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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박목월 시집 『산도화』

by 언덕에서 2013. 8. 26.

 

 

 

 

박목월 시집 『산도화

 

 

 

 

 

 

1955년 영웅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목월의 첫 개인시집으로 공동시집인 『청록집』의 시 세계와 유사하다. 이 시집 역시 서경성이 돋보이며, 간결하고 짤막한 시형과 자연친화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서경적인 묘사에 치중하면서 서정으로의 변이를 꾀한다든지, 종결부에 포인트를 두는 수법은  「윤사월」이나 「청노루」와 흡사하다. 그 중  「산도화」는 1‧2‧3편 모두 서경적인 경치 묘사로 이루어져 있고, 인간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시인은 고요하고 적막한 풍경 속에서 오직 생명들의 움직임만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다. 산도화의 개화, 암사슴의 움직임, 새소리, 햇살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세계와는 떨어져 있는 자연의 비경(秘境)으로서, 시인은 단지 숨죽여 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산도화 1

 

산(山)은

구강산(九江山)

보랏빛 석산(石山)

 

산도화(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3인시집 <청록집>(1946)-

 

 

 특히 이 시에서는 색채 감각이 두드러진다. 석산(石山)의 보랏빛과 산도화의 색깔, 물빛 등은 선명한 색상의 대비를 이루면서, 꾸미지 않고도 절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자연을 묘사한 것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산도화」3편에서 이 아름다운 자연은 결국 시인에게 시상을 유발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산도화 3

 

靑石에 어리는

찬물소리

 

반은 눈이 녹은

산마을의 새소리

 

靑田 山水圖에

삼월 한나절

 

山桃花두어송이

늠름한品을

 

산이 환하게

틔어 뵈는데

 

한머리 아롱진

韻詩 한 句

 

- 시집 <산도화>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은 시인의 자연친화사상이 결국 시로 나타남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연과 완전한 합일을 이루고, 그 속에 융화됨으로써 시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산도화」는 박목월의 초기시의 탄생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목월의 초기시 세계는 <청록집>의 세계와 <산도화>의 세계로 나누어진다. <산도화>의 세계에 이르러 그 전대에 막연하게 드러난 임에 대한 슬픔의 정서가,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화자가 대상으로서의 '임'과 화해를 획득하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제시된다.

 

 

 

 

 

 이 시는 이상화(理想化)된 자연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탈속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목월이 이상적인 미의 세계를 형상화한 까닭은 아마도 '인간 세계의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멀리 떠난 자연'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안위를 구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법은 <청록파> 시인들의 공통된 시적 태도이다.

 

 

 

구름밭에서

 

 

비둘기 울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구름밭에

우는 비둘기

 

다래 머루 넌출은

바위마다 휘감기고

풀섶 둥지에

산새는 알을 까네

 

비둘기 울듯이

살까보아

해종일 구름밭에

우는 비둘기

 

- 시집 <산도화>

 

 

 

 박목월은 시사적(詩史的)인 면에서 김소월(金素月)과 김영랑(金永郎)을 잇는 향토적 서정성을 심화시켰으며, 애국적 사상을 바탕으로 민요조를 개성 있게 수용하여 재창조한 시인이다.

 동시로부터 출발한 그의 초기 시는 민요조의 운율, 민요적인 수사(修辭), 민요적인 정서로 이루어진 민요시였으니, 목가적이고 애수적인 감미로운 서정이 그의 시 세계를 이루었었다.

 

 

불국사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 안개

물 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 소리

 

 -시집 <산도화>(1955)-

 

 그러나 그의 시풍의 주류를 이루는 중기 시에선 자연과의 친화를 노래하되, 다른 이들처럼 불교적 선이나 기독교적 세계관을 거기 끌어들임이 없이, 어디까지나 순수한 한국인 본연의 감성으로 이루어지는 자연과의 교감을 노래하였으며, 민요조의 운율 속에 회화적인 이미지의 오버랩(Overlap)을 시도했다. 후기시에선 생활 주변의 소재를 택하여 담담한 생활 서정을 노래했다.

 

 

 

 

 

 청록파의 한 사람으로, 초기에는 동심의 소박성, 민요풍, 향토성 등이 조화를 이룬 짧은 서정시를 지어, 특유의 전통적ㆍ자연적 시풍을 이룩했다. 1950년대 이후부터는 소박하고 담담한 생활을 표현하여, 현실성이 가미된 변모를 보였다. 1968년에 간행한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에는 생활주변에서 역사적ㆍ사회적 현실로 시야가 확대되고 심화되어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관념성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