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 시집 감상

정채봉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by 언덕에서 2014. 4. 21.

 

 

 

정채봉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아동문학가 정채봉(丁埰琫.1946∼2001)은  전남 순천 출생으로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946년 11월 3일 전라남도 순천(順天)에서 태어나, 1975년 동국대학교 국어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1973년 [동아일보]에 동화 <꽃다발>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후, 월간 [샘터] 편집부 기자ㆍ기획실장ㆍ편집부장ㆍ출판부장ㆍ주간ㆍ편집이사, 초등학교 교과서 집필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계간 [문학아카데미] 편집위원,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겸임 교수 등을 지냈다.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한국의 성인동화 장르를 개척한 작가로, 1983년 동화 <물에서 나온 새>를 발표한 이래, 11권의 동화와 7권의 생각하는 동화, 11권의 에세이집과 시집을 발표하였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 발표한 <물에서 나온 새> <오세암>(1984), <생각하는 동화>(1991) 시리즈 7권 등은 모두 30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작가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고, 또 방정환(方定煥)ㆍ윤석중(尹石重)ㆍ마해송(馬海松)ㆍ이원수(李元壽) 이후 침체된 한국의 아동문학을 부흥 발전시키는 데도 이바지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나의 기도

아직도 태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바다를 내게 허락하소서
짙푸른 순수가 얼굴인 바다의
단순성을 본받게 하시고
파도의 노래밖에는 들어 있는 것이 없는
바다의 가슴을 닮게 하소서

홍수가 들어도 넘치지 않는 겸손과
가뭄이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알게 하시고
항시 움직임으로 썩지 않는 생명
또한 배우게 하소서

 

 

 

 1998년 11월 간암이 발병한 뒤에도 창작 활동을 계속하다, 2001년 1월 9일 사망하였다. 주요 작품에는 동화 <돌 구름 솔 바람> <입 속에서 나온 동백꽃 세 송이> <눈동자 속으로 흐르는 강물>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 <초승달과 밤배> <느낌표를 찾아서> 등이 있으며, <지혜의 작은 방> 시리즈 3권, <모래알 한가운데> <그대 뒷모습> 등의 에세이집과 시집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등이 있다. 

 

 <물에서 나온 새>로 대한민국문학상(아동문학부문.1983), 월간 [샘터]로 한국잡지언론상(편집부문.1984), 동화 <오세암>으로 제14회 새싹문학상(동화.1986), <꽃그늘 환한 물>로 한국불교아동문학상(1989), <생각하는 동화>로 동국문학상(1991), <바람과 풀꽃>으로 세종아동문학상(1992),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로 제33회 소천아동문학상(2000) 등 수상했다.

 

 

 

 

 

 

 

노란 손수건

 

 

병실마다 밝혀 있는 불빛을 본다
환자들이 완쾌되어 다 나가면
저 병실의 불들은 꺼야 하겠지

감옥에 죄수들이 없게 되면
하얀 손수건을 건다던가
병실에 환자들이 없게 되면
하늘색의 파란 손수건을 걸까

아니,
내 가슴속 미움과 번뇌가
다 나가서 텅 비게 되면
노란 손수건을 올릴까 보다

 


 

 

 이 시집에는 간암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정채봉 시인이 병실과 퇴원 후 현재 거처하고 있는 북한산 자락에서 쓴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시들은 그러나 고통스런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풀꽃 같은 사랑과 물방울 같은 맑은 영혼이 스며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더더욱 가슴을 저리게 한다.

 

 

 

물새가 되리

 

 

 내가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물새가 되겠다

흙한테는 미안하지만
물에서 하루치를 벌어
하루를 사는
단순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오늘의 작은 만족에 훨훨 날며
비록
겨울날 맨발로 얼음 위를 걸으며
부리로 얼음을 쬐지만
그 누구를 원망도 시기도 하지 않는
하얀 물새가 되고 싶다

그리움이야 멀리 바라보며 피우는 꽃
강 건너 흙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랑하는 나는
죽어서 다음 몸을 받는다면
기꺼이
물새가 되겠다

 

 

 

 

 

 정채봉 작가가 나이 50이 넘어 쓴 이번 첫 시집에는 쫓아다녔던 지난날의 천진한 소년의 모습과 더불어 그 나이가 살아온 삶의 지혜와 '어린 왕자'와도 같은 교훈이 담겨 있어 한 편의 동화보다도 더욱 아름답고 감동적인 울림들을 보여준다. 
 서시 격인 이 시집의 첫 시 '슬픈 지도'에서부터 마지막 시인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까지 총 67편의 그의 시들은 다른 시집과 달리 각 부로 나뉘어지지 않고 사랑에서부터 삶과 죽음과 인생이 서로의 연결고리를 맺으며 시 전편에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