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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함민복 시집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듭니다』

by 언덕에서 2014. 4. 7.

 

 

 

 

 

함민복 시집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듭니다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저만치 동떨어져 살아가는 전업 시인이 있다. 개인의 소외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특유의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시로 호평 받은 그는, 인간미와 진솔함이 살아 있는 에세이로도 널리 사랑 받고 있다.

 시인 함민복은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해바라기


그 작던 씨앗의 그림자 땅속으로 들어가

저리 길다란 그림자를 캐내고 있다


기억이여


태양빛으로 빚은 그림자의 씨앗

머리에 촘촘히 박고 서 있는

 

- 시집<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시인 생각.2013)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을 펴냈다. 그의 시집 『우울氏의 一日』에서는 의사소통 부재의 현실에서 「잡념」 의 밀폐된 공간 속에 은거하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993년 발표한 『자본주의의 약속』에서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불러 본다


물가 버드나무는 봄이 좋아

좋아도 여간 좋은 게 아닌지


털옷 입혀

꽃을 내밀었네


달처럼 잠이 오지 않네

새순처럼 잠이 오지 않네


생기 돋은 멧새 소리에

아비가 되고 싶어져


버들강아지야

버들강아지야

 

- 시집<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시인 생각.2013) 



 서울 달동네와 친구 방을 전전하며 떠돌다 1996년, 우연히 놀러 왔던 강화도 마니산이 너무 좋아 보증금 없이 월세 10 만원 짜리 폐가를 빌려 둥지를 틀었다는 그는 "방 두 개에 거실도 있고 텃밭도 있으니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그는 없는 게 많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다. 한 기자가 "가난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스스한 머리칼에 구부정한 어깨를 가진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다는 게 결국은 부족하다는 거고, 부족하다는 건 뭔가 원한다는 건데, 난 사실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혼자 사니까 별 필요한 것도 없고. 이 집도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르지만 빈집이 수두룩한데 뭐. 자본주의적 삶이란 돈만큼 확장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했지만 굳이, 확장 안 시켜도 된다고 생각해요. 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동아일보 허문명 기자 기사 인용)



가난을 추억함


이 시장바닥이 끝나는 저편에

아버지 사진 한 장 걸어놓고

제사라도 한 번 올리고 싶구랴

 

- 시집<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시인 생각.2013) 

 

 


 함민복은 2005년 10년 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출간하여 제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집은 그의 강화도 생활의 온전한 시적 보고서인 셈이다. 함민복 시인은 이제 강화도 동막리 사람들과 한통속이다. 강화도 사람이 되어 지내는 동안 함민복의 시는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의 힘을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시인은 지금도 조용히 마음의 길을 닦고 있다.

 

가을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시집<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시인 생각.2013) 

 

 

 

 

 

 

사진 출처 : 여성동아

 

시집『미안한 마음』은 산골짝 출신인 함민복 시인이 10여 년 세월 강화도 갯바람을 맞으며 강화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며 보고 느낀 바를 표제처럼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담은 이야기다. 장가를 갔으면 싶은 노모의 모정을 읽을 수 있는 글, 때론 한 잔 술을 거절하고 파스 한 장 척 붙이고 ‘이제 안 아프다’ 위안하며 쓴 글 묶음이다. 그러하기에 함민복 시인의 문학적 모태가 되고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봄바람 불어오면


금호동 달맞이봉

개나리꽃이나 보러 갈거나

온통 노랗고 혼자 노랗지 못하다가

간이정자에서

달빛에 잠까지 적시다가

새벽

한강에 피어나는 안개나 볼거나

아픈 몸으로 이불 끌어당기며

나는 괜찮다 하시는

어머니 같은 안개 낀 강이나 바라다 볼거나

내친김에 강을 거슬러 올라가

달래강으로 어머니 만나러 갈거나

어머니 잔소리처럼 부는 봄바람에

움트는 새순 피어나는 꽃들에

취해

여린 꽃잎이 새순이 되어 볼거나

 

- 시집<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듭니다>(시인 생각.2013)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는 포털 사이트 Daum에 5개월간 연재한 글에다 틈틈이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었다. 과거를 추억하나 그에 얽매이지 않고, 안빈낙도하는 듯하나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날선 눈초리를 잃지 않는 글들은 온라인에서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 밖에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가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