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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조선시대 표해기행록 『장한철 표해록(漂海錄)』

by 언덕에서 2014. 5. 7.

 

 

조선시대  표해기행록 『장한철 표해록(漂海錄)

 

 

 

 

 

 

1771(영조 47)에 장한철(張漢喆, 1774~ ?)이 지은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으로 한문 필사본이며 한문으로 쓴 중편 해양소설으로 국문학사상 보기 드물게 바다를 배경으로 다룬 문학작품이다.

  조선 영조 때, 제주도에서 수재로 소문난 저자 장한철은 관가의 원조를 받아 17701225일 서울로 과거를 보러 떠났다가, 도중에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유구열도(琉球列島)에 도착한 뒤 갖은 고생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과거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했으나 1771(영조 47) 5월 초에 귀향, 5월 말에 그간의 여정을 담은 『표해록』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해양문학이자 설화집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770(영조 46) 1225일 지은이의 일행 29명이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 육지로 향하던 중 상륙 직전에 태풍을 만나 유구열도의 한 무인도에 표류하나, 표착 닷새 만에 안남1(安南)의 한 상선에 발견되어 무사히 구조된다. 그러나 다시 불어닥친 태풍으로 결국 19명의 희생자를 내고 10명만 간신히 생환한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의 해로ㆍ수류(水流)ㆍ계절풍 등에 관한 해양지리서로서 문헌적 가치가 높고, 제주도의 삼성(三姓) 신화에 관련된 이야기, 백록담과 설문대 할망의 전설, 유구 태자에 관한 전설 등 당시 제주도의 전설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어 설화집으로서의 가치도 높다. 현재 학계에 보고된 표해기 가운데에서는 가장 문학성이 높은 값진 해양 문학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면 장응선이 소장하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한철은 일찍부터 양지도의(養志道義)에 뜻을 두고 웅지를 키우다가 향시에 합격, 대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서울로 가는 장삿배를 일행 29명이 타고 제주항을 떠났다. 그러나 노어도(鷺魚島) 앞바다에 이르러 심한 비바람을 만나 3일간을 표류하다가 1228일 유구의 무인도에 도착하였다.

  설날 10여 명의 왜구를 만나 값진 물건들을 빼앗기고, 12일 안남에서 일본으로 가는 두 척의 상선을 만나 구조되었다. 15일 일본으로 향하는 안남 상선에서 한라산을 보고 구조된 일행들이 환호하다가 안남 사람들에게 탐라인임이 밝혀져 해를 당할 뻔하였으나 명나라 사람의 도움으로 바다 한가운데에서 풀려났다.

  16일에는 흑산도 앞바다에 이르렀으나 다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청산도에 도착하였다. 어두운 밤중에 상륙하다가 29명 중 21명이 죽고, 8명만이 살아남았다.

  7일에는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내고, 지은이는 꿈속에서 본 노파를 청산도에서 만나 그 노파의 주선으로 연리지2를 맺었다.

  13일 서울로 가고자 일행과 배를 타고 지도(智島)를 거쳐 15일에 강진에 이르자 마침 제주도민을 만나 일행 중 7인은 제주도로 보내고, 지은이는 다른 1인과 새 일행이 되어 23일 서울에 도착하여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33일 서울을 떠나 58일에 귀향하여 일가친척들을 만났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먼저 귀향한 7명 중 4명이 죽고, 1명은 한라산 너머 남쪽에 멀리 떨어져 있고, 2명은 병중이라서 감회를 이기지 못하였다.

 

 

 

 

 표해록은 제주 선비 장한철이 과거를 위해 한양으로 향하다 풍랑을 만나 표류한 기록이다무인도에서 해적을 만나는가 하면 구조되었다가 다시 안남과의 민족 원한으로 버려지는 등로빈슨 크루소가 무색할 정도로 파란만장한 사연을 그대로 적었다극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표해 문학의 측면에서 볼 때, 장한철의 표해록은 있는 사실을 정확하게 기록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장한철은 자신이 겪은 희한한 경험과 고난을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했다. 그때그때의 경험들을 기록한바, 그것은 표해록이전에 기록해 두었던 표해 일기의 존재에서 알 수 있다. 비록 유구의 호산도에 닿아 저술했던 표해 일기는 청산도에 표도(漂到)했을 때 물에 젖어 떨어져 나가고 뭉개져서 판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렸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표해록이 지어졌음을 고려하면, ‘표해 일기의 존재는 저술에 상당히 중요한 몫을 담당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중세의 이야기들은 주로 집을 떠난 모험을 다루거나 사랑 이야기를 다루거나 권력 다툼을 다루는데, 실제 겪은 일을 적고 있는 이 표해록에는 자연이 주는 시련과 맞섬 및 꿈속 여인과의 하룻밤 사랑 이야기가 긴밀하고도 자연스럽게 짜여 있다.

 우리 문학사에서 표해 문학의 전통은 15세기 말 최부의 금남표해록을 필두로 20세기 초에 활자화된 이방익의 표해가(창작은 18세기 말에 이루어짐)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표해 문학은 사실을 전수하려는 체험자의 의식이 강하게 배어 있는 유형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에는 때로는 사관(史官)의 엄정하고 객관적인 서술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고통을 당하는 한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객관과 주관을 어느 문학 유형보다도 고르게 배치한 것이 우리 표해 문학의 특징이다.

 

 

♣  

 

 

 

  장한철의 표해록이 지닌 표해 문학적 특징 가운데 하나로, 인간의 고통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다는 점을 또한 꼽을 수 있다. 표해록에는 슬픔·원망·분노·두려움 등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표류하다가 노화도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나갈 때 배에 있는 사람들의 심정을 묘사하는 대목(17701225)이나, 표류하면서 목숨이 위태로움을 생각해 눈물을 흘리는 장면(17701227)에서는 슬퍼하는 감정이 역력하다. 닻을 내리려 했으나 바닥에 부착되지 못하고 선장이 여분도 준비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원망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한다(17701225). 유구의 호산도에서 왜구에게 모욕을 당한 후에는 분노를 보이기도 한다(177111).

장한철이 유가(儒家)였음을 고려하면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면이다. 유가, 특히 주자학에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경계한다. 감정에 동요가 생겨 수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신 그러한 감정을 중화(中和)하는 것을 강조한다.

  표해록에는 그와 같은 유가의 경계 대신 인간 본연의 모습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이는 유가유학이라는 철학적·교육적·학문적 외피를 입고 있는 인간도극한 상황에 이르면 그러한 외피 대신 인간의 본능이 저절로 드러나게 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베트남’의 다른 이름. 중국 당나라 때, 지금의 베트남령에 안남 도호부를 둔 데서 유래한다 [본문으로]
  2. 連理枝 : 화목한 부부의 관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