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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애

by 언덕에서 2013. 4. 24.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애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코에너지의 한 임원이 대한항공 기내에서 ‘라면이 짜다’ 등의 이유로 여승무원을 폭행한 사건과 관련해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편 포스코측은 21일 오후 포스코 공식 블로그 ‘헬로 포스코’(blog.posco.com)에 ‘포스코패밀리를 대표하여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전 포스코패밀리사를 대표해 포스코에너지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를 드린다”고 입장을 밝혔지요.

 피해자인 대한항공은 가해자로 지목된 A씨에 대한 고소여부를 검토 중이라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는데요. 피해자이지만 큰소리를 낼 수 없는 이유는 일종의 ‘서비스업의 비애’ 때문일 겁니다. 아무리 자사 승무원이 폭행을 당했더라도 대한항공 입장에선 좋지 못한 일로 언론 보도에 거론되는 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객들을 계속 맞이해야하는 업의 특성 때문이지요. 몇 년 전에는 신발공장 하는 박연차라는 사람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천만 원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 같지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비애를 전 국민이 알 수 있는 좋은 계기(?)가 이번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비행기 안에서 비슷한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는데요. 베트남 호치민에서 베트남에어라인을 타고 부산으로 오던 중이었습니다. 늦은 여름이었어요. 제 앞자리에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가 앉았습니다. 남편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는 민소매 티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갑자기 아기가 보채자 남자는 여승무원에게 우유를 달라고 하더군요(Hey, give me milk!). 여승무원이 팩에 든 우유를 가져오자 이번에는 빨대(strew)를 요구했습니다. 여승무원이 ‘빨대는 기내에 비치되어 있지 않다(Sorry, The straw of  milk is not here on a plane.)’고 사과하자, 그 자리에서 “아놔……. 야! 이 XX년아!”가 튀어나오더군요. 고함소리에 무장한 남자승무원이 출동했구요. 그제서야 난동을 멈췄습니다. 갑자기 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물론 그 여승무원이 그 한국말을 아는지 저는 모르겠지만 표정과 어투로 봐서는 욕을 한다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았을 겁니다. 어글리 코리안(Ugly Korean)을 눈앞에서 목격하니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라 망신은 저런 꼴뚜기들이 시키는 것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유독 한국에서 또는 한국인 고객들이 서비스업 근로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만들어 놓은 '고객 서비스 환상' 때문"입니다. 광고를 통해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고객들이 서비스 종사 근로자들을 마음대로 부려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측면 때문이지요.

 제가 금융회사 간부로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에스컬레이션(Escalation)이 발생했습니다. 즉 창구에서 상담하던 고객이 담당자나 상급자와 상담에서 만족을 하지 못해 책임자를 찾아와서 항의하는 경우입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이 결제해야 할 비용이 백 오십 만원인데 오십만 원만 내야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유는 제 부하직원이 실수로 오십만 원이라고 안내하고 잠시 후 착오임을 알고 사과하며 백오십만 원을 재차 안내했다는 것이지요. 백오십만원이 맞지만 오십만원만 내야겠다, 어쨌든 착오로 잘못 안내한 죄과가 있으니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객관적인 자료와 명세서가 뻔히 있는데도 막무가내였어요. 닷새 동안 매일 제 방을 찾아와서 생떼를 부리더군요.

 문제는 백만 원을 해결해야 하는데 회사에 존재하는 회계 상의 보상계정이 없는 겁니다. 여직원에게 변상시키자니 백이십만 원 받는 월급에서 백만 원 빼면 뭐가 남겠습니까? 결국은 차액 백만 원을 책임자인 제가 주머니를 털어 변상해야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정도면 고객이 아니라 악마인 거지요.

 이외에도 전화상으로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로 행패부리는 사람들 하루에 수십 명은 됩니다. 가장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것은 “야! 이 XX년아, XX를 쫙 찢어버리겠다”는 막말을 듣고 사표를 쓴 부하여직원입니다. 전화 받은 여직원이 자신의 딸이라면 그런 욕을 하겠습니까?

 

 

 아, 이야기가 옆으로 새고 말았군요. 전문가들은 서비스업의 근로 여건 자체가 워낙 열악해 종사자들이 스스로 방어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합니다. 서비스업계가 전반적으로 고용안정성이 낮아 고용주와 고용인은 완전히 "갑(甲)과 을(乙) 관계"입니다. 고객 만족도는 곧 회사의 매출로 직결되기 때문에 근로자들에게 무조건 친절을 강요하는 풍토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의 친절 마인드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승무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승객은 아예 받지를 않습니다. 어글리(Ugly) 고객 리스트를 작성하여 별도 관리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소비자 만족도는 세계 1위입니다. 그 회사 종업원들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회사에게 고객에 대한 최선의 서비스로 보상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