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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典을 읽다

그리스 국민서사시 『오뒷세이아(Odysseia)』

by 언덕에서 2014. 11. 6.

 

그리스 국민서사시 오뒷세이아(Odysseia)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700년 경 호메로스1가 쓴 이야기이다.  그 후로 인간은 인간의 삶과 운명을 여행과 바다에 비유하게 된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주인공 오뒷세우스가 귀향을 하지 못하고 바다 위를 10년 동안 여행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메로스는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어둠에 싸인 역사적 첫 새벽에 인간으로서 겪는 모험과, 인간으로 불리려면 반드시 알아야하는 인간적 삶의 본질을 노래했다고 평가받는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대서사시로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으로 1만 2110행으로 되어 있으며, <일리아스>와 같이 24 그리스 문자를 딴 24권으로 나뉘어 있다. 지리적인 지식, 시 속에서 묘사한 생활 상태, 기타 여러 가지 내적인 증거로 미루어 보아 이 작품은 <일리아스>보다 약간 뒤늦게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주제는 트로이 원정에 큰 공을 세운 바 있는 영웅 오디세우스의 표류담과 그가 귀국하여 고향인 이타케(Ithake) 섬에 와서 20년간이나 외로이 수절한 아내 페넬로페이아와 상봉하여 마침내 그녀에게 구혼하고 있는 자들을 모조리 퇴치하는 이야기이다.

 이 시도 <일리아스>와 함께 그리스 국민서사시가 되었으며, 그 후 서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그리스 신화에서 유명한 이야기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략 후의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해상표류의 모험과 귀국에 관한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를 40일간의 사건으로 처리하였다.

 최초의 4권은 주인공이 없는 동안의 오디세우스의 저택의 모습을 그렸다. 그의 아내 페넬로페이아의 구혼자들이 궁전에 모여들어 밤낮으로 연회를 열어 그의 재산을 축내면서 방약무인하게 행동하지만, 아직 나이 어린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는 이를 막을 만한 힘이 없다.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의 친구 멘토르로 변신한 아테네 여신에게 인도되어 아버지의 소식을 알고자 아버지의 전우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를 찾아간다.

 제5권에서 비로소 절해의 고도에 님프인 칼립소에게 붙잡혀 있는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등장한다. 신들의 명령으로 그는 겨우 뗏목을 만들어 섬을 떠나지만 그를 미워하는 해신 포세이돈이 일으키는 폭풍으로 난파,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에 상륙한다. 여기서 그곳의 왕녀에게 구원되어 왕의 궁전에서 환대를 받는다. 연회석에서 그는 자신의 모험을 이야기한다.

 그 후 13~24권은 그의 귀국과 그의 아내에게 구혼한 자들을 응징하는 이야기이다. 아테네 여신의 인도로 거지의 행색으로 변장하고 그의 아들과 그의 충실한 두 명의 옛 부하의 도움을 받아 구혼자들을 처치하고, 부부가 다시 만난 후 여신의 중개로 구혼자의 혈족과도 화해한다. 이 서사시의 줄거리는 <일리아스>보다 복잡하며 기교적이다. 그를 중심으로 한 5~12권은 메르헨의 세계, 13권에서는 돌연 주인공이 현실 세계에 복귀한다.

 

영화 <트로이 Troy> , 2004 제작

 

 

 일반적으로 <일리아스>의 작자 호메로스가 이 시의 작자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나, 이것과 <일리아스> 사이에는 용어ㆍ격률ㆍ조사 등에 다소 차이가 있고, 더욱이 내용인 사회 생활 양식ㆍ종교ㆍ사상면에서는 현저한 차이가 있어 이 설을 부정하는 이른바 분리파가 생겼다.

 이 작품은 예로부터 애송자가 그치지 않았으며, 특히 메르헨 문학2의 효시로 주목되고 있다. 학자들은 다각적인 문화사적·언어사적 연구를 통해 호메로스의 활동 시기를 기원전 8세기 말로 보고 있다. 그리스의 시성 호메로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어 실재 인물인지 서사시인 전체를 일컫는 총칭인지 논란이 있어왔지만, 호메로스가 언급되고 그의 작품이 인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 중엽으로 거슬러올라가며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의 방대한 스케일과 형태와 플롯의 완벽한 통일성, 주제의식 등이 보여주는 공통점들을 고려할 때 호메로스는 실재 인물이며 이 두 서사시도 그의 작품이라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또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대체로 이오니아 방언으로 씌어진 점으로 미루어 호메로스를 소아시아 이오니아3 지방 출신으로 보고 있다.


