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윈 얼굴의 그 소녀
남자가 어느 나이에 도달해 과거를 회상하다 보면 친했건 아니든 간에 예상보다도 많은 여자가 떠오를 수도 있다. 이제는 오래된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
대학 2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7월에 입대(入隊)하여 모진 첫겨울을 보낸 후 병영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요즘 군대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말뚝 근무'라는 것이 있었다. 부대의 정문인 위병소 근무나 무기고나 탄약고 보초 근무를 온종일 한다고 해서 '말뚝'이라는 악명(惡名)이 붙은 것이었는데 선임 사병들의 횡포로 주로 힘없는 후임 사병들이 종일 교대 없이 혹사당하기 일쑤였다. 어떤 날은 교대 근무자가 오지 않아서 하루 세끼를 거른 채 근무하는 경우도 예사였다. 나는 주로 아침 6시부터 10시에 끝나는 아침 위병(衛兵)근무를 해야만 했는데 그 시간에는 부대 앞 도로 교통정리도 같이해야만 했다. 부대가 위치한 K 도의 시골 도시 K 군에는 방직공장이 밀집해 있었고 아침이면 통근버스들이 떼를 지어 부대 앞을 지나갔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부대 앞에서 보초 근무 중인 안경 쓴 군인을 누군가 눈여겨본 모양이었다. '○○방직'이라는 로고가 그려진 버스가 부대 정문 앞을 막 지나갈 때 차 안에서 돌멩이 하나가 위병인 나를 향해 ‘툭’하고 떨어졌다. 근무가 끝난 뒤 아무도 몰래 돌멩이를 싼 종이를 펴보니 쪽지 메모가 적혀져 있었다. 쪽지의 내용은 '매일 아침 오빠를 버스에서 지켜보며 사모하는 여성 직장인입니다. 아래의 주소로 편지를 주시기 바라요……. ' 대강 그런 내용이었다.
매일 고된 노동과 이유 없이 행해지는 선임병사들의 구타로 괴롭기 짝이 없는 와중에서 묘령의 여성으로부터의 사귀고 싶다는 편지가 왔던 것이다. 4월, 맹춘(孟春)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며칠 후 '누군지 모르지만 이렇게 연락하게 되어서 기쁘다'는 내용을 편지지에 적었다. 수정에 수정을 가해서 정성스레 쓴 편지를 저녁에 퇴근하는 방위병을 통해 발송했다. 이틀 후 부대로 답장이 날아왔는데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통근할 때마다 부대 정문에서 근무 중인 오빠를 바라보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기쁨이에요……. 자주 편지를 해도 괜찮겠어요?'라는 내용이었는데 수줍음 탓인지 글씨체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글씨체처럼 비뚤비뚤했고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엉망이었던 게 특이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매일 나를 지켜보는데 그가 누군지를 모른다는 사실에 그 여성의 정체는 날이 갈수록 궁금해져 갔다. 그렇게 편지를 두어 번 주고받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부대 밖에 공적인 업무로 외출할 기회가 생겼다. 일을 마치고도 1시간가량 여유가 남는 것을 확인하고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편지를 보낸 주소지의 공장으로 곧장 달렸다.
공장 경비 아저씨에게 김 아무개양을 면회 왔다고 용건을 말했다. 그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전화를 걸어 '김 아무개양에게 군인 한 명이 면회 왔다'고 전달하고 내게 주어진 면회 시간은 15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나이 스무 살 정도 되는 순박한 시골 처녀가 나오겠지 하는 짐작을 하며 그녀를 기다리는데 약 10분이 지났을까, 면회실 문이 열리고 수위 아저씨는 나를 향해 '당신이 찾는 사람이 왔다'고 말했다. 순간 나와 눈이 부딪친 여성을 대하고는 나는 '억' 소리를 지를 만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이는 많아 봐야 14살에서 15살 정도, 키는 140cm가 겨우 될까 말까 하는 매우 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어린 소녀가 등장했다. 누렇게 뜨다 못해 하얀 얼굴의 야위고 깡마르며 작은 체구의 얼굴을 한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소녀가 겁먹은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움에 온몸이 굳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놀라움이 가시기도 전에 웅성거리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근처에 소녀와 같이 근무하는 듯한 30~40대의 아주머니 대여섯 명이 깔깔거리며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겼다는 듯이 둘의 면회 장면을 훔쳐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나는 소녀에게 편지의 주인공임을 말하고 ‘볼일이 있어서 근처에 온 김에 이렇게 면회 신청을 했다……. 갑자기 이렇게 불쑥 찾아와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어쨌든 만나서 반갑다…….’ 는 말을 했다. 그 소녀는 홍당무 얼굴을 한 채 흡사 벙어리인 것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으며 아주머니들이 만든 주변의 웃음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이 뇌리에 가득했다. 어색함 속에서 주어진 15분의 면회시간 중에서 5분을 채우지 못하고 소녀는 스스로 면회실을 떠났고 이후 나는 곧장 공장 정문을 나서야 했다.
사흘 후 부대로 편지가 왔다. 물론 그 소녀에게서 온 편지였다. 총 네댓 줄로 이루어진 짧은 편지였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오빠, 그날 오빠가 가고 난 뒤 마음이 매우 아팠어요, 오빠를 그렇게 보내고 난 뒤 나는 내가 참으로 죄가 많은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라는 여자를 이제는 잊어주세요…….'
귀대한 후에 한참을 생각했다. 한창 부모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그에 대한 대가로 응석을 부려야 할 나이며,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아바(Abba)나 카펜터스(Carpenters)의 노래에 흥미를 느끼고 라디오의 팝송에 귀를 기울여야 할 또래였다. 무엇이 어린 소녀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가난 때문이었을 것이다. 많아 봐야 중학교 저학년 나이의 소녀가 공장에서 일하면서 정서적으로는 30~40대 중년 여성이 되어 있었다. '때 묻은 신파조(新派調)'대사를 읊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스스로가 ‘죄가 많은 여자’라니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 날 저녁, 몇 시간 동안 고민을 하다 편지를 쓰기로 했다. 우연히 읽었던 유명 작가 '펄 벅(Pearl Buck) 자서전'에서 읽은 내용을 기억해 내었다.
'젊은이여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에 자신을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이라는 구절이다.
내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인생을 그다지 많이 살지는 않았지만, 너보다는 조금 더 산 것 같다. 네가 세상살이를 살다 보면 매우 참기 어렵고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많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모든 시련을 이겨내어야만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자신을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이다. 나와 같은 어른에게 편지하지 말고 틈이 나면 동화책이나 시집, 소설책을 읽는 것을 권하고 싶다. 힘들겠지만 중학교 과정 공부를 해보는 것은 어떻겠니. 그리고 내게 편지를 주어서 매우 고마웠다.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겠다. '
물론 이후로 소녀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지금쯤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보낸 3년 가까운 시간은 과거 어린 시절 무성영화에서 보았던 화면 위의 세로로 난 스크래치처럼 스쳐 지나간다. 마지막 편지를 쓸 때 나는 언덕을 다 올랐을 때 다가오는 반가운 하늘같은 자리를 그 소녀에게 찾아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철없는 호기심에서 시작한 편지질은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끝났다.
- 월간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 2016. 1월호 게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