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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결정체 『박용래 시선』

by 언덕에서 2013. 9. 2.

 

 

 

군더더기 없는 언어의 결정체 『박용래 시선


 

 



박용래(1925 ~ 1980)는 전설적인 눈물의 시인이다. 바위틈의 꽃처럼 저 홀로 한가롭게 피어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시인이었다. 다만 죽는 날까지 그의 시처럼 잔잔하고 조심스럽지만 행간은 뜨거웠던 시인의 행보를 꾸준히 디뎌 나갔다. 간결하고 정갈하게 걸러져 나온 시행 사이에 수다한 말들과 진한 파토스가 녹아 있다. 행간에 숨은 숨결조차 그의 시에서 놓칠 수 없는 하나의 편린이다.

 박용래 시인은 1943년 강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조선은행에 입행하여, 1944년 대전지점으로 전근하였다. 1945년 8ㆍ15광복을 맞아 사임하고, 1946년에 일본에서 귀국한 김소운(金素雲)을 방문하여 문학을 배웠다.

 

 

 

겨울밤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음,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시집 <강아지풀>(1975)-


 그 뒤 향토문인들과 [동백시인회(冬柏詩人會)]를 조직하여 동인지 [동백]을 간행하면서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1948년 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문학수업을 계속하여 1955년 6월호 [현대문학]에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朴斗鎭)의 첫 추천을 받았고, 이듬해 <황토길>, <땅>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나왔다.


잔(盞)


가을은 어린 나무에도 단풍 들어

뜰에 산사자(山査子) 우연듯 붉은데

벗이여 남실남실 넘치는 잔

해후(邂逅)도 별리(別離)도 더불어 멀어졌는데

종이, 종이 울린다 시이소처럼


-<먼 바다>(창작과비평사,1984)-

 

 

 

 

 1969년에 한국시인협회가 주관하여 발간한 <오늘의 한국시인선집> 가운데의 하나인 첫 시집 <싸락눈>을 출간하였다. 이어, 한국시인협회 주선으로 1971년에는 한성기(韓性祺)ㆍ임강빈(任剛彬)ㆍ최원규(崔元圭) 등의 시인과 함께 동인시집 <청와집(靑蛙集)>을 출간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전원적ㆍ향토적 서정의 세계를 심화, 확대시킨 것이 특징이며 언어의 군더더기를 배제하여 압축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저녁눈>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저녁눈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 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 [월간문학](1966) -



 그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를 바탕으로 하되, 그 정서를 시적으로 여과시켜 시어의 정수(精粹)만을 골라 형상화시키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시에서 언어의 군더더기를 일체 생략하고 시적 압축을 통해 섬세하고 간결한 함축미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죽은 뒤 1980년에 한국문학사(韓國文學社)가 제정한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84년 10월 대전 보문산 사정공원에 그의 시비가 건립되었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朴龍來’라는 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 다 職場에 나가는 /  밝은 낮은 홀로 남아 시 쓰매 빈집 지키고 /  해 어스름 겨우 풀려 친구 만나서 나온다는 /  朴龍來더러 ‘장 속의 새로다’ 하니 /  그렇기사 하기는 하지만서두 지혜는 있는 새라고 나왔으니 /  지혜는 있는 새지 뭣이냐 한다. /  왜 아니리요 / 대한민국에서 /  그 중 지혜 있는 장 속의 시의 새는 /  아무래도 우리 朴龍來인가 하노라.



월훈(月暈)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너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무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溫氣)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


 - [문학사상](1976.3) -

 


 박용래는 평생을 직장다운 직장 없이 오직 시 하나로 버텨왔다.  박용래 시인은 생전에도 그랬지만 사후에 더 명성을 얻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했다. 사후에 한국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일보 문화면에 전면을 할애해서 조명해 주었고, ‘박용래’에 관계되는 시가 문학잡지 혹은 신문 지상에 이십여 편이 발표되었고, 국정교과서 <중학국어>에 <겨울밤>이 교재로 올라갔다. 그뿐인가. 1984년 10월 27일 보문산 사정공원에 박용래 시비가 건립되었다. 재력만 있으면 아무나 비를 세우는 세상이지만 이 시비만은 달랐다. 그를 아끼는 경향 각지의 문인들이 정재를 털어 무려 300여 명이 참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