 


 

 유럽 문학 최고 최대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완전한 예술적 구성으로 문명 발생의 초기부터 인간이 탐구해온 인생의 위엄과 쾌락, 죽음 등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서구의 문학사 전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호메로스의 이름은 시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작품의 전 과정은 표류담, 부부 재회담, 텔레마코스의 이야기의 3부로 나눌 수 있는데, 앞의 2부는 해상 항해자들의 극히 오랜 설화에 기인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 서사시는 <일리아스>보다 줄거리가 복잡하며 더 기교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직선적인 이야기 진행이 아니라 두 가지 이야기를 평행적으로 이끌어가면서 현실과 동화의 세계를 오가는 작가의 기교가 뛰어나다.

 격정에 휩쓸리기 쉬운 순정적인 청년 아킬레우스와 달리 오디세우스는 중년을 넘어서서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기지에 넘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고국 이타카로 돌아온 후 아들 텔레마코스와 두 사람의 충실한 부하만을 데리고 주인에게도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방약무인한 구론자들을 물리치는 장면은 그의 지혜와 용맹을 충분히 보여준다.

 아들 텔레마코스4도 주인공 오디세우스 못지않게 큰 인물로 등장하고 있다. 아버지의 귀국 전까지는 무력한 소년에 불과하던 그는 급속히 성장하여 어머니를 보호하고 아버지와 함께 악인들을 무찌른다. 텔레마코스의 이러한 인간적 성숙은 『오뒷세이아』의 중요한 모티브 중의 하나이다.

 

  1. 유럽문학 최고 최대(最古最大)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작자라고 전해진다. 그의 출생지나 활동에 대해서는 그 연대가 일치하지 않으나, 작품에 구사된 언어나 작품 중의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앞의 두 작품의 성립연대는 BC 800∼BC 750년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의 성장지로 추측되는 도시가 7군데나 되나 그 중 소아시아의 스미르나(현재 이즈미르)와 키오스섬이 가장 유력하다. 그는 이 지방을 중심으로 서사시인으로서 활동한 것으로 보이며, 이오스섬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앞의 2대 서사시 외에 《호메로스 찬가》라는 일군(一群)의 찬가집(讚歌集)이나 익살스러운 풍자시 《마르기테스》와 《와서회전(蛙鼠會戰)》 등 몇 가지 서사시가 그의 작품이라고 하나 이것도 불명확하다. 또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동일인의 작품이냐의 문제로 오래 전부터 논쟁이 많았다. 18세기 후반 F.A.월프가 《호메로스 서설(序說)》(1795)을 발표한 이래, 그의 존재 그 자체와 작품의 성립과정, 2대 서사시의 작자의 진부(眞否) 등 여러 가지 시비가 있었으나 어떻든 두 서사시는 한 작가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일리아스》는 1만 5693행(行), 《오디세이아》는 1만 2110행의 장편 서사시이며, 각각 24권으로 되어 있다. 두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의 국민적 서사시로, 그 후의 문학 ·교육 ·사고(思考)에 큰 영향을 끼쳤고, 로마제국과 그 후 서사시의 규범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메로스 [Homeros] (두산백과) [본문으로]
  2. 독일 낭만주의 시대에 탄생한 판타지와 로맨스 명작들. '민담의 성격을 지닌 기묘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21편은 작품의 독자대상에 따라 '민담', '기담', '동화', 혹은 독일어로 '메르헨'이라 불린다. 낭만주의 이전부터 존재해 온 메르헨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를 내재하며, 낭만주의에 이르러 '다의성'과 '마법적 관념론'이라는 특징으로 확산되었다. [본문으로]
  3.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 지방의 중부에 해당하는 고대 지방. 북으로 아이올리스, 남으로 카리아와 접경하고 있었으며 인접한 섬들을 포함했다. [본문으로]
  4. 그리스 신화에서 그리스 영웅 오디세우스와 아내 페넬로페의 아들.성인이 되자 방랑하는 아버지를 찾아 필로스와 스파르타에 갔다. 고향에 돌아간 그는 오디세우스가 자기보다 먼저 집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되며,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페넬로페의 주위에 모여든 구혼자들을 살해했다. 텔레마코스는 오디세우스가 죽은 후 키르케(또는 칼립소)와 결혼했다고 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