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시선집 『겨울날』
시인 김광섭(1905 ~ 1977)의 호 이산(怡山)이며 함북 경성 출생이다. 1928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1933년 모교인 중동중학에서 10여 년 간 재직 중 강의 시간에 창씨개명을 반대하는 민족 사상을 고취했다 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8개월 간 옥고를 치렀다.
동경(憧憬)
온갖 사화(詞華)들이
무언(無言)의 고아(孤兒)가 되어
꿈이 되고 슬픔이 되다.
무엇이 나를 불러서
바람에 따라가는 길
별조차 떨어진 밤
무거운 꿈 같은 어둠 속에
하나의 뚜렷한 형상(形象)이
나의 만상(萬象)에 깃들이다.
- [조광](1937. 6) -
문학 활동은 1927년 창간한 순문학 동인지 [해외문학]과 31년 창간한 [문예월간] 동인으로 시작하였고, 1933년 [삼천리]에 <현대영길리시단>을 번역 발표했으며, 같은 해에 <개 있는 풍경>을 [신동아]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1935년에 발간된 [시원(詩苑)]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 무렵 <고독><푸른 하늘의 전락><고민의 풍토> 등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적 성격의 시편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그 후의 작품에는 식민지시대의 지성이 겪는 고뇌와 민족의식이 짙게 나타나 있다. 처음에는 ‘해외문학파’의 일원으로 번역을 주로 하다가 시작으로 전환하였다. 한때는 [극예술연구회]의 신극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일제 말에는 2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마음
나의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돌을 던지는 사람,
고기를 낚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이리하여 이 물가 외로운 밤이면,
별은 고요히 물 위에 뜨고
숲은 말없이 물결을 재우느니.
행여, 백조가 오는 날,
이 물가 어지러울까
나는 밤마다 꿈을 덮노라.
- [문장] 5호(1939. 6) -
8ㆍ15광복 이후 상당기간 문화계ㆍ관계ㆍ언론계 등에서 활동하였다. 1945년에 [중앙문화협회]를, 1946년에 [조선문필가협회]를 창립하였으며, 같은 해에 민중일보 편집국장, 공보처장, 1957년에는 [자유문학사]를 설립하여 문예지 [자유문학]을 발간하였고, 1959년 예술원회원에 선임되었으며 경희대학 교수, 대통령 공보비서,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위원장, 세계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1965년 고혈압으로 쓰러진 이후 강인한 생의 애착을 노래한 <생의 감각>은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제4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문학적 업적의 결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 문화상(1958), 5ㆍ16 문예상(1965), 문공부 예술문화 대상(1970), 70년에 국민훈장모란장(1970), 대한민국 건국에 이바지한 공로로 건국포장(1977) 등 수상했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삼하리 선산(先山)에 그의 묘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직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 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월간문학](1968. 11)-
김광섭은 와세다 대학 2학년 때 조선인 동창회가 발행하는 [알(卵)]지에 처음으로 시 <모기장>을 발표했다. 이 시가 2년 선배였던 정인섭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는 이헌구의 말을 듣고 시작에 전념하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해외문학연구회〉 멤버들과 친교를 갖게 된다.
1929년 24세 때, 영문과로 진학하면서 영국 낭만파 시인들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러던 것이 해를 거듭하면서 리얼리즘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주의 문학관으로 변하게 되었다. 1932년 졸업 후 모교인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취임하여 학생들에게 민족혼과 항일 정신을 고취시켰다.
그러다가 1941년 2월 21일 학생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시켰다는 죄명으로 일경에 구속되었고 그에 따라 1944년 9월까지 만 3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때 그는 옥중에서 일기를 썼는데, 그것을 정리, 발표한 것이 나중에 [자유문학]에 실은 <나의 옥중일기>(1961년 49호, 1962년 61호)와 그 뒤에 발간한 <나의 옥중기>(다리.1972년 4~5월 연재)이다.
생의 감각
여명(黎明)에서 종이 울린다.
새벽 별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같이 산다.
닭이 운다, 개가 짖는다.
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다.
오는 사람이 내게로 오고
가는 사람이 다 내게서 간다.
아픔에 하늘이 무너졌다.
깨진 하늘이 아물 때에도
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
푸른 빛은 장마에
넘쳐흐르는 흐린 강물 위에 떠서 황야(荒野)에 갔다.
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섰다.
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
생(生)의 감각(感覺)을 흔들어 주었다.
- [현대문학] 145호(1967년 1월호)
1961년 5월 21일 자유문협이 자진 해체를 결의, 그 유산뿐만 아니라 [자유문학]지 경영권까지 예총으로 넘기자, 잡지를 살리고자 하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했으나 폐간을 막지 못하자 결국 고혈압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 뒤 그는 자택에서 시작 활동만 했는데, 병상에서 쓴 시들을 모아 1969년 11월 그의 대표시집이 된 <성북동 비둘기>를 간행했다.
* 시집: <동경(憧憬)>(첫시집.대동인쇄소.1938) <마음>(제2시집.중앙문화협회.1949) <해바라기>(제3시집.자유문협.1957) <성북동 비둘기>(제4시집.범우사.1969) <반응>(제5시집.문예출판.1971) <김광섭시전집>(일지사.1974) <동경>(광일문화사.1974) <겨울날>(창비.1975)
* 역시집: <서정시집>(보리스ㆍ파스테르나크 작.1958)
* 수필집: <일관성에 대하여>(세운문화사.1975)
* 문집: <나의 옥중기>(창작과 비평사.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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