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첫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시인 황지우의 제1시집으로 198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기존의 정통적인 시 관념을 과감하게 부수면서, 언어와 작업에서 대담한 실험과 전위적 수법을 만들어내고 있는 저자의 첫 번째 시집이다. 형태 파괴적 작업을 통해 날카로운 풍자와 강렬한 부정의 정신, 그리고 그것들의 안에 도사린 슬픔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시인이 말하길 새들마저 뜨고 싶은 세상이란, ‘정의 사회 구현’의 구호 아래 숙정과 통폐합 바람이 부는 가운데 컬러 텔레비전에서 연일 ‘팔육 팔팔’을 떠들던 80년대초 ‘국운 상승기’였다. 그런 이 땅을 떠나자는 이 불경스러운 시집은 80년대 시의 한 상징으로 남았고, 현재까지 발행 부수는 9만 6천부나 된다.
이 시집은 시적으로도 불순했다. 골목벽보, 시사만화, 속칭 ‘빨간책’의 한 대목, 상업광고 등 시인이 선진조국 서울의 일상 속을 어슬렁거리며 마주치는 ‘세상 돌아가는 꼴’이 시에 원색적으로 삽입된다. 이를 두고 당대 평론가들은 시의 형태 파괴, 혹은 해체시의 전범이라고 칭송했다. 그런데 정작 시인은 그런 거창한 비평용어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현실이 일그러지면 시도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내 나름대로 의미 심장한 형식을 쓰려고 했다. 나는 시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두려워할 여유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급했다. 그게 남들 눈에는 형태파괴로 비쳤던 모양이다.”
같은 위도 위에서
지금 신문사에 있거나
지금도 대학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잘 들어라, 지금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지금의
잘 먹음과 잘 삶이 다 혐의점이다
그렇다고 자학적으로 죄송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제발 좀 그래라)
그 속죄를 위해
<악으로>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름을 위해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말도
나는, 간신히, 한다
간신히 하는 이 말도
지금 대학에 있거나
지금도 신문사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못 한다 안 한다
그래도 폴란드 사태는 신문에 난다.
바르샤바, 그다니스크, 크라코프, 포즈난
난 그 위도를 모른다 우리가
그래도 한 줄에 같이 있다는 생각,
그 한 줄의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
마루벽의 수은주가 자꾸
추운 지방으로 더 내려간다.
자꾸 그곳으로 가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뭔가 바스락거리는 것인데
나도 바스락거리고 싶은데
내 손이 내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한다, 시늉만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내 탓이로다
하느님, 정말 불쌍합니다)
- 황지우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황지우는 1980년대 민주화 시대를 살아온 지식인으로서 시를 통해 시대를 풍자하고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그의 시에는 정치성, 종교성, 일상성이 골고루 들어 있으며 시적 화자의 자기 부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호탕하되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의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는 전혀 다르다.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 시집은 극단 연우에 의해 연극으로 공연되기도 하였다.
숙자는 남편이 야속해 -KBS 2 TV*산유화(하오 9시 45분)
길중은 밤늦게 돌아온 숙자
에게 핀잔을 주는데, 숙자는
하루종일 고생한 수고도 몰
라 주는 남편이 야속해 화가
났다. 혜옥은 조카 창연이
은미를 따르는 것을 보고 명
섭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모는 명섭
과 은미의 초라한 생활이
안스러워......
어느 날 나는 친구집엘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
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친구 누나의 벌어진 가랭이
를 보자 나는 자지가 꼴렸다
. 그래서 나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1983, 문학과지성사>
표제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1980년대 군사독재로 인해 피폐된 한국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과 함께 그 닫힌 상황에 대한 냉소적 태도와 무력감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 그려내고 있는 시적 정황은 극장 안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에 울려나오는 애국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시적 화자는 애국가가 울려나오자 자리에서 일어서서 경건한 자세를 취한다. 군사독재 시절에 일상화되었던 이 강요된 의식은 극장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더욱 그 닫힘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애국가가 흘러 나오면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화면에는 새들이 날고, 이것을 배경으로 하여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경건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시적화자는 화면속의 새들을 쳐다보면서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시적 화자는 이 세상 밖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시적 화자 자신이 현실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의 욕망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즐거운 극장에서 애국가를 울려 대며 나라 사랑을 외쳐대는 그런 엄숙주의에 시적 화자는 냉소적으로 대응하면서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날아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같은 욕망은 곧 좌절한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애국가가 끝나면 모두가 자기 자리에 주저앉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상황에 안주할 수밖에 없다는 좌절감과 체념이 함께 드러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체념적인 자세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강요된 의식의 경건함을 야유함으로써 얻어내는 비판적 의식의 출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3)-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 역시 작가가 현실적 삶을 통해 보고, 듣고, 느낀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 그리고 피곤하고 역겨운 현실을 탈피하여, 좀더 바람직하고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시상 전개의 축은 '어디론가 떠나고자 하지만'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흰 새 떼의 비상과 같이 화자는 70~80년대의 암울하고 억압적인 군사 정권의 현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은 강한 욕구에 사로잡혀 있다. 화자의 삶은 애국가 노래 가사 속의 '삼천리 화려 강산'과 거리가 멀다. 애국가 노래 가사가 끝나기도 무섭게 서둘어 자리에 주저앉는다는 표현은 현실에 대한 화자의 강한 절망감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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