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시조 전집 『외따로 열고』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李永道.1916.10.22∼1976.3.5)는 호는 정운(丁芸)으로 경북 청도에서 태어났다. 1946년부터 통영여고, 부산남성여고, 마산성지여고 교사 및 부산여대, 중앙대 예술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진달래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戀硏)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山河).
- 시조집 <석류>(1968.이호우와 공동시집)
오늘 소개하는 이 시집은 이영도 시인 사후에 발간된 것으로 시인이 생전에 출간했던 <청저집(靑苧集)>(1954.첫 시조집) <석류>(1968.이호우와 공동시집 '비가 오고 바람 붑니다' 중 1권) <언약>(1976.유고집)에서 발췌된 대표작 50편이 실려 있다.
봄 I
낙수 소리 듣다 미닫이를 열뜨리니
포근히 드는 볕이 후원에 가득하고
제가끔 몸을 차리고 새 움들이 돋는가
아이는 봄 따라 가고 고요가 겨운 뜰에
맺은 매화가지 만져도 보고 싶고
무엔지 설레는 마음 떨고 일어 나선다
-<청저집>(문예사, 1954)-
이영도 시인은 1945년 대구의 동인지 [죽순(竹筍)] 동인으로 시조 <제야(除夜)>, <바위>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는데 1963년 부산 어린이집 관장으로 취임한 이래 어머니 시조모임인 [달무리회] 및 [꽃무리회]를 조직, 활동하였다. 한국시조작가협회 부회장(1975), 여류문학인회 부회장 역임했고 눌월(訥月)문화상(1966) 수상했다.
황혼에 서서
산이여, 목메인 듯
지긋이 숨 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은
어쩌지 못할 너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愛慕)는
바다처럼 저무는데,
그 달래임 같은
물결소리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같은 나의 정(情).
- 시조집 <언약>(1976)
이영도 시인의 작품은 대개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시조, 간결한 표현, 인생 관조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데, 여성의 맑고 경건한 계시주의(啓示主義)와 한국적 기다림, 연연한 낭만 등 가락과 사념의 세계에서 정결하고 섬세한 감각의 언어를 구사했다. 간결한 언어 구사로 절제된 시조의 아름다움을 나타낸 허난설헌의 맥을 이은 전통 서정시인이다.
낙화(落花)
눈 내리는 군묘지에서
뜨겁게 목숨을 사르고
사모침은 돌로 섰네.
겨레와 더불어 푸르를
이 증언의 언덕 위에
감감히
하늘을 덮어
쌓이는 꽃잎
꽃잎.
- 시조집 <언약>(1976)
이영도 시인은 같은 시조 시인 이호우(李鎬雨.1970년 작고)의 누이동생으로서 20대 초반 결혼하여 딸을 하나 얻은 후 남편과 사별 후 독신으로 살았다. 그러다가 한때 유명 시인 유치환과의 플라토닉 러브를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청마 유치환이 뜻하지 않은 죽음(1967년)을 맞이하면서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자 이영도 시인은 청마로부터 받은 여러 통의 편지를 묶어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서간집을 펴냄으로써 세상에 둘 사이의 순수한 교류를 공개하게 된다. 당시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이 책은 유치환 명의로 발행되었다.
아지랑이
어루만지듯
당신 숨결
이마에 다사하면
내 사랑은 아지랑이
춘삼월 아지랑이
장다리
노오란 텃밭에
나비
나비
나비
나비
- 시조집 <석류>(1968.이호우와 공동시집)
【작품】<아지랑이>(1954), <행복>(1953)
【시조집】<청저집(靑苧集)>(1954.첫 시조집) <석류>(1968.이호우와 공동시집 '비가 오고 바람 붑니다' 중 1권) <언약>(1976.유고집)
【수필집】<청근집(靑芹集)>(1958) <비둘기 내리는 뜨락>(1966) <머나먼 사념의 길목>(1971)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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