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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조병화 시집 『어머니』

by 언덕에서 2013. 7. 22.

 

조병화 시집 『어머니 

 

 

 

조병화(趙炳華.1921∼2003) 시인의 시집으로 1970년 [중앙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1977년 <때로 때때로>라는 이름으로 [삼중당] 출판사에서 문고판으로, 이후 다시 원제목으로 개명하여 1990년 7월에 「어머니」라는 시집으로 재발간되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 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어머니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는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시집 <어머니>(중앙출판사.1973) -

 

 조병화는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1938년 경성사범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가서 동경고등사범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했다. 광복 후 고등학교 및 대학 강사 등을 거쳐 1949년부터 경희대 문리대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49년 첫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한 이후 제2시집 <하루만의 위안>(1950), 제3시집 <패각(貝殼)의 침실>(1952) 등 잇달아 시집을 내었고, 1955년의 제5시집 <사랑이 가기 전에>는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계속해서 1972년 <먼지와 바람 사이>, 1973년 「어머니」 등 많은 시집을 간행했고, 미술 개인전도 여러 번 가졌다.

 

 

 

 

 

어머님, 지금 계신 곳은

 

어머님, 어머님이 지금 계신 곳은

어디십니까

 

정말, 그곳 저승엔 극락세계가 있고

지옥의 세계가 있습니까

 

날이 갈수록 요즘엔 그것이 궁금해집니다

참말인지, 그저 하는 말인지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이제 이 이승의 길 끝머리에서

수시로 알고 싶은 것은

이제부턴 어디로 가는지

그 행선지옵니다

 

그 행선지, 그것은 모르나

어머님이 어디에 계신지, 그것은 모르오나

소원은 하나

그저 아프지 않게 그곳 어머님 곁으로만

갔으면 합니다

 

이 세상 만가지 천가지

만졌던 거, 버리기엔 아까운 거

정들었던 사람, 다 버리고

그저 훅, 어머님 곁으로만 갔으면 합니다

 

어머님이 주신 노자로

지금까지 인생을 후회 하나 없이

골고루 다 살았습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노자

그저 얼른 어머님 곁으로만 갔으면 합니다

 

어머님, 정말 지금 어디에 계시옵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러한

천당이다, 극락이다, 지옥이다 하는

곳이 있습니까.

 

- 시집 <어머니>(중앙출판사.1973) -

 

 1949년 첫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이후 50여 권이 넘는 시집을 발표한 다작의 작가로서, 높은 대중적 호응을 받음과 동시에 서정의 밀도와 균질성을 견고하게 유지한 이채로운 시의 세계를 보여준 작가였다. 1950년대에는 주로 편지투의 시를 많이 쓰면서 존재의 소외와 고독, 그리고 그에 대한 위안을 노래하였으며, 1960년대에는 청춘기의 고뇌와 감정이 인생론적 성찰과 철학으로 수렴이 되는 시세계를 보여주었다.

 

 

 


 

1962년, 음력 6월 3일

 

1962년, 음력 6월 3일

아침 일곱 시

맑은 아침 해가 높이 솟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시간

다시 깨시지 않는

고요한 잠에 드셨습니다

 

영원하다는 건 이걸 말하는 거

그 영원한 자리로

자리 옮기시어

고요히

극히 고요히

정히 눈 감으시고

깊은 잠에 드셨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수명 거두시던 모습

극히 조용하였습니다

당신이 평소에 말씀하신 대로

당신이 찾으시던

그 부처님 곁으로 가심에

맑은 해 솟아 오르는

아침이었습니다

 

하얀 새옷 갈아입으시고

누워 계신 모습

일체가 고요한

고마움

당신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나 먼저 간다

얘,

잠깐이다

구순히 지내다 오너라

옳지

너 거 있구나

곁에 있구나

고맙다

 

당신 깊은 잠 깨실까

참는 이 마음

아, 먼 흐느낌이었습니다.

 

- 시집 <어머니>(중앙출판사.1973) -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 시집 「오산 인터체인지」(1971)에서 「머나먼 약속」(1984)에 이르는 시기에는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었는데, 이 시기에 이르면서 시인은 이전의 내면탐구나 방황을 정리하면서 뚜렷한 인생론적 관점을 구축한다. 그리고 「나귀의 눈물」(1985) 이후에 이르면 시인은 떠남을 예비하고 죽음을 길들이며 자유에의 길, 영원에의 길에 대한 갈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서, 삶을 차분히 성찰하는 세계를 펼쳐보였다. 「내일로 가는 밤길에서」(1994)이나 「시간의 속도」같은 시집이 그러한 시적 세계를 잘 보여준다. 

 

 

 

화가 김환기가 시인 조병화에게 선물한 유화 '가을'(1955). /환기미술관

 

 

어머님, 너무 멉니다

 

어머님, 너무 멉니다.

당신이 가신 길 따라  산을 넘음에

당신이 부르시는 곳

아득히, 너무 멉니다.

봉우릴 넘으면 또 봉우리

길 무한

고독한 영원

동행턴 벗도 이젠 보이지 않습니다.

철없이 애타던 거

사랑했던 거

미워했던 거

기뻐했던 거

슬퍼했던 거

고집했던 거

지키던 거

이젠 구름

남은 건 저린 가슴뿐입니다

혼잡니다

혼자 죽는 그 아픔을 가르쳐 주십시오

봉우리

봉우리, 넘어

버리고 가는 길

이건

어머님, 너무 멉니다.     

 

- 시집 <어머니>(중앙출판사.1973) -  

 

 

 

 

 

 

 


 

 

 

조병화(趙炳華.1921∼2003) 시인은 ‘인생’ 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시적으로 탐구하면서도 늘 평이한 비유와 소박한 어조로 노래한 시인이다. 그리고 그는 존재론적 고독과 대상을 향한 사랑으로, ‘자기 구원’ 으로 서의 시를 줄곧 써온 인생론적 시인이다. 나아가 그는 평이한 시어로 많은 이들과 소통의 공감을 형성해온 친화력의 시인이요, 삶의 심오한 주제를 역설적으로 가벼운 낭만성에 실어 노래한 보헤미안의 시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삶의 궁극을 ‘어머니’라는 귀의처에 둔 서정 시인의 생애를 살아온 미학적 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