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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나를 유쾌하게 하는 것들

by 언덕에서 2013. 4. 16.

 

 

 

 

 

나를 유쾌하게 하는 것들

 

 

 

 

 

 

3월 말 벚꽃 그늘 아래를 거닐 때, 죽마고우와 단둘이서 바닷가 경치 좋은 곳에서 술 마실 때, 장용길의 그림을 감상할 때,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를 감상하는 햇살 좋은 가을아침, 비 오는 날 텅 빈 해변도로를 혼자서 운전할 때,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중년여인이 전철 옆자리에 앉았을 때(심장이 철렁하며 내려앉는 느낌), 카드청구서의 결제금액이 의외로 적을 때, 저녁 퇴근한 집이 정리정돈 잘되어 깨끗할 때, 길에서 우연히 만난 옛 단골횟집 주인이 내 안부를 걱정할 때(안 오셔서 이민가신 줄 알았어요), 자사주 받은 주식이 상한가까지 올랐던 어느 날 오후 3시, 세상 모든 일이 필연적임을 이해하게 될 때, 프로야구 내가 응원한 팀이 연승할 때, 호프 여사장님 왈 얼굴만 봐서는 30대 후반인 줄 알았어요(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판 모르는 출판사에서 그간 읽고 싶었던 책들을 왕창 택배로 기증할 때, 땀 흘린 등산 산꼭대기에 마침내 도달했을 때, 몸에 질병이나 고통이 없고 마음의 불안이나 걱정이 없으면 우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존재라는 깨달음,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하는 친절한 백화점 점원(그대에게 복이 올 것이리니), 주위 사람들의 판단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기 보다는 그들의 목적이나 취향이나 이해관계에 따른 산물이라는 깨달음, 장거리 기차여행 막 기차에 올라탔을 때, 해외여행 도착한 공항에서 만나는 친절한 가이드 아가씨.

 

 더운 여름 바다소나무 그늘에서 마시는 냉커피의 시원한 맛(얼음이 동동 떠 있을 것), 쌍계사 계곡에서 맛보는 은어회의 수박향, 봄날 바닷가에서 도다리회를 먹을 때, 가을날 시장통에서 전어회를 먹을 때, 8월 찜통더위 저녁 시원하게 냉각된 맥주를 마실 때(안주는 감자튀김이 좋다), 비 오는 날 먹는 해물파전과 막걸리, 남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다변의 친구(늙으니 너도 별 수 없구나), 금붕어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장미꽃이 아니라 지렁이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 에리히의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은 날의 기쁨, 일식집에서 회식한 날 ‘아,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여직원들, 더 궁금한 게 없냐는 친절한 통신회사 전화상담원, 추운 겨울 한 달 동안 그윽한 향을 선사하는 천리향 화분, 숙명의 라이벌(?)과 둔 바둑에서 연거푸 세판 이겼을 때, 내가 처한 상황의 여러가지 다양한 측면들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하여 상황판단과 해석을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될 때, 빳빳하게 풀 먹인 이불호청의 칼클한 촉감,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우리 아들의 단아한 얼굴(윤시윤 닮았군), 철지난 양복 주머니에서 오만 원 지폐를 두 장을 발견했을 때, 백년서생(百年書生) 친구의 가슴 아픈 로맨스 담을 경청할 때(바람은 머무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는 것임을 명심할 것), 전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중년 신사를 발견할 때(대부분 나도 그렇다), 가마솥더위 바닷가 파도 위로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

 

 블로그 방명록 옛 직장 부하 여직원에게서 안부 글을 받았을 때, 인터넷을 검색하다 내가 쓴 포스팅이 BEST글이 되어 있음을 발견할 때(찾아보니 무수히 많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산뜻한 5월의 꽃향기를 느낄 때, 8월 폭염과 산사의 녹음 그리고 풍경소리의 조화, 초봄에 심어두었던 감자를 수확하는 6월의 주말농장, 현재의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한 새로운 지혜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아침의 기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의 기쁨,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성당에서 미사 참여할 때, 격조하던 친구로부터 술 산다는 전화 왔을 때, 사랑이 삶에서 아주 중요한 활력을 제공하지만 삶 자체보다 무거운 무게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은 날, 폭염의 여름날 반신욕 후 찬물로 샤워할 때, 애먹이던 우리 딸이 부모가 졸업한 그리고 오빠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온 가족이 동문이 된 어느 날, 어릴 때 헤어진 친구와 몇 십년 만에 만났을 때, 돌 지난 아기의 웃음소리, 맑은 햇살 아래 고운 잔디밭을 걸을 때, 4월 새로 싹 튼 연초록빛 나뭇잎을 만질 때의 촉감, 아기를 바라보며 웃는 아내의 얼굴, 쟈스민차의 향기, 내가 사는 동네에 몇 년 만에 눈이 내릴 때, 아침에 마주친 부하 여직원들의 미소로 대신하는 인사, 이른 아침 종달새 소리 꾀꼬리 소리, 봄날 시냇물 흐르는 소리, 갈대에 부는 바람 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골목길의 피아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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