 시작했다. 내 나이 또래의 예쁜 여의사는 자신의 손을 내밀면서 꼭 잡아보라고 했다. 시킨 데로 했더니 분명한 것은 중풍(中風)이 아니나 걱정이 많으니 원인 규명을 위해 전문의에게 가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불치병과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최초로 간 병원은 관절 질환으로 유명해진, 근년에 문을 연 정형외과 병원이었다. 엑스레이를 들여다 본 젊은 의사는 ‘어깨충돌증후군’이라고 병명을 이야기하더니 혹시 종신보험 든 게 있느냐고 물었다. 이후 의사는 한 달치의 약을 주면서 매일 ‘고주파 열 치료’와 더운찜질 치료를 한 후에도 효과가 없으면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의사의 지시대로 치료를 했건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술을 하면 낫느냐는 내 질문에 어느 정도는 좋아진다고 했다. 하, 세상에 이런 답변도 있구나 싶었다.

 아파트 입구의 한의원에 가서 증세를 이야기하고 보름 동안 침을 맞았으나 역시 효과가 없었다. 보름째 되던 날에 한의사는 미안한 얼굴을 하며 ‘지금은 효과가 없지만 이렇게 치료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낫지 않겠느냐’는 얘길 했다.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지만 무한정 그곳에다 통증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친구에게 통증을 이야기하니 척추를 포함한 몸을 구성하는 뼈의 배열이 좋지 않아 그럴 수가 있으니 지압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지압사는 척추가 좋지 않아 생기는 증세이니 열흘 정도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몸의 근육과 관절을 지압사 특유의 강한 악력(握力)으로 누르는 바람에 며칠 동안 초주검이 되는 상태를 겪었다. 역시 쓸데없는 곳에다 돈을 쓰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병원에 가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인들의 이야길 들으니 최근에 문을 연 병원은 고가의 의료 장비, 시설비와 인건비를 빼기 위해 사소한 병도 수술을 권하여 입원시키는 경우가 많으니 두 군데 이상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판단을 해라는 의견들이었다. 그래서 처음에 갔던 병원보다 좀 더 큰 종합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 병원 정형외과 의사 프로필을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대학병원 의사 경력에다 어깨관절이 전문인 의사를 발견했다. 그래서 그 병원의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엑스레이에다 MRI, 초음파 촬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진을 본 의사는 ‘어깨 둘레띠 증후군’이라고 설명하면서 일단 약으로 치료 후 개선이 없을 시에는 수술을 하자고 하며 보름치 약을 처방했다. 한 달 동안 약을 복용했으나 증세는 악화되어만 간다. 의사에게 계속되는 통증을 호소하자 수술을 권했다.

 “아무래도 좀 좋아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좋아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이렇게 무책임한 의사가 있을까 하는 반문이 들었다. 갑자기 고교 동기 중에서 신경외과 겸 정형외과 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괜찮은 친구가 있다는 소문이 생각났다. 그간 찍었던 MRI, 초음파 등이 담긴 CD를 든 채 절친 A를 데리고 그 병원에 갔다. 의사인 동기 녀석의 의견은 이랬다.

 요즘의 병원은 새로운 장비, 시설 투자를 많이 한 탓에 경영난으로 웬만하면 수술을 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CD를 통해 진찰한 자신의 소견은 수술할 내용이 아니라고도 했다. 현대 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병이 많다는 것이다. MRI면 됐지 별도로 고가의 초음파를 찍은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고는 말도 했다. 그런대로 팔을 움직이며 지내니 그냥 참고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솔직한 의견을 이야기했다. 내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니 소견서를 적어 줄 테니 ◯◯대학교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판단을 하라고 했다.

 

 

 

 

 

 ◯◯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매우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눈길 한번 던지지 않고 이야기했다.

 “수술은 안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일단 6개월 동안 약으로 치료해보고 안되면 수술을 하는 걸로 검토해봐요.”

 석 달 동안 열심히(?) 약을 먹었으나 오히려 통증은 심해만 갔다. 자다가도 어깨 통증 때문에 잠이 깨는 일이 많아졌다. 의사에게 증세가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를 해도 그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최소한 6개월은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 병원에서 찍어온 MRI의 촬영 상태가 좋지 못하니 다시 촬영하자는 말도 추가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대학병원의 MRI 촬영 비용은 일반 병원의 갑절 정도 된다.

 처방전을 들고 ◯◯대학교 병원을 나와서 약국으로 향했다. 약사에게 처방전을 건네주며 약의 내용물이 어떤 건지 물어보았다. 진통제, 소화제, 위 점막 보호제, 근육긴장 개선제. 소염진통제.

 용감한(?) 약사는 내게 말했다.

