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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그들이 내 노래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

by 언덕에서 2014. 5. 9.

 

 

그들이 내 노래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핑계 대며 신에게 부질없는 부탁을 하지는 않았을까. 이를테면 강가의 풀숲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가 자신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자신이 떠내려가든지 죽든지 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을 경우에도 말이다. 어부들은 인당수에 심청이를 밀어 넣었으며, 에밀레종을 만들었던 예술가는 쇳물이 끓는 도가니 속에 아기를 집어넣어 함께 녹였다. 인간은 부질없는 짓을 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잔인한 일이 맞는다고 믿는 오류를 가졌다. 사람들은 오랜 동안 인신공양이라는 신에 대한 예의를 잊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로인한 신의 노여움도 다소 해갈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신이 우리의 운명을 쥐고 있다는 논리야 말로 황당무계한 이야기임에도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주말의 영화 서부극을 보면서 존 웨인이 잔인한 인디언들을 박멸하는 장면에서 나는 박수를 치며 신이 보여준 정의에 기뻐했다. 웃기는 일이다. 인디언 입장에서는 존 웨인이야말로 평화롭게 살던 그들을 침범한 불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늙고 피곤하신 하느님은 너무 바쁘셔서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지도 모른다.

 

 위의 사진은 낡은 앨범에서 찾아내었다. 내가 고2 때 펜팔 하던 Malaysia 아가씨 사진이다. 학교 복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라고 그랬다. 나와 같은 나이의 화교 소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1978년 당시 말레이시아의 페낭(penang)시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름은 Irene wong cheng chai. 지금은 중년 부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고2때 옆자리에 영어를 아주 잘하던 친구가 있었다. 계급이 총경인 경찰서장 아들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펜팔할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다. 본시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그러자고 했더니 몇 주 후 내게 말레이시아 우표가 붙은 항공우편이 날아왔다. Irene는 화교였는데 편지의 필력으로 느낀 것이지만 유창한 영어실력을 갖고 있었다. 나는 당시 <성문종합영어>라는 어려운 참고서를 세 차례나 독파할 정도로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Irene에게 편지 쓰면서 부족한 문장력을 절감했었던 기억이 난다.

 

 

 

 

 

 

 위의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Irene가 직접 찍어 편지에 동봉한 사진으로 1978년 당시 우리나라에는 보기 드문 열대 관광지의 풍경에 부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고3 초반까지 이 아가씨와 연락하다가 어떤 이유였는지 서로 소식이 끊겨버렸다. 아마 내가 대학입시 공부에 너무 열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후 1980년 6월경에 편지가 왔다.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많은 인명이 살상된 것이 외신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던 시기다. '당신의 안전이 걱정됩니다(I'm worried about the safety of you)'는 편지가 왔기에 '걱정 마세요. 나는 별 탈 없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Don't worry. I am safe and well-attended at the University has no problems.)'는 답장을 한 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편지였다. 그 이후로 나는 군대에 입대하고 훌쩍 세월이 흘러버렸다.

 대학 입학 후 부족한 학비를 보충하기 위해서 학교 앞 음악다방에서 디제이(D.J)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 덕분에 내 음악 취향이 대중적으로 흐른 게 단점이긴 하지만 팝음악이라면 나도 조금은 안다. 이를테면 이엘오의 <미드나이트 블루>나 존 바에즈의 <그들이 내 노래에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 따위가 불후의 명곡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다방에서 내 시간 뒤를 담당했던 디제이는 여학생이었다, 그녀의 음악 취향은 과히 나쁘지가 않았다. 그녀는 나나무스꾸리나 크리스토퍼 크로스, 제임스 브라운 등의 음악을 틀 줄 알았고 양희은이나 트윈폴리오의 노래도 들려줄 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맑고 깊숙한 목소리로 짤막한 멘트를 날릴 줄도 알았다. “비가 오고 있습니다. 송창식의 노래 듣겠습니다. 창밖에는 비 오고요.”

 늘 잠이 부족했던 나는 자다가 꿈속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곤 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스콜이라는 소나기가 내리는 싱카폴의 중심지에서 나는 좋지 못한 발음으로 또 디제이를 하고 있었다. 내 시간이 끝나면 이어서 뮤직 박스로 들어오는 이는 여자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말레이시아 아가씨였다. 그러다가 잠이 깨곤했다. 아, 그냥 꿈이었구나.

 

 

 

 

 30대 초반, 무역회사에 다니던 나는 말레이시아의 페낭시에 4박 5일의 일정으로 출장갈 일이 있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서 낡은 항공우편 봉투를 들고 갔음은 물론이다. 그 시절 나는 나와 동갑나기 그녀와의 만남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물어물어 찾아간 화교들이 사는 동네인 그 주소는 넓은 도로로 바뀐 상태였다. 혹시나 해서 인근의 부동산 중개회사의 문을 열고 들어가 대뜸 편지봉투를 보여주며 혹시 이 주소에 살던 이가 어디로 이사 갔는지 물었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I don't know"였다.

 귀국하는 비행기에는 나는 다섯 시간 동안 잠만 잤다. 그리고 또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평화롭게 잘 살고 있던 인디언들의 지역을 침범해 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던 존 웨인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들과 같은 존재로 나타났다. 나는 ‘뭐든 미국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철칙을 가진 두꺼비 얼굴을 한 회장에게 대들었다.

 "이 보시오, 당신은 세상과 사물의 본질을 너무 몰라!"

 그리고 감당 못할 후환이 두려워 그 순간이 꿈이어야 한다고 잠꼬대를 했다.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뭐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모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은 얼마 가지 못했다. 쏟아지는 강물에 개미가 어쩔 수 없는 것처럼 세상살이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기 시작한 시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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