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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군중과 독재

by 언덕에서 2014. 2. 19.

 

 

 

 

군중과 독재

 

 

 

 

 

무엇 때문이었건 일찍이 자신이 속했던 특권적인 신분에서 도태된 엘리트가 그 사회에 대응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자신을 밀어낸 체제 전반에 대해 적극적인 반역을 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귀본능에 자신의 모든 재능과 열정을 바치는 것이며, 나머지는 자학에 시달리다 서둘러 하위 계층으로 편입되어 가는 것이다.

 

 법과 질서에 대한 죄의식이나 선천적인 나약함 탓도 있겠지만, 군중이란 원래가 이상한 정열에 휘말리면 성난 파도처럼 휩쓸어 갈 수도 있으나, 일단 각자의 얄팍한 타산과 실리(實利)가 그 정열을 제어하게 되면 가을 벌판의 가랑잎처럼 흩어져 가고 마는 것이다.

 

 우리들은 어떠한 형태로든 인위적으로 조직되어선 안 된다. 아무리 훌륭한 대의와 현명한 원리로 이루어지더라도 조직은 필경 그 조직을 꾸민 자 또는 원하는 자의 이익에 봉사하게 되어 있다. 또한 조직은 반드시 의사(意思)의 위임을 요구하며, 결정권의 집중을 가져온다. 그리고 거기서 한 수장(守長)이 태어나며, 처음 그는 동배(同輩) 중의 으뜸으로 출발할 것이지만 이윽고는 도전할 수 없는 절대자로 우리들 위에 군림하게 된다.

 

 

   - 이문열 저 <사색> p171 ~  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