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 돌아가자
귀향열차(歸鄕列車)에서
병영兵營을 뒤로 하고
귀향열차歸鄕列車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 보면
경사傾斜 굽이굽이 마다
끝없이 이어진 포도밭과 구릉丘陵.
자인면에서 남부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온 길
이곳저곳에는
호수湖水가 지천至賤으로 널려 있었다.
푸른 제복의 스무 네 살 청년은
기다림이 무엇인지 몰랐고
오로지 어지러움과 피곤함 속에서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나간 시절의 기억에 대한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속 깊은 곳 할 말은 가득해도
다가 올 앞으로의 시간에는 무엇인가
또 다른 의미가 오겠지
결국 마지막 별리別離의 순간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분명한 의미를 가지고
목표目標하고 특정特定하며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졸리울 때도 행군行軍을 해야 하는 것처럼
무작정 가고 살아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3년의 세월은 가르쳐 주었다.
이윽고 열차가 도착하고
남성현을 지나고 유천을 건널 때
가벼운 신열身熱과 현기증眩氣症을 느끼고 있었다.
덜컹이는 차창車窓에서
사라지는 풍경風景에서
그간 숨기고 있었던 삶의 역겨움이
하나 둘씩 흐르고 번지기 시작했다.
열차列車는 정조준正照準되어 고향으로 가고 있는지
사라져 간 표적標的 사이
흩어지는 눈물을 뒤로 하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회상回想하며
작은 소리를 되뇌어 보는 것이었다.
떠나 오기 전 그날로 돌아가자,
그날로 돌아가자.
( 1984. 10. 24 )
위에 적은 글은 제대하는 날 귀향 열차에서 적은 엉터리 시다. 드디어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대 날짜였다. 3년 전, 내가 처음 자대에 전입한 후 이틀이 지나자 고참병이 한 명이 전역했다. 현역 사병 모두 모여서 부대 정문 앞까지 배웅을 했는데 그때 그는 울고 있었다. 몇 달 후, 그 다음의 전역병도, 또 그 다음의 전역병도 같은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전역병들이 부대 문을 나설 때의 보였던 모습처럼 그날, 나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성하(盛夏), 훈련소에서 쓰러져 타는 갈증으로 들판에 고인 구정물을 마셨던 기억. 훈련소 퇴소식 다리 절던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던 불쌍한 나의 어머니. 이유 없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뺨을 때리던 신병 시절의 내무반장. 결코 용서 못할 그들의 핏발 어린 눈자위와 욕지거리에 담긴 야만과 폭력. 식사 교대 없이 종일 굶은 채 보초 서던 눈 내리던 탄약 창고. 온몸에 멍을 만들던 야전삽과 각목에의 공포, 끊임 없이 계속되던 구타와 얼차려. 기약 없이 무너졌던 내 젊은 날의 자유 의지. 그 모든 기억이 한줌의 눈물로 정리되고 있었다.
입대 전 나는 삶이 역사에 기여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생활은 살기 위해 세상에 나온 것이지 기여하려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선사했다. 어떤 굴욕과 야만과 폭력 속에서도 견디고 살아야 한다는. 역사를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거대 담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만 했던가. 모든 병사는 군번과 함께 그 절망을 잠재의식 속에 지급받는다. 모든 것을 타아(他我)에 맡겨 버린 자아의 절망. 우리에게 존재를 부여하는 생명까지도 병사는 자기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았겠지. 내가 가진 것은 철저한 무(無)였으리라.
역 대합실에서 각자 고향으로 향하는 열차표를 끊은 뒤 독수리와 나는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열차에 타서 정해진 자리에 앉으니 카트를 끌며 음료와 과자를 팔던 홍익회 직원 아저씨가 예비군복을 입은 나를 보더니 한 마디 했다, "제대하시는 모양이네요. 아, 고생 많으셨군요."
달리는 차창 밖으로 저녁 어스름도 이제 막 사라져 갈 때, 옆자리에 앉은 낯선 여자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정말이지 인간의 삶은 감옥 같아요!"
삼 년 동안 나와 함께 복무하던 독수리도 여러 차례 습관처럼 그렇게 말했었다.
그녀의 밑도 끝도 없는 소리에 다소 당황했지만 나는 아무말 않고 가만히 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무모한 선언과도 같은 그 여자의 발언은 어쩌면 황당함 자체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내가 반응이 없자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 흘렀던 침묵은 예의와 범절을 제일 덕목으로 삼고 살았던 내 스스로에게도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그 여자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녀 쪽을 쳐다보면서 나는 혼잣말로 대꾸했다.
"그래요……. 꿈이었나요? 저는 삼 년 동안 감옥보다 더 한 곳에서 살았답니다."
차창 밖으로 가로수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세월 동안 기다가 뛰다가 이 세상에서 문득 사라지고 싶은 날들이 많았다. 그 여자도 나처럼 그랬을 지도 몰랐다.
이제는 잊어야지. 삼 년 동안 잊지 못했던, 아직도 미련처럼 아주 가느다란 실(絲)로 희미하게 남아있던, 그녀에게 부치지 못할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대, 그간 잘 있었는지요. 삼 년이 지나고 말았소. 당신이 잠들어 있던 시간에 나는 그대에게 마음 속 편지를 쓰곤 했다오. 그대는 항상 공사다망했었지. 감옥 같은 생활이었지만 나의 하루도 내 나름대로는 온통 사랑과 슬픔으로 공사다망했었다오. 이제는 안녕히.
열차를 타고 집에 도착한 나는 미친듯 끝없는 잠에 빠졌다. 그날 밤 너무나 생생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꿈꾸는 그 순간에도 끊임 없는 의문을 던졌다. 지금 꾸는 서글픈 이 꿈은 현실인가, 아니면 깨어나서 맞이하는 현실이 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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