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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옛날의 금잔디>

아버지의 로맨스

by 언덕에서 2013. 10. 4.

 

 

 

아버지의 로맨스 

 

 

아버님이 항상 부러워하는 고향 친구가 있었다. 그분이 결혼할 당시 신부 측에서 혼수를 많이 해오는 바람에 온 동네에 '굉장한 혼수'에 관한 소문이 자자하게 났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부러움은 어머님의 인내심을 자주 자극하고 있었다. 내용은 아버님 친구의 부인이 시집오면서 소 한 마리, 돼지 한 마리,  개 한 마리, 닭 한 마리, 자전거 한 대 등 당시로는 파격적인 혼수를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집안이 파산 상태였던 처가의 혼수와도 비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님는 매우 균형 잡힌 사고를 하신 분이셨다. '로마이 신랑 이야기'가 그것이다. 당시 경남 김해 지방에는 로마이 신랑 사건이 유명했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좀 귀찮을 정도로 자주 들었다.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아버님의 친구 부부로 추정되는 사진으로 아버님 유품에서 찾아내었는데 로마이를 입고 있다.>

 

 이웃 동네에 신혼부부가 있었다. 신랑은 신부 측에서 해온 부실한 혼수가 항상 불만이었다. 당시에는 로마이라는 양복이 유행했는데 신부는 신랑이 은근이 원했음에도 형편이 좋지 않았는지 혼수로 그 양복을 해오지 않았다. 로마이는 '로만 스타일'이라는 말에서 연유된 더블 자켓형의 양복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내 친구 아무개는 혼수로 로마이를 해왔는데 너는 뭐냐'는 식으로 신부를 구박했다. 그런데 그 빈도가 굉장히 심했던 모양이다. 신부는 로마이에서 비롯된 압박을 견디다 못해 친정 오빠에게 그러한 내용을 편지로 자세히 쓴 뒤 자살해 버렸다. 어쨌든 사람이 죽었으므로 동네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전통 장례식에서는 크게 소리 내어 ‘어이구, 어이구!’하며 곡을 하게 된다. 신랑이 곡을 하자 신부 오빠가 제동을 걸었다.

“자네는 ‘어이구, 어이구~’곡을 하지 마라! 로마이 때문에 내 동생을 죽게 만들었으니 ‘로마이, 로마이~’라고 곡을 해야 맞지 않겠나?”라고 하며 신랑을 면박 주었던 웃지 못할 사건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부드러운 성격의 아버님과 남자 같은 성격의 어머님은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가난 탈출이라는 목표에는 두 분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고 지극히 근면 검소한 부분은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부부싸움 후에도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평온한 집이었다. 두 분이 주신 무형의 정신적인 유산의 영향으로 오늘날 내가 밥을 먹고 빚 없이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의 어느 날이었다. 늦은 저녁시간의 하굣길로 기억한다. 학교에서 집까지는 20분 정도 걸리는 길이었는데 도중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소변이 마렵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에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 속으로 들어가 적당한 전봇대를 하나 발견했다.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인적이 드문 골목의 전봇대는 아이들 방뇨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시원하게 소변을 보다가 건너편 전봇대 옆에서 인기척을 발견하게 되었다. 뭐하는 사람들일까? 어둠이 깔려 가는 시간이었지만 먼 거리가 아니어서 자세히 쳐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중년의 남녀가 다정스레 손을 잡으며 밀담을 나누고 있었고 이후 가볍게 포옹하는 모습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누구일까? 자세히 보니 여자는 누구인지 모르겠고 남자는 아버님이 확실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입고 나가셨던 옷차림 그대로.

 초등학교 5학년의 나이였지만 그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충 알만한 시기였다. 나는 애가 멍청했는지, 아니면 무조건 그래야 한다고 믿었는지 이 이야기를 40대가 될 때까지 함구하며 살았다(아버님은 내가 스무 살이던 해에 별세하셨다). 아버님은 항상 다정다감한 분이었기에 아버님께 권위의식이나 무서움을 느끼며 살진 않았던 것 같다. 왠지 이유는 모르지만 평생 비밀로 지켜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셈을 해보니 그때 아버님 연세가 44세였던 걸로 계산된다.

 

 

그림 출처 : 글림작가의 세상바라기 ( http://blog.daum.net/e-klim )

 

 내가 40대 중반이던 어느 날,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사촌 동생과 퇴근길에 연락이 되어 소주를 마실 기회가 있었다.

 소주잔이 몇 순배 돌자, 나는 동생에게 어릴 때 우연히 목격했던 그날 아버님의 모습을 털어놓았다. 동생은 매우 심각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형님, 이야기를 들으니 큰아버지는 참으로 멋진 분이셨네. 그 당시 큰집도 얼마나 가난했어요? 큰엄마는 호랑이 같았고. 요즘 말로 하면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로맨스를 간직하며 사셨던 큰아버지는 멋쟁이 중의 멋쟁이가 아닐까?”

 핫하,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동생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대로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몰래 간직했던 아버님만의 비밀, 아버님만의 로맨스가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드니 그 비밀을 지켜주었던 유년시절의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 그런데 중년의 아주머니는 대체 누구였을까?  이후 많은 시간이 흐른 요즈음, 그 사건의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없음, 무위(無爲)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모든 사람들은 삶의 힘든 어떠한 시점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아버님도 그랬을 것이다. 세상에는 하루아침에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집이나 일터를 떠나,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먼지처럼 가벼운 참을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존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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