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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프란츠 카프카 단편소설 『유형지에서(In der Strafkolonie)』

by 언덕에서 2022. 9. 23.

 

프란츠 카프카 단편소설 『유형지에서(In der Strafkolonie)』 

 

 

체코슬라바키아 출신 독일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1883∼1924)의 단편소설로 1919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카프카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 출생하여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폐결핵으로 41세의 생애를 마쳤다. 평범한 지방 보험국 직원으로 근무하였으며, 카프카문학의 독자적인 세계도, 그가 죽기 직전 2개월간의 요양기간과 짧은 국외 여행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이한 환경의 소산이다. 카프카는 독일계 고등학교를 거쳐 프라하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다.

유형이라는 말은 큰 죄를 지은 죄인을 먼 곳이나 섬으로 쫓아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유형지는 죄인이 가는 곳이라 그로 하여금 여러 고통을 느끼게 하여 죗값을 치르게 만드는 환경이 기본 조건이다. 마치 네 명 배우가 등장하는 한 편 연극을 보는 느낌인 이 소설은 장교가 전임 사령관이 만든 처형기계에 대하여 연구자에게 설명하는 내용과 그것을 실제로 죄수 처형에 이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장교는 전임사령관이 만들고 지금은 자신이 운영하는 처형기계에 무모하리만큼 믿음을 가지고 있다.

 죄인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이곳에서, 12시간 작업을 통해 죄인의 생사에 죄명을 새기는 일도 모자라 결국에는 죄인을 죽여버리는 처형기계는 비인간적인 면의 극치를 이룬다. 이 처형기계는 또한 유형지의 죄인 처리 과정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혼자서 해결하는 장교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러한 힘이라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을 비인간화시키고 억압하는 권력이다. 왜곡된 권력은 언제든지 비판을 받고 위험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죄수들이 끌려가는 어느 유형지에서 한 장교가 죄수를 단죄하는 기계를 관리한다. 죄수를 기계에 눕히면 기계에 달린 바늘이 죄수의 몸에 그가 저지른 죄목을 새겨 넣는 식이다. 죄수는 피를 흘리며 죽어가다 결국 구덩이에 버려진다. 죄수에게는 기계 자체의 움직임이 재판이자 형벌이랄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신임 사령관의 부탁을 받은 연구자가 기계를 살피러 온다. 전임 사령관과 함께 그 기계를 도안하고 관리해 온 장교는 치욕을 느낀다. 합리적이기 이를 데 없다고 믿었던 자신의 기계가 비인간적인 도구로 치부되어 제3자의 검증을 받기 때문이다.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그는 연구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발적으로 기계 위에 눕는다. 그리고 기계가 자신의 몸에 새길 문장을 미리 보여 주는데, 그 문장은 바로 공정하라!’이다. 기계는 놀랍게도 장교의 몸에 공정하라!’라는 문장을 새겨 넣는다.

 장교는 자신이 공정했음을 주장하기 위해 공정하라!’라는 문구를 몸에 새기고 죽어간다.

 

 

 신임사령관이 이성적 사고를 지향하는 연구자를 그 곳에서 벌어지는 재판에 불러들인 이유를 알아챈 장교는 연구자에게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로 힘을 실어 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비인간적인 것을 지양하는 연구자에게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연구자가 자신의 부탁을 거절하자 장교는 자신이 그렇게 믿고 찬양하던 처형기계에 죄수 대신 자신이 올라 대신 단죄 받으려 한다. 하지만 처형 기계는 자신의 운명이 다한 것을 알기라도 한 듯이 오작동을 일으키며 단시간에 장교를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이것은 그의 믿음이 얼마나 부당하였으며 부당한 권력의 결말은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기계가 작동되는 모습은 섬뜩하기 이를 데 없지만기계를 지키려 하는 장교의 모습은 더 섬뜩하다장교는 기계에 의해 처형당해지는 죄수의 고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오히려 무조건 지켜야 할 것으로만 생각한다주어진 임무에 전혀 저항하지 않을 뿐아니라 명령을 진리처럼 따를 뿐이다 

 

 

  정작 죄수에게 치욕을 심어주는 기계는 그저 합의된 대로 실행할 뿐, 치욕이 무엇인지 모른다. 장교가 연구자에게 그 치욕을 아십니까?”라고 물을 때조차 기계는 말이 없다. 장교가 말한 치욕이란 자신이 기계와 함께 누렸던 과거의 영광이 이젠 거꾸로 치욕이 되었다는 것, 즉 스스로 나머지가 되고 빈자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정하라!’라는 문장은 죄목일까 아니면 자기주장일까? 자기주장이라면 장교의 것인가 아니면 기계의 것일까? 합의된 대로라면, 그리고 장교 스스로 연구자에게 줄곧 강조해온 대로 기계 장치에 한 치의 결함도 없으며 신임사령관과 그 무리들이 비인간적이라는 구실로 자신을 모함하는 것이라면, 기계는 장교를 뱉어 내어야만 한다. 장교가 기계를 이용해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려 했다 해도 기계는 그런 식의 사용을 거부해야 마땅하다. 합의를 거스른 것이니까.

 그러나 기계는 마치 스스로의 죄목을 새기듯이 작동하며 자신의 치욕을 모른다. '기계적'이라는 말은 반성과 회의를 모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기를 갖지 않는다는 말이므로 공정하라라는 문장과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하라라는 문장의 차이를 기계는 알지 못한다합의의 세계는 바로 이런 기계의 세계일 듯하다합의된 내용보다 형식을 그 생명력으로 삼음으로써 참여자들을 나머지로 만드는 세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