 “이런 약 갖고는 낫지 않는데…….”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전부 진통제잖아요. 일시적으로 통증은 줄겠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죠”

 <의사는 수술 받지 않는다>는 책에서 읽은 ‘약을 주는 의사의 변’이라는 내용이 생각났다.

 첫째, 달라니까 준다. 약타는 것을 목적으로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는 약을 숭배하는 대한민국의 지역사회 문화적 관념도 한 몫 한다.

 둘째,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일단 약을 주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들을 흡족하게 만들 수 있다. 시간 대비 효과적인 진료다.

 넷째, 안주면 불안하다. 환자들은 그냥 기다려 주지 않을 거니깐 딴 병원 가기 전에 어서 약을 주자.

 다섯째, 절박하다. 약이라도 주지 않으면 이 환자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것이다.

 여섯째, 약을 주는 것은 당위다. 이상이 나오면 의당 약을 먹어야 한다.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또는 약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심을 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다.

 결론적으로 ‘◯◯대학교 병원’에서의 치료를 포기했다. 동창인 친구 의사를 제외하면 이 놈, 저 놈, 의사 모두에게 나는 봉으로만 보였던 셈이다.

 그 사이 살이 계속 빠졌다. 10kg 정도? 종합건강진단 결과 별 이상이 없는데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금년 삼월에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블로그 어워드 시상식 이런 것 때문이었는데 다행히도 주최 측에서 수상 장면을 인터넷에 게시하는 통에 수상하는 내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이거 내 사진 맞아? 요즘도 길거리를 지나다가 쇼윈도우 등의 거울에 비친,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져 가는 꼬락서니를 보는 것은 참 우울한 일이다. 옷이란 옷은 모두 커져서 바지를 입으면 헐렁이처럼 후줄근하였고 얼굴은 초췌하고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전철역 벽면이나 전동차 내에서 광고가 많이 부착되어 유명한 한의원인데 동의보감에 충실한 치료를 하는 곳이라고 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과 지역 방송인 KNN은 물론이고, 공중파, 채널 A, JTBC, 조선TV, MBN 등 종편 방송에도 무수히 출연한 한의사가 직영하는 한의원이었다. 그곳에서의 '헉, 소리나는' 고가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견비통은 전혀 낫질 않았고 그 한의원과도 인연을 끊었음을 물론이다. 

 

 

 

 

 

 이후 한밤중에는 통증이 더욱 심해져서 무심코 잠들었다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홀로 비명을 지르면서 깜짝 놀라 깨어나 나도 모르게 ‘아이고, 어머니. 아이고, 엄마’ 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부르곤 하였었다.

 볼펜으로 글씨도 제대로 못쓰고 옷도 제대로 못 입고, 혁대도 제대로 못 매던 통증으로 이러다가 불구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러다가 사지가 뒤틀려 오른쪽 어깨를 영영 못쓰는 병신이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많이 하였는데, 앓고 보니 새로운 결론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냥 아프면 아픈 대로 버텨나가자는 결심이 그것이다. 최대의 약이란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참고 견디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나는 ‘아플 테면 아파라,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라는 배짱으로 버텨나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아프다는 말이 너무 자주 나오네. 그런 걸 보니 당신도 늙어가는 모양이어요.”

 그런데 갑자기 서운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별로 아파본 적이 없었고 감기 몸살 같은 사소한 잔병도 잘 걸리지 않았다. 내 딴에는 가족들 앞에 항상 철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내가 오른쪽 어깨 통증에 시달리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아버지인 내가, 남편인 내가, 가까운 벗인 내가 아프다고 호소를 하여도 그 아픔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외국에 나가있는 아들아이도, 다정한 척하는 딸아이도, 아내도, 친구도, 의사도, 한의사도, 지압사도 아프다는 내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 분명하고 간단한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오십이 넘은 나이인데도 이제야 깨달은 나는 아마 철부지 같은 이기주의자였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어차피 홀로 병들고 홀로 아프고 홀로 신음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내가 찾아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아프다, 내가 많이 아파’를 연발하셨다. 내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노인들은 으레 아프다는 말로 입을 열고, 아프다는 말로 입을 닫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프다는 신음소리를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러버렸다. 속된 말로 아픈 것은 어머니지 내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노인이 진심으로 아픈 것은 육신의 고통이 아니라 아무도 그 호소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고독에 대한 마음의 고통일 것이다.

 나는 내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아이들 앞에서 아프다는 신음소리가 점차 사라지기를 바란다. 내 아픔이 아내나 아이들에게 쉽게 들키지 않음은 물론이요, 아픔을 통하여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픔이, 병들고 신음하는 이웃의 고통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는 그런 예방주사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