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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두려워하지 마라

by 언덕에서 2013. 10. 2.

 

 

 

두려워하지 마라

 

 

 

 

1941년 7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제14호 감방, 극소에서 탈출자 한 명이 생겼다. 이에 몹시 분노한 수용소장은 그 대가로 사람을 골라내어 굶겨서 죽이는 아사형(餓死荊)에 처할 것이라고 으르렁거렸다.

 “입을 벌려 이빨을 보여라.”

 이빨이 튼튼하지 못하면 팔리지 않던 옛 노예시장에서처럼 그는 죄수를 고르기 시작했다. 두려워서 벌벌 떨고 있는 한 소년에게 마르고 야윈 사내가 다음과 같이 속삭였다.

 “겁내지 마라, 꼬마야. 죽음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란다.”

 마침내 열 번째 죄수인 가죠프니체크가 희생양으로 결정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아, 불쌍한 아내와 가엾은 내 아이들.”

 이때 마르고 야윈 그 사람이 대신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인가. 이 폴란드 돼지야.”

 프리지 소장이 소리치자 그가 대답했다.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없으니까...”

 

 소장에 의해 돼지로 불린 사람. 마르고 야윈 그 사내. 그가 바로 1982년 10월 시성이 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이다.

 

 

- 최인호 수상록 <문장2> p178 ~9 

 

 

 

 


 

 

 

 

막시밀리안 콜베(1894 ~ 1941) : 1894년 1월 8일 폴란드 쥬드운스카 볼라(Zdunska Wola)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제국에 속했다. 그의 세례명은 라이문트(Rajmund)였으며 라이문트 콜베로 불렸다. 부모는 직조공으로 가난했으며 콜베는 프라체스코수도회에서 공부하였다. 16세가 되자 수도자가 되었으며 사제 서품을 받고 막시밀리안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세 때 로마 그레고리우스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23세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모기사회를 창설하여 선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원죄 없는 성모기사회>를 발간하였다. 선교를 위해 일본 나가사키로 건너가 일본어판 성모기사회 잡지를 발간하였다. 결핵에 걸려 스위스에 요양을 하기도 하였다가 고향인 바르샤바에 머물렀다. 하지만 프란체스코회에 소속되어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소속된 유태인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게쉬타포(Gestapo)에 체포되어 아우슈비츠(Auschwitz)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1명이 탈옥하자 보복조치로 10명을 살해될 처지에 놓이자 처와 아이가 있는 남자를 대신하여 아사형을 선고받고 지하 감옥에 수감되었다.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도 2주 동안 생존해 있자 독극물 주사가 투여되었고, 1941년 8월 14일 사망하였다. 1982년 로마교황청에서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를 성인으로 숭배할 것을 공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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