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선집 『사랑의 무기』
김남주(金南柱.1947.10.16∼1994.2.13) 시인은 전라남도 해남군 봉학리에서 태어났다.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제일고등학교 2학년 때 획일적인 입시위주 교육에 반발하여 자퇴하였다. 1969년 검정고시로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뒤 3선 개헌 반대 등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1972년 유신헌법이 선포되자 이강(李綱) 등과 전국 최초로 반(反)유신 지하신문인 [함성]을 제작하였으며, 이듬해 제호를 [고발]로 바꾸고 전국에 배포하려다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되고 대학에서 제적당하였다.
조국은 하나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례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 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 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 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 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 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 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중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미래사,1991)-
8개월 복역 후 고향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창작과 비평] 1974년 여름호에 <잿더미>와 <진혼가> 등 7편의 시를 발표, 문단에 데뷔하였다. 이듬해 광주에서 사회과학 전문서점 카프카를 열었으나 경영난으로 1년 만에 문을 닫고, 1977년 해남에서 한국기독교농민회의 모체가 된 해남농민회를 결성하였다. 같은 해 광주에서 황석영 등과 민중문화연구소를 열고 활동하다 사상성 문제로 1978년 서울로 피신하여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에 가입하였다. 1979년 '남민전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1984년 수감 중 첫 시집 <진혼가>가 출간되었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무엇하랴
콧잔등 타고 내려
입술 위에 고인 눈물 위에
그대 이름 적신들
타고 내려 가슴에서 애를 태우고
발등 위에 떨어진 이슬 위에
그대 이름 새긴들
무엇하랴
벽은 이리 두텁고 나는 갇혀 있는 것을
무엇하랴
철창은 이리 매정하고 나는 묶여 있는 것을
오 새여 하늘의 바람이여
나래 펴 노래에 살고
내래 접어 황혼에 깃드는 새여 바람이여
나에게 다오 노래의 날개를
나에게 다오 황혼의 보금자리를
만인의 입술 위에서 노래가 되기도 하고
대지의 나무 위에서 비둘기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압제자가 묶어 놓은 세상의 모든 매듭을 풀어
인간의 팔에서 날개가 되고 바람이 되기도 하는
새여 바람이여 자유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시선집 <사랑의 무기> (창작과 비평사 1989 )
1988년 12월 형 집행정지로 9년 3개월 만에 석방되었으며, 이듬해 남민전 동지 박광숙과 결혼하였다. 199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소장이 되었으나 1992년 건강상의 문제로 사퇴하였고, 1994년 췌장암으로 사망하여 망월동의 5ㆍ18묘역에 안장되었다.
스스로 '시인'이라기보다는 '전사'라고 칭했듯이 그의 시는 강렬함과 전투적인 이미지들이 주조를 이룬다. 유장하면서도 강렬한 호흡으로 반외세와 분단극복, 광주민주화운동, 노동문제 등 현실의 모순을 질타하고 참다운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신동엽창작기금(1991)과 단재문학상(1992), 윤상원문학상(1993), 민족예술상(1994) 수상했다.
어머님께
일제 30여 년 동안
낫 놓고 ㄱ자도 모르셨던 어머니
미제 40여 년 동안
호미쥐고 ?표도 모르시는 어머니
일자무식 한평생으로
자식사랑밖에는 모르시는 어머니
지금 나처럼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구속자라 부르지 마세요
양심수라 부르지도 마세요
정치범이다 뭐다 시국사범이다 뭐다 그런 이름으로도 부르지 마세요
그냥 애국자라 하세요
일제 30여 년 동안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징용통지서밖에 없으셨던 어머니
미제 40여 년 동안
나라로부터 받아본 것이라고는 세금통지서밖에 없으신 어머니
일자무식 한평생으로
글 한 줄 쓰신 적 없고 편지 한 줄 읽으신 적 없어도
자식사랑은 한으로 쌓여 가슴이 막히신 어머니
지금 나 같은 사람을
감옥에 처넣고 있는 사람들을
대통령이라 부르지 마세요
독재자라 부르지도 마세요
보수다 뭐다 반동이다 뭐다 그런 이름으로도 부르지 마세요
그냥 매국노라 하세요
달리 부르는 놈이 있으면 그 놈 주둥이를 호미로 찍어 주세요
달리 쓰는 놈이 있으면 그 놈 손모가지를 낫으로 잘라 주세요
지금 이 나라에는
보수와 진보가 있는 게 아니어요
우익과 좌익이 있는 게 아니어요
매국노와 애국자가 있을 뿐이어요
그 중간은 없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어머니.
- 시선집 <사랑의 무기> (창작과 비평사 1989 )
김남주의 초기 시들은 그 시들의 바탕이 되는 개인사적 경험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진혼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잿더미>, <눈을 모아 창살에 뿌려도>, <한 입의 아우성으로> 등은 그가 유신 직후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만든 혐의로 체포되어 혹독한 수사를 받은 끝에 10여 개월 옥고를 치른 경험과 관련되어 있고, <아우를 위하여>, <추곡(秋穀>, <우습지 않느냐>, <달도 부끄러워>, <그들은 누구와 함께 자고 있는가>, <노래> 등은 시인으로 문단에 등장한 뒤 도시에서의 학업을 팽개치고 농부들과 함께 일도 하고 시도 쓸 작정으로 고향에 내려가 생활한 경험이 배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시에서는 서정적인 어조를 살려나가면서도 현실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신념을 쌓아 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시인 자신의 의식의 성장과정과도 대응하는 것이며 그의 시 세계의 깊이가 더해 가는 과정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서정성보다 정치성이 우선하여 읽혀지고 평가되었으나, 건강한 민중의 정서와 치열한 지식인의 고뇌가 함께 묻어나고 있다.
그는 안락의자를 시의 무덤이라 말하고 투쟁을 시의 요람이라 부름. 시의 주된 원천은 농촌체험과 감옥체험이며 적에게는 가열한 증오, 민중에게는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창살에 햇살이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고와지는 햇살
내가 볼을 내밀면
내 손에 와서 다스워지는 햇살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자꾸자꾸 자라나
다람쥐 꼬리만큼은 자라나
내 목에 와서 감기면
누이가 짜준 목도리가 되고
내 입술에 와서 닿으면
그녀와 주고 받고는 했던
옛 추억의 사랑이 되기도 한다
- 시선집 <사랑의 무기> (창작과 비평사 1989 )
【묘】민족시인 고 김남주의 묘(광주 망월동 5ㆍ18묘역)- 묘비 내용 “온 몸을 불 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
【시비(詩碑)】2000년 5월 광주 중외공원에 <노래>가 새겨진 시비(詩碑) 제막.
【시집】<진혼가>(1984.첫 시집) <나의 칼 나의 피>(1987) <농부의 밤>(1987) *<조국은 하나다>(1988) <사상의 거처>(1990)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1995)
【시선집】<사랑의 무기>(1989) <솔직히 말하자>(1989) <학살>(1990)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1991) <사상의 거처>(1991)
【산문집】<시와 혁명>(1991)
【수필집】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번역서】<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프란츠 파농,1978)
【번역시집】<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하이네․브레이트․네루다 혁명시집) <아타 트롤>(1991.하이네)
【옥중서한집】<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1989)
【옥중시선집】<저 창살에 햇살이>(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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