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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파리대왕

by 언덕에서 2013. 12. 27.

 

 

 

 


 

 

 


파리대왕




신병교육대에서 6주를 마치자 우리를 태운 열차는 앞으로 근무해야 할 사단이 위치한 도시에 도착했다. 우리는 더플 백을 메고 사단본부 보충대에 머물렀고 이후 연대본부로 갔다가 최종 목적지인 대대로 가야 했다. 훈련소에서 함께 교육받은 동기 3명과 함께 대대로 향했다. 우리를 인솔하러 온 대대의 ‘전령병(傳令兵)’은 계급이 상병이었는데 시외버스 기사와 차비 때문에 계속 싸워댔다. 육군 규정에 의하면 전입 신병의 차비는 무료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는데, 버스 기사는 그딴 거 모르니까 차를 타려면 차비를 내라는 것이었다. 실랑이가 길어지자 우리 중 한 명이 가진 돈이 얼마 있으니 알아서 차비를 내면 안 되겠냐고 전령병(傳令兵)에게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는 우리 네 명을 노려보며 “씹새끼들! 군기(軍紀)가 빠졌네. 너희들 부대에 도착하면 죽여 버릴 거야!” 하면서 겁을 주었다. 살기(殺氣)가 도는 눈매의 얼굴, 무엇이 그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났다.

 버스를 타고 두 시간가량이 지나니 종착지에 가까워졌다는 전달이 왔다. 대대는 연대가 위치한 옆 도시에 있었는데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한 시간을 걸으니 부대 정문이 보였다. 이미 시간이 밤 열 시가 넘어있었지만, 간이 스크린을 설치하여 ‘도라 도라 도라’라는 전쟁 영화를 시청들 하는 중이었다. 큰 소리로 ‘전입 신고’를 하려 했지만 ‘주번 부관’ 완장을 찬 이가 ‘쉬어’라고 해서 더플 백을 한구석에 몰아넣고 네 명은 내무반 구석에 매트와 모포를 깔고 잠을 청했다.

 이튿날 아침, “기상!” 소리에 잠을 깨니 아침 점호가 시작되었다. 군가를 부르고 연병장을 네 바퀴 돈 후 세면을 위해 내무반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내무반장이 전체 병력을 인적이 드문 탄약 창고 뒤로 가도록 명했다. 내무반장과 제대를 몇 주 앞둔 병장 몇 명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곧장 내무반으로 들어갔다. 병장 한 명이 앞에 나오더니 “내 밑으로 전체 엎드려뻗쳐!” 라고 명했다. 나를 포함한 신병 네 명도 잽싸게 엎드려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다른 병장 한 명이 우리에게 오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네는 일어서…….” 하며 우리를 열외(列外)시켰다. 전날 전입한 신병이니 그랬을 것이다. 그다음 장면은 이랬다. 하사 두 명, 병장 네 명이 40명가량의 엎드린 병력의 배와 가슴을 구둣발로 차기 시작했다. 그것도 축구선수가 골대 앞에서 공을 찰 때처럼 전력을 다해서였다. 뻥! 뻥! 뻥!



