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소풍
오랜만에 동창 녀석들과 봄나들이 한 지난 주말.
칫솔공장하는 친구의 봉고 한 대 대절하고 도시락 주문하여 아침 일찍 길을 나섭니다. 헐~~ 소주도 한 궤짝 실었군요. 코스는 부산 서면에서 출발하여 거가대교를 건너서 거제도 남쪽의 해금강 부두인가 하는 곳에 차를 세우고 배를 타고 해금강을 구경하고 해금강 너머에 위치한 외도의 꽃구경하자는 것이지요. 내친 김에 경치 좋기로 유명하다는 바람의 언덕도 들르기로 했고요. 이후에는 통영대교를 건너서 통영시 미륵산에 위치한 케이블카를 타보자는 봄 소풍 같은 나들이입니다.
그런데 날씨가 장난이 아닙니다. 나들이 중에 '흐리거나 약간 비 옴' 예보와는 달리 상당한 양의 비가 왔거든요. 해금강 부두에 도착하자마자 가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해금강 유람 및 외도로 향하는 배는 승선이 가능했는데요. 가벼운 옷차림으로 왔는데 날씨가 추워서 그야말로 벌벌 떨면서 봄나들이 했네요. 파도가 드센 바람에 절경이라는 십자동굴 구경을 하지 못했네요. 파도가 칠 때마다 배가 바이킹처럼 오르내리는 바람에 "아싸!" 소리를 내며 스릴을 만끽합니다.
외도에 도착하여 꼭대기에 오르니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는군요. 오들오들~~
외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거제도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하며, 해안선 길이 2.3km로 해발 80m의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있지요. 원래는 외딴 바위섬이었으나 개인이 사들여 농원으로 개발한 뒤 1976년 관광농원으로 허가받고 4만 7,000평을 개간하여 1995년 4월 15일 해상식물공원인 외도해상농원을 개장하였다고 하는군요. 볼만한 곳으로 야자수와 50여 종의 선인장 동산이 있는 아열대식물원, 12개의 비너스상이 전시된 비너스가든, 재기차기 기마전 등의 민속놀이를 표현한 놀이조각공원, 편백나무 숲으로 된 천국의 계단, 후박나무 약수터 등이 있습니다. 꼭대기 전망대에 서면 해금강과 서이말 등대, 원시림으로 뒤덮인 외도 동섬, 공룡바위 등이 한눈에 들어오는군요. 이 중 공룡굴과 공룡바위는 경상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요. 이국적인 정취가 굉장하지만 고놈의 비 때문에 제대로 감상하지 못합니다. 이 사진은 겨울연가 마지막 장면을 찍은 사진이라고 그러네요. 하하, 제가 드라마를 싫어하는 관계로 겨울연가를 보지 않아서…….
그럭저럭 해금강과 외도를 구경하고 다시 배를 타고 해금강 부두에 도착하여 바람의 언덕으로 향합니다. 이 때부터는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서 봄 소풍이 바야흐로 괴로움으로 바뀝니다. 집에서 파전이나 구워 먹는 건데……. 하는 생각. 게다가 저는 바람의 언덕을 두어 번 온 적이 있거든요. 누군가가 소주 박스를 뜯기 시작합니다. ㅎㅎ 저는 금주를 선언한지라 참고 또 참습니다(원래 체질에 맞지 않아 낮술은 못마십니다 ^^;;).
어쨌든 바람의 언덕을 구경하고 통영으로 차를 돌립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통영이란 도시는 어린 시절부터 제게 동경(憧憬)의 도시입니다. 아기자기한 중소도시의 정겨운 풍경과 산과 바다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름답기 그지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학창시절 제게 끝없는 연모의 감정을 주었던 어여쁜 후배와 군복무 때 저를 도와주었던 선임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충무공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미륵산. 높이 461m. 산봉우리에 옛날 통제영의 봉수대 터가 있고, 산 아래 계곡에는 통영시 상수도의 제1수원지가 있습니다. 943년(고려 태조 26) 도솔선사가 창건한 도솔암, 1732년(조선 영조 8)에 창건된 관음사, 42년(영조 18) 통제사 윤천빈이 산 일대에 축성한 산성과 함께 창건한 용화사(龍華寺) 등이 있습니다. 정상에 오르면 한려수도일대가 장쾌히 조망된다는데요. 산중턱에 구름이 모인 관계로 ‘꽝’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케이블카를 타본 걸로 만족해야만 한 소풍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일정을 마치고 차를 돌려 해롱거리는 일행들과 부산으로 돌아왔는데요. 저녁에 도착하니 날이 개이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는데 그것 참…….
봄, 야유회를 가다 / 정선호
바다가 보이는 오래된 초등학교에 갔네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이 저녁밥을 지어
논둑의 뱀풀이며 씀바귀들에게 퍼 주었네
염소들 그것들을 뜯어먹으며 아이들을 불렀지만
아이들은 해변에서 바다를 뜯어먹고
되새김질하여 수평선 너머로 공을 차내고 있었네
바람은 날개를 접어 몇몇은 빈 교실에서 해진 추억들을 풀어놓고
몇몇은 야유회 온 사람들의 배낭을 비집고 들어가
아이들과의 이별을 준비했네
저녁식사엔 염소 한 마리 잡아 만든 수육이며
국물이 나왔는데 바다냄새와 풀냄새가 물씬 났네
풍성한 저녁식사는 시작되었지만 일행은
부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처럼 말없이
질기디질긴 식사를 하는 것이었네
파도소리는 보채는 아이들을 잠재웠고
소쩍새같은 숨소리를 내며 커가는 아이들,
이슬을 불러 염소의 쓸쓸함을 덮었네
파도소리가 더 크게 들리자 일행은 저마다
염소의 울음소리를 내던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하얗게 늙어갔네
그들의 턱에는 수염이 빠르게 자라고 있었으며
새벽녘에서야 막혔던 귀가 뚫리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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