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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추석이 코 앞에

by 언덕에서 2013. 9. 17.

 

 

추석이 코 앞에

 

 

 

월병(月餠)과 노주(老酒), 호금(胡琴)을 배에 싣고 황포강(黃浦江) 달놀이를 떠난 그룹도 있고, 파크 호텔이나 일품향(一品香)에서 중추절(仲秋節) 파티를 연 학생들도 있었다. 도무장(跳舞場)으로 몰려간 패도 있었다. 텅 빈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와 책을 읽으려 하였으나,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도 없이 버스를 탄 것은 밤 아홉 시가 지나서였다. 가든 브리지 앞에서 내려서는 영화 구경이라도 갈까 하다가 황포탄 공원(黃浦灘公園)으로 발을 옮겼다.

 빈 벤치가 별로 없었으나 공원은 고요하였다. 명절이라서 그런지 중국 사람들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이 밤뿐 아니라 이 공원에 많이 오는 사람들은 유태인, 백계(白系) 노서아 사람, 서반아 사람, 인도인들이다. 실직자, 망명객 같은 대개가 불우한 사람들이다. 갑갑한 정자간(亭子間)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누런 황포 강물도 달빛을 받아 서울 한강(漢江) 같다. 선창(船窓)마다 찬란하게 불을 켜고 입항하는 화륜선(火輪船)들이 있다. 문명을 싣고 오는 귀한 사절과도 같다. '브라스 밴드'를 연주하며 출항하는 호화선도 있다. 저 배가 고국에서 오는 배가 아닌가, 저 배는 그리로 가는 배가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달을 쳐다보면서 그들은 바이칼 호반으로, 갠지즈 강변으로, 마드리드 거리에 제각기 흩어져서 기억을 밟고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와 작별하던 가을 짙은 카페, 달밤을 달리던 마차, 목숨을 걸고 몰래 넘던 국경.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이 또 하나 있었다면 영창에 비친 소나무 그림자를 회상하였을 것이다. 과거는 언제나 행복이요, 고향은 어디나 낙원이다. 해관(海關) 시계가 자정을 알려도 벤치에서 일어나려는 사람은 없었다.



 위의 글은 피천득 선생이 쓴 <황포탄의 추억> 전문입니다. <추석(秋夕)>에 관한 대표적인 명문으로 이국땅에서 추석을 맞아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담담하게 서술한 글이지요. 명절이기 때문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즐기는 사람과 낯선 땅에 왔기 때문에 그 흥청거리는 분위기에 젖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조적으로 보여 주면서 자신의 외로운 심사를 적고 있습니다. 갑자기 지구 반대편에서 추석을 맞이하며 공부하고 있을 아들 녀석이 생각나는군요. 알아서 잘 지내겠지만 부모 마음이 또 그렇습니까.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날의 저녁은 한여름처럼 후덥지근하기까지 합니다. 생각해보니 최근의 추석은 9월 중하순에 몰려있어서  가을저녁이라는 중추가절의 의미가 실감나지 않는군요. 따지고 보면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일 겁니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이지요.

 

 

 

 

 오늘 오후부터 연휴가 사실상 시작되는군요. 일요일 저녁에야 연휴가 끝나니 짧지 않은 기간입니다. 죽마고우와의 저녁약속, 추석 당일의 차례 외에는 별다른 일정이 없네요. 연휴 때 그간 격조했던 친구와 술 한 잔하면 이유 없이 가라앉은 기분이 좀 나아질려나요?

 지난주부터 연휴 때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서점에 들러 몇 권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그래도 추석의 참뜻은 조상과 자연에 대한 감사, 이웃끼리의 정겨운 마음의 나눔, 친지간의 살뜰한 만남에서 찾아야 할 듯합니다. 다들 너무도 바쁠 시기니, 일일이 찾아가서 인사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추석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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