 인당 10회 정도 발로 가슴 등을 때리는 것 같았는데 맷집이 좋은 이는 끝까지 버텼지만 대부분 두세 번 맞다 극심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빠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쓰러진 인원들을 따로 모아서 야전삽으로 엉덩이를 때렸다. 상상들 해보시라. 쇠로 된 야전삽으로 사람을 때리는 장면이 어떨는지를……. 야구나 골프의 경우처럼 전신의 힘을 다한 스윙을 할 때 삽의 금속 부분이 살에 닿으면 혼절하는 느낌의 고통이 온다. 우리 신병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렇게 자대(自隊)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예비사단의 신병훈련소에서 6주간의 혹독한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배치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던 어느 날, 새벽 한 시까지 각개전투 및 야간 행군 훈련을 받은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부대가 한적한 시골에 있는 외딴 후방의 예비군과 방위병 훈련 부대였던 관계로 기관병은 50명에 불과했지만, 대대장인 중령 1명을 비롯하여 중대장. 참모 등 위관급 장교 10명과 직업군인인 부사관 5명 등 편제는 전방부대와 같아서 대한민국에 편한 부대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특이한 점은 현역사병 50명 중의 10명은 하사였는데 ‘상병반’이라는 제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30개월 군대생활을 현역으로 하는 점에서는 기간병과 같지만, 상병에서 신병 생활을 시작해서 하사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내무반 내에서 기간병들과 늘 불화가 잦았다. 기간병들은 그들을 '단풍 하사'라고 불렀다. 노란 계급장에 빨간빛, 즉 단풍 색깔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반병들에게 왜 '하사' 계급 대우를 안 해주느냐는 불만이었고, 일반병은 같은 기간을 군대생활 하면서 직업군인도 아닌 의무 복무를 하는 이들의 통제를 받을 수 없다고 맞섰다. 부대 청소, 내무반 정돈, 각종 사역 등에서 그들은 늘 열외였고 직업 하사에 따르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물론 계급을 지키자는 그들의 주장은 옳았지만, 인원수가 병보다 열세였기 때문에 군 생활 개월 수에 따라 서로 간섭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곳은 모든 비리가 생성되고 종료하는 ‘인간 시장’ 자체였다는 판단이 든다. 대대장인 갑종 출신의 40대 중반의 중령은 지역 군청에 근무하는 여성교환수의 정부(情夫)라는 소문이 통신병들을 통해 돌았고, ROTC 출신 중위들이 하숙하는 면 소재지 인근의 처녀들을 모조리 꼬여서 겁탈했다는, 그러니까 ‘작살’ 내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했다. 동원예비군 숫자를 산출하고 결정하여 고참병사가 집 한 채 살 돈을 장만해서 제대했다는 소문이 구체적인 숫자와 정황으로 전해지고 있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방위병 교육을 전담하는 단풍 하사가 방위병을 괴롭혀 매주 토요일 외박 때마다 여자를 공급받고 있었으며, 면사무소나 동사무소 방위는 월 1회 부대에 들어와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그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병에겐 매일 피우는 담뱃값은 물론 휴가비도 필요 없다는 것이 말년병장들만이 쉬쉬하는 숨은 비밀이기도 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겠지만, 군대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은 우월한 위치에 있는 특정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열등한 위치에 있는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준보다 좀 심하면 괴로운 군대 생활이겠고 매우 심할 때는 탈영이나 총기사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란 어찌 보면 매우 불쌍한 존재이기도 하다. 조그만 끗발이나 완장 같은 것이 있으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괴롭히고 짓밟는다.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윌리엄 골딩이 쓴 ‘파리 대왕’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비행기의 불시착으로 무인도에 상륙하게 된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있다. 낯선 무인도에서 하루, 이틀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처음에는 끼리끼리 제멋대로 생활하다가, '조직적인 활동' 즉 사회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거쳐 뭉치게 되면서 '우두머리'를 뽑게 된다. 또 그들끼리의 규칙과 지휘체계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어른이나 사회의 아무런 보호도 없이 아이들이 야생과 죽음, 절망만이 가득한 무인도의 삶에 맞닥뜨려지자, 그들에게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비이성, 이기주의가 싹트게 된다. 결국, 아이들은 기존 규정 지키려는 쪽과 규정을 파괴하고 야만과 비이성에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러한 아이들의 눈과 행동, 언어, 이미지를 통해 저자는 인간들 본연의 야만과 잔인성, 이익을 사이에 둔 두 집단 간의 첨예한 대립과 성격을 극명하게 묘사해 준다. 아이들의 삶이 생존으로 위협받을 때, 그 아이들이 벌이는 춤과 노래, 놀이가 더는 유희가 되지 못한다. 극기야 반대편의 아이들을 참혹하게 살인하는 과정의 묘사는 인간 본성과 인간역사에 대한 적나라한 서술이다. 1983년 노벨문학상은 "사실적인 신화 예술의 명쾌함과 현대의 인간 조건을 신비스럽게 조명하여 다양성과 보편성을 보여주었다"는 수상 이유와 함께 저자에게 수여되었다. 이 소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인간의 사악함을 무인도에 불시착한 소년들의 행동양식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군대 생활을 하면서 ‘파리 대왕’을 끊임없이 생각한 것은 인간 개개인이 가진 야만성과 비이성, 이기주의를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휘관이나 당직 장교 등 관리자가 있다고 하지만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곳마다 폭력과 욕설과 무질서가 난무했다.

 그렇지만 그들 중 누구 하나도 처벌받지 않았다. 직업 군인은 진급하여 부대를 떠났고 구타와 착복을 일삼던 의무복무 사병들은 아무런 벌도 받지 않고 모두 무사히 제대하였다. 왜 그랬을까? 이들의 비리를 알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고발이 너무 튀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래 그곳은 그런 곳이고 세상은 그렇게 세팅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듯했다. 지금도 궁금하다. 인간은 원래부터가 악한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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