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단편소설 『시골 의사(Ein Landarzt)』
체코 출신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의 단편소설로 1917년 집필되었고, 1918년 [신문학 연감]에 발표되었다. 한 밤중에 급한 환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한 한 의사가 우여곡절 끝에 환자의 집을 찾아가지만 막상 아프다는 환자는 멀쩡하고 오히려 의사 자신이 사고로 병상에 눕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는 카프카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나는데 주인공인 시골의사는 그가 좋아했던 외삼촌 지크프리트 뢰비와 비슷하다. 몽환적이며 비현실적인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특징인 이 소설은 의사와 환자의 공간이 대립하며 이 영역 사이에 비밀스러운 관계가 존재한다. 카프카는 이것을 통하여 자신의 중심적인 갈등을 형상화했다.
이 작품은 카프카의 현실적 삶과 이상적 삶 사이에서의 방황을 표현한 소설이다. 작중 등장인물인 시골의사는 곧 카프카이고, 원래의 집은 현실에서의 삶, 환자의 집은 작가로서의 삶이다. 작가는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서도, 환자의 집에서도 뭔가를 치료하거나 성취해내기는커녕 잃어버리고는 아무 곳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밤. 하얀 눈이 가득 내리고 있는 마을에서 시골의사는 부름을 받는다. 십여 킬로 떨어진 곳의 위독한 환자를 보러 가야 한다. 하지만 의사는 거기까지 타고 갈 말이 없다. 말은 추운 날씨와 과로로 인해 어젯밤에 죽어버렸다. 하녀 로자가 말을 빌리러 마을에 가보지만 그 누구도 빌려 주지 않는다. 의사는 이제 돼지우리로 가본다. 수년간 사용하지 않았던 돼지우리에서 만난 한 사내는 의사에게 네발로 기어와 말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의사와 하녀 로자는 자신들의 집에 좋은 말이 있었다고 좋아하고, 성난 김을 내뿜으며 갈기가 곧은 두 마리의 검은 말들이 돼지우리에서 걸어 나온다. 사내의 음흉한 미소가 로자에게 보내진다. 언급되지 않은 거래가 이 과정에 있음을 인지하지만 시골의사에겐 자신을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순식간에 도착한 집에서 시골 의사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게 된다.
“의사 선생님 저를 죽게 내버려 두세요.”
의사는 환자를 진찰하지만 꾀병이라고 판단, 분노를 느끼고 돌아가려 한다. 그러자 환자 가족들이 갈 수 없다고 막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환자를 보기로 한다. 그런데 환자의 옆구리엔 아름다운 꽃과 같은 상처가 있는 게 아닌가! 작은 벌레가 사각거리며 환부를 덮고 있다. 이 청년은 죽을 것이라고 그는 판단한다.
환자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의사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옷이 벗겨져 알몸이 된 의사는 환자의 옆에 뉘이게 되고 사람들은 환자의 방을 나간다. 환자는 옆에 뉘이게 된 의사에게 독설을 뿜고 자신이 이런 상처를 지니게 된 것을 한탄하지만 의사는 그런 환자에게 거짓 희망을 준다. 헛된 희망을 품은 환자는 이제 눈을 감고 입을 다문다. 그때, 의사는 두 마리의 말이 내려다보고 있는 창문으로 의복을 던져 탈출을 시도한다. 알몸으로 창문을 통해 눈이 내리고 있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간다.
의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밤낮없이 찾아오던 환자의 내방도 끊겨버렸다. 후임자가 그것을 가로채 간 것이다. 그리고 의사의 집엔 그 마부가 위세를 부리고 로자를 잡아두고 있을 것이다. 의사는 두 마리의 말을 몰며 까맣고 하얀 겨울 밤, 눈이 수북한 그 길을 미친 듯이 내달린다. 그런데 아직도 의사는 알몸이다. 마차 뒤에 걸려 있는 모피 외투에 손이 미치지 않는 것이다. 환자들 역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서 조금도 손을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의사는 속임을 당한 것이다. 이 겨울 밤. 그 미친 벨 소리에 한 번 따르면 그 누구라도 시골 의사 같이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절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시골의사'를 통해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또렷하게 우리 눈앞에 펼쳐 놓는다. 행운은 곧 불행이고 얻음은 곧 빼앗김이다. 의사는 환자를 죽음에서 구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마차를 몰지만 말들은 제멋대로 달린다. 살아 있지만 그 무엇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에다 시골의사가 헤매고 있는 곳은 눈보라 치는 혹한의 벌판이다. 죽음을 중심에 두고 삶을 조명하는 카프카식 판타지는 현대보다 더 현대적이다.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은 카프카 문학의 의의ㆍ문제성은, 무엇보다도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 인간 존재의 불안과 무근저성을 날카롭게 통찰하여,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한 점이다.
전위문학을 주도하던 출판업자들의 요청으로 카프카는 마지못해 생전에 쓴 글 가운데 일부를 출판했다. 여기에 속하는 것이 <어느 투쟁의 묘사>(1936)에 수록된 2편의 소설(1909)과 단편 산문집 <고찰>(1913), 성숙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1912년에 씌어진 장편 <심판><변신>(1915) <유형지에서>(1919)와 단편집 「시골의사」(1919)이다.
카프카 자신은 글쓰기와 그것이 뜻하는 창작활동을 '구제'의 수단으로, '기도의 형식'으로 생각했고, 이를 통해 세상과 화해할 수 있거나 세상에 대한 부정적 경험을 넘어설 수 있으리라 여겼다. 투명하게 묘사되었지만 불가해하게 어두운 그의 작품들은 카프카 자신의 개인적 노력이 허사였음을 폭로한다.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치는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20세기 세상 속의 불안과 소외를 폭넓게 암시하는 매혹적인 상징주의를 이룩했다.
♣
눈보라가 몰아치는 밤, 시골의사인 ‘나’는 의사를 찾는 비상 종소리에 급히 집을 나선다. 마차를 끌 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데, 웬 사내가 나타나 말 두 필과 하녀 로자를 두고 흥정한다. 로자의 간청을 뿌리치고 겨우 환자 집에 도착하지만 아프다던 소년은 멀쩡하고, ‘나’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이 작품은 무력한 인물들과 그들에게 닥친 기이한 사건들을 통해 현대 사회르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불안과 소외를 매혹적인 상징과 암시로 표현해내고 있다.
카프카의 삶도 그러하다. 그가 죽을 무렵 카프카가 사귄 문학인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에게 출판되지 않은 원고는 전부 없애고 이미 인쇄되어 나온 작품은 재판 발행을 중지해달라고 유언했는데, 브로트가 그의 유언대로 했더라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은 살아남지 않았을 것이다. 브로트는 유언과는 반대의 길을 밟았고, 그로 인해 카프카의 이름과 작품이 사후에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명성은 처음 히틀러 점령 시 프랑스와 영어 사용국에서 널리 알려졌다. 카프카의 세 누이동생이 강제수용소에 유배되어 살해된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재발견되어 독일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이후였고, 1960년대에는 공산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인·문학계·정치계까지 영향력이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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