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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순수한 개인이 부재한 잔인한 시대

by 언덕에서 2014. 2. 12.

 

 

순수한 개인이 부재한 잔인한 시대

 

 

 

 

 

 

 

 

적을 볼 수 없다는 것 - 그 때문에 현대전의 잔학상이 있다.

 항병(降兵)을 도살한 항우는 그로 인해 천하를 잃었고 포로를 학대한 나치나 일제의 장군들은 전범(戰犯)으로 처벌되었다. 그러나 포탄이나 미사일의 발사를 명한 현대전의 장군들에게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전자는 적을 보았는데 비해 후자는 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날아간 포탄이나 미사일은 분명 항거의 의사나 능력을 묻지 않고 대량으로 적을 도살하였는데도.


 그러나 이 시대에는 이미 순수한 개인이란 존재할 수 없다. 어디를 가든 우리는 집단에 소속하게 되어 있고, 그 집단은 나름대로의 위계와 규율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취직을 한다는 것은 군대의 대대장이나 사단장이 전무나 사장으로 바뀌는 정도다. 명칭은 감봉이나 징계 따위로 다르지만, 그곳에도 빳다와 기합 같은 게 있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우리가 군대에서 체험하는 것보다 몇 배나 더 잔인하고 철저하다.

 

 

  - 이문열 저 <사색>  p 174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